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영 Sep 28. 2024

베를린 여행에서 역사 읽기

역사박물관, 베를린돔, 베를린장벽 독일자유여행 5일 차

피크닉을 계획했는데 비가 오는 날 베를린 여행


독일여행 5일 차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비소식이 있어서 일정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원래 계획은 케밥을 사서 마우어파크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플리마켓 구경을 하고 한센하이더 야외영화관에서 대사 없는 영화를 보기로 계획했다. 딸은 엄마아빠랑 꼭 하고 싶었던 일정인데 하지 못해서 몹시 아쉬워했다. 특히 플리마켓은 중고제품과 수공예품이 많이 나오는데 오래된 물품과 수공예품 좋다고 했다.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몇 번이고 아쉬움을 표했다. 


베를린은 아픈 역사와 유럽 예술이 공존하는 독일 수도다. 박물관 섬이라고 불릴 만큼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다. 관람할 곳은 차고 넘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인터넷 검색으로 물어보니 페르가몬 박물관을 추천했으나 임시 휴장으로 다른 곳을 검색했다. 

"엄마 아빠 어디 갈지 정해봐요?" 이번에는 딸이 엄마아빠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베를린에 왔으니 역사박물관에 가자." 이도시가 궁금한 아빠가 말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다. 


비 오는 날 베를린 여행은 역사와 함께하는 일정으로 역사박물관, 베를린 돔, 베를린 장벽 등을 보기로 했다. 


엄마 아빠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빨래를 했다. 숙소가 넓어서 출입구 쪽으로 빨랫줄을 만들고 밀린 빨래를 널었다. 아침 티타임을 갖고, 바게트빵과 계란, 요거트와 과일로 아침을 먹었다. 독일에서 아침은 간단히 차려먹어도 늘 든든했다. 

하루 일정의 시작은 딸이 잠에서 깨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딸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재촉하거나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찍 일어나는 엄마아빠는 아침 여유를 즐기는 게 낫다. 딸에게서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싶으면 언제쯤 움직일 수 있는지 시간을 정하자고 말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우리의 여행은 우리의 처지와 상태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바쁠 것도 없다. 

의외로 가족여행 중에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번 여행 전에 서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힘들면 쉬어가자고 말하기, 짜증 내지 않기, 짜증을 냈다면 바로 풀기다. 다행히 서로 이 약속을 잘 지켰다. 


여행을 나선 시간은 11시쯤이 되었다. 날씨는 비가 왔다가 갰다가를 반복했다. 옷은 반팔옷을 입었다가 긴팔옷으로 갈아입었다.   Günzelstraße(귄젤거리) 역에서 Zoologicher Gaten(동물원) 역까지 이동했다. 동물원역은 베를린에 머물면서 가장 자주 이용한 역이다. 지하철에는 휴일을 맞이해서 그런지 자전거 라이더들이 많았다. 함부르크에서 휠체어로 버스를 탑승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차에서도 휠체어 승객을 승무원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잘하는 나라 독일이다. 


독일에서는 자전거 도로가 인도만큼이나 넓다. 독일에서는 자전거 도로로 걸어가면 안 된다. 엄청 욕을 먹는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무심코 자전거도로를 걷다가 딸이 잡아끄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기차에는 자리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구역이 있는데 기차네 공간활용이 자유로운 편이다. 이 구역에서는 자전거가 들어오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자전거가 주차할 수 있도록 일어서야 한다. 우선권이 자전거에 있다. 자전거 라이더 중에는 70~80대로 보이는 사람도 꽤 많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자전거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좋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먼저 탔다가 독일 할머니로부터 혼나기도 했다. 독일어로 말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자전거가 먼저 왔다는 말인 것 같다고 딸이 해석을 해줘서 알았다. 독일은 자전거 라이더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이며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아침 티타임/ 지하철역 안내도/ 지하철 일회용 티켓 기계


