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괴테역에서 내려 괴테 광장에서 괴테 동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온통 괴테다. 괴테 생가로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책은 안사고 구경만 했다. (*괴테 생가는 14 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괴테 생가에서 오전을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퀴어 축제와다양성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중서부에 위치하며 인구는 70만 명에 이른다. 베를린이 행정의 수도라면 프랑크푸르트는 경제 수도라고 불린다. 유럽중앙은행이 있으며, 영국 런던과 함께 유럽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연합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퀴어 축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퀴어축제는 성소수자들의 문화 축제다. 우리나라도 매년 9월에 열린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다. 가장행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일곱 빛깔 무지개 깃발, 양말, 가방, 손수건, 부채 등을 가지고 있거나 두르고 있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도 있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는 빨간 티셔츠를 커플로 입고 나왔다.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나이 든 사람들도 많았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깃발을 행진하는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이후 해마다 퀴어축제가 있으나 한 번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뉴스로만 접한 우리나라 퀴어축제는 반대자들의 시위가 뉴스거리화 된다. 아직은 소수자들만의 축제로 여겨진다.
프랑크푸르트 퀴어축제에서 반대집회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을 쓰게 될 즈음 알게 된 사실은 더 놀라웠다.
독일에서는 부부가 성을 합쳐서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있고(우리나라에서 성을 합쳐서 이름을 짓는 것과는 다르다.),14세 이상이 되면 법원의 허가 없이 자기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을 선택하거나 성별 선택(남성·여성·다양·무기재)을 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 연방의회는 지난(2024년) 4월 12일 독일에서 성별등록 자기 결정법 제장 안을 찬성 374표, 반대 251표, 기권 11표로 가결했다.
성수자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한 것이 놀랍다. 물리적 신체적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독일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다양성이란 이런 것인가? 독일 여행 전에 생각했던 다양성과 독일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성은 많이 달라졌다.
퀴어 축제 퍼레이드는 식당을 찾아가는 내내 이루어졌고, 우리가 점심을 먹고 있는 재래시장까지 따라왔다. 음악소리와 함성소리가 계속 들렸다. 퍼레이드를 꾸민 차량이 앞장섰고,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독일 현지인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으나 언어가 짧은 관계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은 축제 분위기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재래시장,클라인마르크트할레(Kleinmarkthalle)
점심식사는 괴테 하우스에서 만난 프랑크푸르트에서 살고 있다는 여행가이드에게 소개받아서 찾았다. 나중에 식당에서여행가이드와 손님들을 다시 보았다. 식당은 프랑크푸르트 재래시장 2층에 있었다. 식당은 만원이었으며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점원에게빈자리에 앉아도 된다는 안내를 받고 착석했다. 점심으로는 스튜, 스파게티, 등심, 소시지, 사과와인을 시켰다. 가격은 저렴했고 먹을만했다. 아주 맛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격대비 그 정도면 괜찮았다. 현금만 받았기 때문에 점심 먹으러 온 몇몇 관광객은 돌아갔다. 밖이 퀴어축제로 소란스러워서 식사 내내 정신이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점원이 바빠서 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며 우리 테이블로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한국이라면 벨을 누르거나 소리쳐 부르거나 계산대로 찾아갈 텐데. 아니다. 요즘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주문하면서 바로 결제하면 된다. 점심을 마치고는 시장 구경을 했다.
재래시장인 클라인마르크트할레(Kleinmarkthalle) 프랑크푸르트 중앙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08시에서 18시까지, 토요일은 08시에서 16시까지 운영하며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점 한다. 1층은 소시지, 고기, 과일, 반찬류, 견과 등을 파는 가게가 있고 2층은 식당이 있다. 식당은 다른 일반 음식점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다. 이 시장에는 차범근 선수가 선수시절 자주 이용한 정육점이 있다. 몇 년 전 방송을 탄 내용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정육점은 지금도 한글로 LA갈비, 불고기, 로스구이 등이 있다는 안내가 있다. 차붐의 인기가 아직 있어서인지 아니면 한국인이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인지 알 수 없으나 한글이 반가웠다.
재래시장은 입구 쪽에 소시지와 고깃집이 많았다. 직접 사 먹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인상적이었다. 정육점 입구 머리에 주렁주렁 걸린 긴 소시지가 시선을 끌었고, 매대 냉장고에는 덩이가 꽤 나갈 것 같은 큰 고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시장에 가면 정육점에 다리뼈나 갈비뼈 넓적한 고기 뼈 등이 걸려 있을 텐데, 요즘은 마트에서 작게 썰어서 포장해 냉장고에 놓은 고기만 보다 보니 큼지막한 고기 덩이가 생경하다.
