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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객관적 자료 수집 하기

함께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역사책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을 하는 것이라면 자서전은 나의 변천과 삶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역사책과 마찬가지로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거의 한 달의 기간 동안 연보를 생각하고 연표를 작성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는 않는다. 기억나는 일도 한계가 있다. 자신의 역사를 글로 써 본 적이 없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쉽지 않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렵기만 하다. 쥐어짜듯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생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객관적인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찾아보고, 졸업증명서, 자격증 등 각종 증명서를 떼고, 주민등록초본도 발급받았다. 기억과 생각은 한계가 있고, 왜곡하거나 조작될 수 있지만 문서로 남아 있는 자료들은 인정된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다. 각종 문서에는 종목 연도 날짜 발행기관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기억의 조작이나 거짓이 없다. 자기 역사에서 자신을 입증하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증거 자료다. 객관적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와 의미 등은 다음과 같다.


<사진 수집하기>

기억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사진을 찾아본다. 사진기라는 피사체에 처음 찍힌 사진을 찾았다. 예닐곱 살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둘째 언니, 셋째 오빠, 넷째 오빠가 뒷 줄에 섰고, 앞줄에는 동갑인 사촌과 나이 어린 사촌이 내 옆에 섰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여섯 명 모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만개한 꽃처럼 밝게 웃고 있다. 당시 사진 찍을 때의 느낌도 조금은 생각난다. 누가 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겨울철 햇살 가득한 날에 옛날 집 토방에 나란히 섰다. 사진사가 웃겨서 그리 환한 웃음보를 터트렸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세상 걱정 없이 그저 즐거운 모습이다. 언니는 중학생이었던 것 같고, 손에는 붕대가 감겨있는데 어찌 다쳤는지 모르겠다. 오빠 둘은 초등학생, 사촌과 나는 학교에 입학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흑백사진에 담긴 올말 졸망한 아이들의 모습은 촌스러우면서도 귀엽다.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의 머리를 문지르면 까슬거린 느낌도 손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똑 단발의 여자아이들 앞머리는 이마까지 자르고 옆머리는 귀까지 내려온다. 어설프게 차려입은 외투는 삐뚜룸하고 검정고무신이 눈에 유난히 들어온다. 서울에 살던 여사촌은 털 달린 신발을 신고 입에 손가락을 물고 웃음을 참으려고 한다. 어릴 때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왜 그리 웃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언제 누가 왜 찍어줬는지 모를 사진 한 장에 추억이 가득하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다양한 기억이 소환되는데, 더 많은 사진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생각하니 자서전 내용이 엄청 많아질 것 같다.

자서전에 기대도 되면서 걱정 아닌 걱정도 든다. 자서전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은 추억을 찾아내고 그중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려 한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몇몇 사진을 찾아서 연도를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불과 최근 일인데도 몇 년도에 이사를 했는지 언제 이탈리아를 갔는지 등도 벌써 잊어버렸다. 휴대폰 사진을 보면서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확인한다. 휴대폰에는 수없이 많은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언제 찍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휴대폰 속 동영상은 소리까지 있어서 더 확실하고 생생한 자료가 된다. 오래된 아날로그 앨범은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봐야겠다. 빛바랜 앨범 속에는 더 많은 추억이 가득할 텐데.


<각종 증명서 발급받기>

졸업증명서, 수료증, 경력증명서, 자격증과 면허증 등은 가장 확실한 삶의 징표이다.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혔으며 누가 그것을 발행하여 증명해 주는지가 확실하게 나와 있다.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자기 삶에서 필요에 의해서 얻어진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각종 증명서가 나를 모두 표현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이 어떤 사회적 활동을 했으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입증하는 객관적 자료로 쓰인다. 증명서를 가지고 취업이나 사회 활동을 위한 증거로 제출되었던 객관적 자료다. 당시에는 증명서 하나로 취업이 되거나 입학이 허락되기도 하고 낙방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각종 증명서 전부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더 나은 학력을 취득하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증명서를 취득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하나의 종이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인생 발자취로 남았다.


졸업증명서는 입학 연도는 몰라도 졸업 연도와 날짜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졸업증명서를 보면서 졸업앨범까지 본다면 금상첨화다. 당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 시절 추억 한 자락씩 불러올 수도 있다. 졸업증명서는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각종자격증과 수료증, 면허증등은 시기마다 관심을 가졌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을 얼마나 잘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무슨 일에 열정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경력증명서는 그 사람의 사회적 활동 경험을 표현해 준다. 이직이나 취업에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학교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남들도 다 하는 공부였다. 성적증명서를 떼어보면 자신의 학업성취 수준까지 알 수 있겠지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는 추억을 더듬어야 한다.