슈프레강에서 커리부르스트와 슈바인스학세를 


아침에 커피만 마신 딸을 위해 점심을 일찍 먹기로 했다. 베를린을 여행할 때 자주 보게 되는 슈프레강 줄기에 있는 야외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딸이 친구와 와본 식당이라고 했다. 슈프레강가에 자리 잡은 야외 식탁이 좋다. 메뉴판도 예쁘고 독일어 글씨도 아름답다. 독일어를 모르는데 갈수록 독일어 글씨가 예쁘게 여겨진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는 점원과 눈을 마주치며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고 앉았다. 독일 식당에서는 이것이 예의라고 하니 따랐다. 몇몇 사람들은 그냥 자리에 앉기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점원에게 확인하고 앉는다. 본 음식을 시키기 전에 맥주를 시켰다. 독일에서 며칠밖에 지내지 않았지만 음식을 시키기 전에 음료를 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슈프레강을 따라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흐르고 있다. 구름이 잔뜩 끼고 빗방울도 한두 방울 내리고 있어서인지 유람선을 타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바람도 세지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세차가 바람까지 들이치며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차니 금방 서늘해져서 점퍼를 걸쳤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독일이라고 하는데 여름비를 제대로 구경했다.

달리기 동호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가 세차게 내리니 가던 길을 멈췄다. 야외식탁이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원래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맥주를 시키며 왁자지껄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커리부르스트와 슈바인스학세였다. 

쿼리부르스트(Currywurst)는 소시지에 카레 케첩 또는 카레 향신료가 들어간 토마토소스를 얹고 카레 가루를 뿌린 음식으로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테이크아웃이나 길거리음식으로 독일 전역에서 즐겨 먹는다.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는 독일의 돼지고기 요리로 족발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발끝 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얇게 썬 감자나 양배추를 발효시킨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곁들여 먹는다. 

주문한 쿼리부르스트는 소시지에 토마토소스를 끼얹어서 나왔고 감자튀김에 카레 가루가 뿌려졌다. 토마토소스와 카레를 얹은 소시지가 맛있었다. 슈바인스학세는 족발을 닮았는데 자우어크라우트가 곁들여졌다. 족발보다는 덜 쫀득거렸지만 맛은 부드러웠다. 양배추를 발효한 자우어크라우트를 곁들이니 깔끔한 맛이 났다. 돼지고기의 독특한 향도 없이 먹기도 알맞았다. 독일 요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있는 요리였다.  

독일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양이 항상 많았다. 독일인들은 한국인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주요리는 두 개를 시키고 음료는 세 개를 시켰더니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음식량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 빗줄기가 서서히 잦아들어 베를린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독일여행 중 처음으로 트램을 탔다. 트램도 지하철과 버스와 마찬가지로 승차권태그를 하지 않으며, 승하차시 승객이 문을 여는 버튼이 있었다.   트램을 타고 내릴 때 뒤따르는 자동차들은 승객이 오르내리는 것을 기다려줬다. 독일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지 빵빵거리나 재촉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타고 내릴 때 밀치거나 소리치는 일이 없다. 삶이 여유 있어 보인다. 

메뉴판이 예쁘다. 글씨도
커리부어스트/슈바인스학세/맥주
슈프레강
트램


역사박물관에서 독일 읽기


트램에서 내려서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는 중에 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건물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높이 솟은 TV송신탑과 청동색 베를린 돔이 예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박물관의 외관은 나선형의 투명 계단과 길게 골조가 드러나는 유리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저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아름다운 베를린 돔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역사박물관을 먼저 보아야 한다. 

역사박물관 앞에서는 작은 규모의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니 역사박물관보다는 베를린 돔이 배경이 되었다. 비가 갠 도로에는 빗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맑아진 날씨 덕에 플리마켓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딸이 계획했던 플리마켓은 아니지만 그 대신이라고 여기며 구경했다.  


독일 역사박물관(German Historical Museum)은 크지 않았다. 지상층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전시가 열리고 있었으나 관람하지 않았다. 1층에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게임처럼 해볼 수 있는 체험형 전시실과 지하에 있는 <가지 않은 길. 또는: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전시를 관람했다. 본 전시는 2026년 1월 11일까지 진행된다. 역사박물관은 입장료는 성인 7유로이며 학생권은 3.5유로, 18세까지는 무료입장이다. 개장 시간은 매일 10시에서 18시 개장하며 목요일은 20시까지다.