견과류, 과일, 야채 가게도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품목도 있고 낯선 식재료도 있었다. 오이, 가지, 양파, 토마토, 사과, 수박, 딸기 등 우리나라에도 있는 야채들이다. 반찬가게도 있었는데 과일을 저린 것 등이 있었는데 초절임 피클 같은 반찬이었다. 독일도 밑반찬이 있나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건을 사지는 않더라도 시장을 보면 그 나라 식재료를 볼 수 있고 물가를 알 수 있다. 시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3유로로 값싼 커피를 마셨다.
프랑크푸르트 랜드 마크 뢰머광장
배를 든든히 채우고 뢰머광장으로 향했다. 뢰머광장은 프랑크푸르트 랜드마크다.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광장은 무척 더웠다. 어찌나 더운지 잠시도 광장에 서 있기 힘들었다. 광장 주변에는 발 디딜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는데 정작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늘이 없는 광장이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퀴어퍼레이드를 마치고 해산하는 사람들이 광장을 지나갔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겠기에 정의의 분수와 유스티아 동상 앞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광장의 모습을 이리저리 담았다. 하이델베르크와 헤펜하임에서 보았던 건축 양식의 흰 벽에 그물처럼 빨간 장식을 단 중세 건물들이 많았다. 맑고 파란 하늘아래 넓은 뢰머 광장으로 쏟아지는 햇볕이 그대로 담겼다. 얼른 그늘을 찾아 구 시청 건물 계단에 앉아서 광장을 구경했다. 시청사 건물은 외관만 보고 자세히 보지 못했다. 태양이 너무 따가워서 편히 볼 수 없었다.
뢰머(Römer) 광장은 과거 로마 군이 주둔한 곳이라 뢰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시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9세기부터 박람회가 열렸으며 지금도 각종 국제전시장이 열리는 대형 광장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가 중세분위기로 복원하였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정의의 분수와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동상이 있다. 광장에서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며, 매해 7~8월 무렵에는 민속 축제인 마인페스트가 열린다. 광장 서쪽에 자리한 3동짜리 건물은 시청사로,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으며 15세기에 시의회가 사들인 것이다. 계단식으로 된 삼각 지붕이 특징인 운치 있는 건물이며 가운데 건물을 뢰머라고 부른다. 이 건물은 1562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즉위 축하연이 열린 장소로서, 축하연이 열린 2층의 방을 ‘황제의 방(Kaisersaal)’이라 칭하고 이후 1792년까지 약 200여 년간 호화로운 축하연 장소로 사용했다. 건물의 벽에는 독일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당시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홀의 지하에는 전시회장이 유치되었다.(네이버지식백과)
광장 남쪽에는 12세기에 왕실 예배당으로 지어진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가 있다고 하는데 관람하지는 않았다.
광장을 지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 거리를 걸었다. 건물들 사이로 걷는 동안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길거리와 언뜻 보이는 건물들의 모습이 이색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천천히 제대로 볼 수는 없어서 목적지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길거리 버스킹으로 실로폰 연주를 보고 있는 사람들 틈에 잠시 끼어 있기도 했다. 대성당은 뢰머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 성 바르톨로메오 Dom St. Bartholomaus)은 카롤링거 왕조시기에 지어진 9세기 건물을 모태로 증축과 재건을 했다. 높이는 95미터로 1550년 고딕양식으로 완성했다. 르네상스시데 프레스코화(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로 꾸몄다. 이곳은 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으로 유명하며, 대관식을 마친 황제는 시청사 건물인 뢰머에서 축하연을 열었다고 한다. 대성당의 탑 위에는 전망대가 있어 마인 강변과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는 탑에 오르지는 않았고 성당 내부만 관람했다. 내부는 크고 화려했고 관광객도 많았다.
목조 성가대와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 후기 고딕 양식의 제단과 무덤이 있다. 돌 제단은 캐노피 아래에서 애도하는 사도들의 서클에서 마리아의 죽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리아의 영혼은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올려진다. 성당에는 1349 년 묻힌귄터 폰 슈바르츠부르크(Günther XXI von Schwarzburg) 백작의 무덤이 있다. 대성당의 그림 중 1627 년 안토니우스 반 다이크 (Antonius van Dyck)의 "그리스도의 애도", 1973 년 화가 에밀 슈마허 (Emil Schumacher)의 그림 "욥"이 있다는데 눈여겨보지 못했다. 이외에도 유서 깊어 보이는 벽화나 조각품들도 꽤 있었으나 우리는 성당은 안 보고 더위로 지쳐서 앉아서 한참을 쉬었다. 사실 유적 유물에 대해서 몰라서 자세히 보지 않았다.