학교공부가 비자발적 공부라면 졸업 이후 공부는 자발적 공부다. 필자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때는 30대 후반이다.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 논술지도사 자격증, 속독사 자격증, 초등영어교사 자격증뿐 아니라 경매 공부도 했다. 독서와 논술 자격증은 두 곳에서 두 번이나 자격을 취득할 정도였다. 자녀들이 유년기였던 당시에는 육아와 교육에 관심이 많았으며 독서로 인생의 승부를 걸려고 했다.


삶의 족적에는 자격증이나 증명서로 다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태도와 자세 등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증명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가 될 수는 있다. 증명서를 정리하다 보면 당시의 마음이나 자세, 의지나 목표, 어려웠던 점등도 떠오른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서전에는 객관적 자료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와 태도, 자세 등에 대해서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느낌은 잘 살려두기로 한다.


<주민등록초본 확인하기>

주민등록초본은 출생 연도와 주소지 이전 과정이 나와 있다. 주소지 변경과 사유까지 기록되어 있다. 연도별로 주소지 명칭이 지번에서 도로명으로 변경되어 정리되어 있다. 주소지 변경과 세대주 변경 등 삶의 흔적은 나라에서 정리하여 등록해 놓았다. 주민등록초본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자세히 보게 되었다. 작은 흔적들이 여러 번 쌓여서 역사가 된 것 같아서 의외의 발견처럼 여겨진다. 개인이 살아온 지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필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보니 출생신고는 태어난 해보다 8년 늦게 되어 있었다. 왜 늦게 출생신고를 했는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물어볼 길이 없다. 주소지 이전은 결혼 전에는 한 번만 기록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회지로 유학 와서 자취를 했지만 주소지 이전은 사회생활할 때 딱 한 번만 했다. 예전에는 주소이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이사를 해도 그냥 살았던 것 같다. 면단위 명칭 변경도 나와 있다. 주민등록을 만들던 초창기에는 두 개의 마을을 합쳐서 이름을 짓곤 했다. 근래에 와서는 본래의 이름을 찾거나 지명에 알맞게 바꾸었다. 지역명칭 변경 사항도 기록되어 있다.

결혼으로 호적정리가 되어 세대가 합쳐진 기록도 있다. 지방에 살 때는 주말부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남편이 전출 가면서 세대주가 되었다가 다시 세대합가 되는 기록도 남았다. 결혼 후에는 세 번의 이사 기록이 있다. 전세니 자가니 기록은 없지만 언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 있다. 살았던 집과 지역에 대한 추억도 떠오른다.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해서 보니 족보까지 찾아본다면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족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족보를 본다고 해도 한자에는 까막눈이라 읽을 수도 없다. 한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도 조상의 역사를 모르니 족보를 본다고 해도 일자무식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조금 일찍 자서전 쓰기를 시작했다면 부모님께 여쭤볼 수 있었겠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니 알 길이 없다.




사진 찾기, 각종 증명서 발급받기, 주민등록 떼어보기 만으로도 자기 삶의 확실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연도와 날짜는 정확하게 알게 된다. 희미했던 사건과 사고들도 확실하게 회상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자서전 쓰기의 자료수집 과정인데 다양한 기억과 함께 감정들도 올라온다. 당시의 사건과 함께 사람들도 생각난다. 당시 어떤 생각으로 어떤 느낌으로 어떤 자세로 살았는지 당시의 느낌과 분위기, 감정까지 올라온다. 어떤 일들은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어리지만 어떤 사건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은 비교적 빠르게 소환할 수 있다. 사건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끌어낼 수 있다. 뇌간이나 주름 사이 굽이굽이에 박혀 있는 기억들은 풀숲을 헤치며 다소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습지나 음지를 지나가야 한다. 해마의 깊은 동굴 속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들은 좀처럼 깨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소리치고 두드리고 꼬집고 몸부림을 쳐도 깨어날까 말 까다. 무의식의 세계에 넘어가 있는 기억들은 과거라는 세계를 아무리 탐험해도 회상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생각만큼 속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상하는 일련의 일들이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 찾기와 기록하기는 가다 쉬다를 반복하게 된다. 보람차고 성과가 있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했다가도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일이나 아쉬움이 남는 일들에서는 멍해지기도 하고 침울해지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데 바꾸고 싶은 때에서는 한참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는 멈추어야 한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 의욕적으로 부지런히 하다가도 멈춤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쉼을 여러 번 해야 한다. 장이 숙성되기 위해 휴지기가 필요하듯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도 휴식기가 있어야 한다.

기억나지 않는 일들은 기억나지 않는 대로 남긴다. 사실여부나 옳고 그름의 문제도 따지지 않고 뒤로 미룬다.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후회는 후회대로, 즐거운 일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 감정대로 남긴다. 나중에 다시 하면 된다. 모든 걸 잠시 멈추고 휴식하기도 자서전 쓰기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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