<가지 않은 길. 또는> 전시 내용은 독일 역사의 전환점인 1989년부터 1848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에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을 1989년부터 거꾸로 회고하는 형태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으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사진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창살 안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냉전시대 종식, 냉전, 사회주의의 권력장악, 혁명과 민주화가 파노라마 필름을 보는 듯하다. 1952년 스탈린 정부, 1984년 베를린 공수작전(베를린을 세계 4개국이 나누어 통치함), 1949년 한국전쟁 참전, 1945년 레마겐 인근 다리 폭파 실패, 1944년 아돌프 히틀러 암살 시도, 1932년 브뤼닝 제국 총리 타도(대공황 극복 실패, 나치당 성장), 1918년 혁명(38개로 분할되었던 독일 통일, 민주적 대의제 헌법제정),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899년 독일전쟁(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 프로이센으로 소독일 이룸)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독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독일어와 영어로 되어 있는 글은 번역해 가며 읽기는 고단했다. 사진으로만 전시내용을 감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전시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딸은 피곤했는지 전시장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졸았다. 


나선형 통유리 건물은 페이 빌딩(Pei Building)이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eoh Ming Pei의 작품으로 포스트모던한 건축물로서 2003년 문을 열었다. 역사적 박물관 차우그하우스에 페이 빌딩을 건축하여 박물관의 역사와 현대를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박물관 차우그하우스(Berlin Zeughaus)는 18세기 초에 대표적인 무기고로 지어졌고, 19세기 후반에 왕립 프로이센 육군 박물관이 되었다. 1952 년부터 동독의 중앙 사회주의 역사박물관이 되고, 1990년 통일되면서 서베를린에 설립된 독일 역사박물관이 차우그하우스와 그 소장품을 인수했다. 


고전적이고 오래된 건축물을 좋아하거나 독일의 신석기 철기시대부터 전시를 생각한다면 차우그하우스 전시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보를 갖지 못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짧은 시간에 관람하기에는 좋았다.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 입구와 전시
베를린 돔과 플리마켓


아름다운 베를린 돔


역사박물관을 오고 갈 때 보았던 아름다운 청동색 베를린 돔이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멀리서 보아도 유난히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어서 빨리 가보고 싶다. 


베를린 돔(Berliner Dom)은 1450년 완성된 이후 철거와 재건, 파괴와 복원의 과정을 거친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개신교 교회다. 멀리서 볼 때는 성인줄 알았다. 내부 관람시간은 평일은 10시에서 18시, 주말은 토요일 10시에서 17시, 일요일 12시에서 17시다. 외부에서 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평일은 입장료를 내고 입장이 가능하고 일요일 오전은 정규 예배가 있다. 

르네상스 및 바로크양식 건축물로 베를린 중심부인 러스트가르텐(Lustgarten)에 위치해 있다. 4개의 탑, 100미터 높이의 돔, 골든 크로스가 있다. 내부에는 예수의 일생과 부활을 다룬 스테인드글라스와 정교한 모자이크화가 아름답다고 한다. 1905년 재건 당시 7,269개의 파이프를 가진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다.  대성당 아래에는 왕조 호엔촐레른 묘지 94개가 있다. 외부는 중앙 상단에 행려병자를 위로하는 예수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예수의 조각상과 천사상이 둘러져 있다. 건물입구 양쪽에는 마태, 나가, 누가, 요한의 조각상이 있다. 돔에서는 360도 파노라마로 베를린을 전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해 100개 이상의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음악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장소로 손꼽는다고 한다. 


베를린 돔 맞은편 양쪽에는 구박물관과 프로이센 궁전이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한 곳에 모여있다. 

