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육아, 인내의 과정이지만 배우며 사랑하며 즐기자!
부모 되기가 힘들어도 자식을 낳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를 이어가고자 하는 생명체로써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자식을 키우면서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가 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아이들을 *<내가 만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의 시처럼 키우고 싶었다. 아이와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명령하는 일은 덜하려고 싶었다. 시계보다는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고, 아는 것보다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고,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고, 들판도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오래 보고자 했다. 덜 단호하고 덜 명령하며 더 적게 다투고 더 많이 긍정적이고 더 많이 껴안고 더 많이 사랑하는 부모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자주 잊어버렸고 가끔은 마음과 반대로 행동했다. 부모로서 처음 겪는 많은 일들에 미숙했고, 어리석은 행동이 많았으며, 잘못인지 알고 잘못을 저지르고, 잘못인지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가끔은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심각한 오류에 빠지기도 했다.
부모로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녀가 제일 잘한 일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늘 아이들 곁에 있으려고 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고자 했다. 아이들과 노래하고 춤추고 공원과 들판을 뛰어놀고 책 읽고 놀이하는 시간에 집중했고 소중하게 여겼다. 그다음으로 잘한 일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 것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통찰을 얻고, 무의식의 세계에 자리한 내적불행을 극복하였다. 알아차림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였고, 말과 행동이 바뀌었으며, 아이들과의 관계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지혜롭고 당당하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동반자 책
부모가 바르게 살면 아이들은 바르게 자란다. 하지만 부모가 주지 못하는 상황이나 부모가 알지 못하고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에게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많지만 부모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부모 못지않은 길잡이로 아이들은 책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성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아이들이 지혜롭고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부모가 바르게 살면 되고 다음으로는 책을 즐겨 읽고 사랑하며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배우기 바랐다.
첫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퇴근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애들 책 좀 많이 샀어."
"얼마나 샀는데? 백만 원어치 샀어?"
"삼백만 원어치."
책과 은물(가베)을 합하니 아이의 첫 책이 삼백만 원어치였다. 아이의 독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이의 책은 욕심껏 샀다. 책은 카드 형태부터 두꺼운 그림책, 단어책, 동화책, 노래, 비디오, 디스크 플레이가 있었으며, 영어책도 디스크 플레이와 테이프, 비디오, 단어카드 등이 있었다. 은물(가베)도 책과 같이 구입했는데 헝겊, 플라스틱, 나무,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종류도 다양했으며 색깔도 알록달록 했다. 사은품으로 받은 병풍 그림은 놀면서 이야기 세상에서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거실에 책장을 두고 아이가 늘 책을 접하고 놀이처럼 물고 빨고 보고 듣도록 했다. 아이는 책을 마르고 닳도록 가지고 놀았고, 엄마는 지치지 않고 책을 읽어주고 또 읽어주었다. 은물은 쌓고 부수고 만지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들며 놀았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책은 더 많아져서 나중에는 거실과 아이들 방까지 가득 찼다. 이사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책이 될 정도였다. 종일 책을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책으로는 부족해서 한 달에 두세 질을 대여하여 읽기도 했다. 아이들이 평생 읽을 책을 유아기 때 다 읽은 듯하다.
첫아이는 육아 휴직을 하며 엄마가 밀착하여 키웠다면 둘째는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 크는 줄도 모르고 키웠다. 첫째와 둘째는 성별이 다르고 성격이나 성향도 달랐다.
첫째인 딸은 공주와 인형, 토끼를 좋아했다. 토끼 나오는 책은 몇 백번은 읽었을 것이다. 토끼가 우유를 먹는 장면이 나오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우유를 마셨고, 토끼인형을 업고 아가 놀이를 했다. 책을 읽어줄 때 엄마가 졸다가 틀리게 읽으면 토씨조차도 고쳐주곤 했다. 조금 커서는 분홍색과 예쁜 인형을 좋아했다. 분홍공주였다. 할머니가 딸의 옷을 만들어주고 인형옷도 만들어 주셨다. 아이는 웃는 모습이 예뻐서 미소천사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첫째는 언어 습득이 빨랐고 지식 습득력도 좋았다. 순하고 섬세하였으나 이유를 알 수 없이 울거나 잠투정이 심했다. 저녁 두세 시까지 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아이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태우고 야단치고 가끔 화를 내기도 했다.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부족한 엄마 소양이 그 정도라 어쩔 수 없었다.
