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생긴 일
유난히 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자꾸만 얼어붙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몸이라도 풀어보고자 목욕탕을 갔다. 목욕탕이든 찜질방이든 가본 지가 언제이던가. 코로나 이후로는 목욕탕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단감염이 목욕탕에서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다 다니는데 목욕탕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즐거운 어른> 이옥선 작가님은 76세다. 작가님은 매일 목욕탕을 간다고 한다. 의사가 매일 목욕탕에 가는 것은 말린다고 하는데 작가님은 목욕탕이 좋다고 했다. 책을 읽은 순간 목욕탕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뜨거운 탕에 담근다면 금방 몸이 풀어지고 근골격계의 피로가 사라질 것 같았다.
주말 아침 일어나자마자 세면도구를 챙겼다. 집 앞에 있는 목욕탕(찜질방)으로 향했다. 목욕탕급 찜질방인데 규모가 작고 지하에 있다. 당연히 아침 일찍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이 닫혀있다. 한번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급했는지 오픈 시간도 확인을 안 했다. 아침 8시 문을 열고 10시 반에 문을 닫는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7시가 조금 지난 이른 시간이라 다시 집으로 와서 기다렸다가 8시가 조금 지나서 찜질방으로 갔다.
손에 착용하는 열쇠를 받고 21,000원을 결제했다. 가격이 이렇게 비쌌나? 나중에 알아보니 남편은 13,000원에 대형 찜질방에서 사우나만 하고 왔다고 했다. 찜질방 가격은 지역마다 규모마다 천차만별인듯 하다.
입구에서 모자, 수건 2장, 가운을 받았다. 오랜만이라 모자도 줬었나 의문도 있었다. 탈의를 하고 세면도구를 챙겨 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개장시간이 10여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예닐곱 명의 어르신들이 벌써 목욕을 하고 있었다. 동네 목욕탕이라 그런지 대부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른들이었다.
실내는 출입구를 들어가면 식사할 수 있는 작은 식당이 있고, 마사지실과 직원 휴게실이 있으며 찜질방 전용 수면실과 찜질방이 따로 있다. 목욕탕은 작지만 온탕은 3개, 냉탕 2개, 찜질방 2개, 세신실 1개로 있을 것 다 있다.
아! 실로 오랜만이다. 감회가 새롭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탕 속으로 입수 준비 완료.
연두색 힐링온탕과 검갈색 감초온탕에 들어가려고 물을 만져보니 뜨겁다. 두 곳에는 탕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먼 황토탕에만 서너 명이 탕 속에 들어가 있다. 몇 번 물의 온도를 만져보고 있는데 황토탕에서 한 분이 손짓을 하고 다른 분들도 덩달아 말을 한다.
"이리 와요. 거기는 뜨거워서 못 들어가요."
'아~ 그래서 힐링탕과 감초탕에는 아무도 없었구나. 사람들이 친절하네.'
서울 생활에서 타인의 친절을 많이 접하지 못하다 보니 작은 관심에도 고맙게 여겨진다.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하고 네댓 명이 앉아있는 황토탕으로 들어갔다. 작은 황토 탕은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았지만, 물이 출렁 넘치는데도 따뜻함이 좋았다.
황토탕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은 물온도가 어떻다느니 말을 주고받는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이 정겹다.
나이가 팔십인데 작년까지는 걷는 걸 좋아했는데 올해는 걷기가 힘들다고. 언니는 어쩌고 저쩌고...
오래간만에 따뜻한 온탕에서 들어 있으니 몸이 절로 풀리는 것 같다. 진즉 올 걸 그랬다.
온탕을 즐기려는데 한분이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은 다 줬는데 안 줬네요. 마셔요."
장건강에 좋은 마시는 요구르트를 주었다.
'아니 왜?'라고 생각하며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마셔요. 다른 사람도 다 줬어요."
얼떨결에 받긴 받았는데 목욕탕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번을 온탕과 냉탕 사이를 오고 가노라니 목이 마르다. 받았던 음료를 마실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벌거벗고 있는지라 받아든 음료를 냉큼 먹기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라 옳다구나 하고 먹기도 영 개운치 않았다.
어느샌가 떠오른 생각은 2023년 강남 학원가에서 집중력이 좋아지는 음료수라며 거리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성 음료를 나누어 준 사건이다. 애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수나 음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니 아무리 목이 마르다고 해도 먹기가 주저되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이걸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목욕을 마칠 때까지 고민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묘수가 떠올랐다. 음료수 뚜껑의 포장이 뜯겨 있지 않고 시판 그대로라면 마셔도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음료수가 뭐라고 한참을 고민한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음료수를 건넨 사람은 선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 생활이란 것이 하도 각박하고 시절이 수상한지라 흔쾌히 남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목욕만큼은 개운하게 끝냈다. 몇 년 묵은 체증까지 쑥 내려갔다. 이옥선 작가님처럼 목욕탕에 가는 걸 좋아해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하나만 #라라크루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