구박물관(Altes Museum)은 1823년부터 1830년까지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로마의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둥근기둥이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프로이센 궁전인 샤를로텐부르크 궁(Charlottenburg)은 1695년 지어졌고 확장과 증축을 거쳐 1790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궁의 뒷모습이어서인지 어느 대학의 강의실 건물 같은 느낌인데 궁전에는 방마다 특색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세 개의 건축물 중앙에는 분수가 있고 푸른 정원이 있다.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라는 기쁨의 정원이다. 정원은 원래 궁전에 속해 있는 키친 가든 역할을 했다고 한다. 17세기 당시 오렌지와 각종 허브, 조류 사육장과 분수대가 있었고 감자가 처음으로 자란 곳이라고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대중 집회가 열렸고, 나치의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동독시절에는 집회와 행진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시민들의 만남과 휴식이 있는 있는 정원으로 분수를 중심으로 넓은 잔디가 조성되어 있어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베를린 박물관 섬의 시작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 돔 주변에는 관광객이 많았다. 곳곳에서 버스킹 하는 사람도 보였다. 아름답고 오래된 건축물을 보고 내부도 관람하고 정원에서 쉬며 충분히 즐기고 싶었지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베를린 돔
구박물관 알테스뮤지엄구박물관(Altes Museum)
프로이센 궁전 샤를로텐부르크 궁(Charlottenburg) 뒷모습


베를린 장벽에서 역사 읽기란 


베를린 장벽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비가 멈추고 해가 나니 약간 더웠다. 휴식이 필요해서 카페가 모여 있는 거리로 향했다.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시켜 한 시간 정도 충전을 했다. 음료를 마시다 졸기까지 했다. 졸고 나니 움직일 힘이 났다. 

독일의 랜드마크라고 할 정도로 인상 깊은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다.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에 걸쳐 벽화가 그려져 있는 베를린 장벽으로 가는 발걸음은 여러 마음이 동반했다. 독일의 변화와 발전을 생각하면서도 냉전시대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9년 당시 장벽 위에 시민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TV화면을 가득 메웠다. 장벽 위에 오르는 사람, 장벽을 오르는 사람을 끌어올려주는 사람, 장벽 위에 앉아 있는 사람, 장벽을 도끼로 깨부수고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 등. 감격하여 얼싸안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다소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꽤 충격적이었다. 


베를린 장벽(Die Berliner Mauer)은 1961년 동독 정부가 인민군을 동원하여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분할 점령 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쌓은 콘크리트 담장이다. 1945년 5월 8일 나치가 연합군에 항복하자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는 4개국이 분할점령했다. 동독 안에 있는 수도 베를린도 4개국이 분할 검거하였다. 그해 8월 포츠담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 3개국은 포츠담 선언(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회담)을 하고 점거 방침을 좀 더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4개국이 의견 충돌과 대립을 하게 되고 동독과 서독이 분단된다. 동독정부는 베를린 사이에 동과 서를 가르는 40여 km에 이르는 긴 콘크리트 담장을 쌓는다. 베를린 장벽을 쌓은 후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서만 허가를 받아 왕래하였다. 소련 점령하에 세워진 동독 정권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민들은 서독으로 대규모 이동을 했다. 동독정부는 1961년 서베를린 주위 국경을 봉쇄하고 장벽을 세웠다. 그러나 가시철사와 벽은 사람들이 동독을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독일 통일 추진되었으며 1989년 장벽이 철거되었다. 장벽의 일부는 동서냉전의 상징물로 남았다. 베를린 장벽에는 세계 21개국 작가 118명이 참여하여 그림을 그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조성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냉전과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뿐 아니라 작가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벽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동독과 서독 지도자가 키스하는 장면이다. 제목은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으로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렸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세계 각국의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렸는데 본 작품은 당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입맞춤 장면을 해학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림에는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라는 부제가 달렸다.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벽화 앞에 섰다. 베를린 장벽에서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염원해 본다. 꽤 길게 조성된 장벽을 따라 걷다 보니 슈테르강 주변에서 버스킹이 있다. 우리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버스킹은 관객들의 신청곡을 부르기도 했는데 약간 어설펐다. 그런데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베를린 장벽이 옆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베를린 여행 중 역사 읽기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슈프레강이 흐르고 장벽이 양쪽으로 날개처럼 펼쳐진 베를린 장벽에서 남북한 통일이나 세계평화 같은 염원을 담아본다. 

형제의 키스
베를린 장벽 벽화
슈프레강 버스킹



#하나만 #독일여행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이전 06화 영광과 상처가 공존하는 베를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