유대인 박물관
다음으로 간 곳은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 Frankfurt)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이번 박물관은 유대인을 위한 박물관 같았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월요일 휴무, 오전 10시 오후 6시까지)인 것에 비하면 다소 비쌌다. 미디어 가이드 QR코드로 접속하여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시선을 끌만큼 관심이 가는 전시는 못되었다. 또 다른 전시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체험 등을 상상한다면 다른 곳에 가야 한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도 많다고 하는데 다른 곳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박물관 앞에서 버스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보았다. 간식으로 준비해 온 자두를 먹으면서 재충전도 했다.
눈물의 여왕 사랑의 언약, 아이젤러 다리
유대인 박물관에서 아이젤러 다리로 이동했다. 한참을 걸었다. 이 다리는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 김수연과 김지원이 사랑의 언약으로 맺었던 자물쇠를 매달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이 채웠던 자물쇠가 어딘가 있을까? 찾아볼까? SNS 수사대가 이미 찾았을까?
아이젤러 다리는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더니 다리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했다. 관광객도 많았다. 햇살은 눈이 부셨고, 동서로 흐르는 강물은 맑고 짙푸르렀다. 파란 하늘은 도시를 더욱 선명하게 비췄다. 강가에 앉아서 다리를 보아도 좋고 노을 지는 관경이나 어둠에 잠긴 도시의 모습을 봐도 좋겠다.
아이젤러 다리(Iron Bridge Frankfurt)는 보행자용 다리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힌다. 마인 강의 남쪽 박물관 지구와 북쪽 뢰머 광장이 있는 구시가지 알트슈타트(Altstadt)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1868년에 건설되었고, 1911년에 기존보다 큰 규모의 캔틸레버 다리로 개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46년 재건축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자료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우리는 아이젤러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와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독일여행을 마치는 날이었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마트에서는 자주 사 먹던 요거트를 샀고, 물과 과일, 야채, 과자, 맥주, 음료 등도 샀다. 마트 전경, 계산대, 물품 진열 모습 등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어서 뭐든 남기고 싶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거리에서는 그냥 일상인 것 같은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화분의 꽃도 괜히 마음이 간다. 가죽박물관(Ledermuseum) 역표지판도 다시 보아지고 버스 승강장 표지판도 어쩐지 사진에 남겨야 할 것 같다. 별것도 없는 거리도 찍고 남긴다.
저녁은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기쁨에 젖어 작은 파티를 열었다. 마트에서 사 온 초밥, 샐러드, 과일, 요거트, 맥주 등을 차리고, 딸이 너구리 라면을 먹고 싶다 하여 아빠가 라면을 끓였다. 저녁 놀이 물들고 있는 모습을 감상한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독일여행 12일 차,여행을 마치는 날이다.
딸은 늦잠을 잤고, 엄마와 아빠는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마인강까지 20여분을 걸어갔다 돌아왔고,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했다. 전날 짐을 꾸려서 독일을 떠나는 날은 여유가 있었다.
공항까지 그리 멀지 않아서 탑승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자동화 시스템에서 티켓팅을 하고 짐 태그도 붙였다. 기다리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출국 수속도 금방마무리했다.항공기도 아무 문제 없이 이륙했고 비행기에서 먹는 식사도 맛있었다. 비행동안 잠도 푹 자고 불편한것이 없었다. 기상은 맑았고 바람도 많지 않았다. 비행기는 하늘을 잘 날아서 제시간에 인천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처음 해본 자유여행이두렵기도 했는데 무탈하게 마쳤을 뿐 아니라 패키지여행보다 즐거웠다. 다음에도 자유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이란 책이나 사진 혹은 영상에서 보던 것을 오감으로 느끼는 살아 숨쉬는 생물과 같다. 시간을 들여서 이동하고 걷고 보고 느끼고 냄새맡고 맛본다. 즐겁고 감탄스럽고, 때로는 허접하고 실망스럽고, 쓸쓸하다. 무더위와 오랜 걸음으로 지치고, 갈증으로 목마르고, 피로로 감흥없기도 하다. 여행이란 온몸으로 겪는 노동이 영혼까지 스며드는 것과 같다.
여행의 준비와 가이드, 길안내와 숙소 예약, 식사 장소 마련까지 애써준 딸에게 감사하다. 딸과의 여행이 추억과 기록으로 남게 되어 기쁘다.
*다음몇 편은 독일여행을 총정리하며 결산, 우리나라와 다른 독일문화와 예절, 음식 등을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