둘째인 아들은 몸으로 놀아줘야 했다. 특히 사자를 좋아해서 사자와 호랑이 싸움놀이를 하곤 했다. 사자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시어머니가 자주 가는 절에 스님이 "너랑 나랑 같은 말띠다."라고 말하니 "사자 띤데요."라고 했다. 그 뒤로 아들은 별명이 사자띠가 되었다. 아들은 공룡도 좋아했다. 육식공룡을 좋아해서 공룡 싸움놀이를 하곤 했는데 공룡이 물고 뜯고 다투는 것처럼 몸으로 놀아줘야 했기 때문에 몇 분 놀고 나면 체력이 방전되었다. 아들은 감상적인 면도 있어서 눈 오는 날에는 혼자 눈밭을 뒹굴기도 하고 차를 타고 갈 때 지긋이 밖을 보기도 했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났다. 둘째는 낯가림이 심했고 말이 없는 편이어서 초등학교 일 학년 때는 선택적 함묵증인지 걱정하기도 했다. 둘째는 고집이 셌고, 자기주장을 절대 꺾이지 않았다. 추운 겨울 창문을 닫자고 하는데 말을 듣지 않았고, 비디오를 그만 보자고 하는데 때를 써서 매를 대기도 했다. 매를 대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때 이후에는 절대 매를 대지 않았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휴양림, 바닷가 등 여러 곳을 다녔다. 처음부터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 거실에 퍼져서 리모컨만 돌렸다. 아내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책 읽어주고 돌보느라 바쁜데 도와주질 않으니 짜증도 났다. 밖으로 나가면 남편이 아이들을 봐주니 무조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원을 수도 없이 다녔고, 딸이 춘향이를 좋아해서 한해에 여러 번 남원에 있는 춘향테마파크를 갔다.
아이들의 한글 떼기는 가르치기보다는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익히는 방법을 택했다. 책을 많이 읽어주고 자주 보아서인지 둘 다 대여섯 살쯤 저절로 글자를 익혔다. 늘 책을 끼고 살았고, 자는 동안에도 테이프나 CD를 틀어주었고, 밥상머리나 차로 이동할 때도 책을 가지고 다녔다. 밤새 책을 읽어주는 날도 많았다. 두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첫째는 영아기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어줬는데 둘째는 그러지 못했다. 첫째는 육아 휴직으로 아이에게만 집중했지만 둘째는 직장을 다니고 삼 교대를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읽어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둘째는 책 읽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적당히 읽어주고 자자고 하면 잘 때까지 읽어달라고 졸랐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밤새서 책을 읽어주어야 했다. 어쩌면 아이에게 채워지지 않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은 피곤했지만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여러 달이 지나고 나니 "이제 그만 됐어."라고 말했다. 이후 아이에게 밤새워 책 읽어주기는 끝났다. 유아기 아이에게 책은 엄마와의 교감이었던 것이다.
영어조기교육과 사교육에서 갈등
독서 교육을 즐겁게 놀이처럼 하고자 했는데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독서교육의 중요성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지식적 욕심이 커져서 생긴 일이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유아기 때부터 아이들에게 영어를 노출시키면서 놀이처럼 영어를 배우기를 바랐다. 영어책을 읽어주고 노래하고 춤추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흡수시키려고 했다. 잠수네 아이들이나 푸름이 닷컴에 가을이를 보면서 욕심이 커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의 영어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입학시켰다. 영어유치원에 들어간 순간 놀이처럼 영어를 배울 수는 없었다. 들어갈 때부터 경쟁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집에서 영어 노출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은 경쟁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곧잘 따라갔다.
아이들은 충분히 놀아야 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린아이로서의 누려야 할 당연한 일상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일 학년이 가방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며 학원을 다녔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때가 되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녀는 뒤늦게 영어를 잘하기는 바라는 욕심과 조기 교육을 통해 높은 성취를 얻고자 했던 열망을 내려놓았다. 아이와 상의하여 사교육을 정리했다. 피아노는 배우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학원만 다녔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은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사교육 없이 교육을 하기로 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렸다. 아이들에게 학원 대신 자유를 주었다.
강박적인 독서 교육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부여했다. 책을 통한 지식교육과 감성교육도 필요하지만 엄마와의 교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책은 스스로 찾아서 즐기면 되고, 살면서 인생책 한 권만 만나도 좋고, 꼭 독서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독서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책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학원을 정리한 것은 잘한 것 같고, 독서교육은 자율성을 주면서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독서습관이 잡힐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던 것 같다.
자기 치유와 성장하기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생각할 때 부모가 본보기가 되어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육아 방법 제대로 몰라서 어렵기도 했다. 아이들과 번번이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자기주장이 생기고 고집이 세진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여기면서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를 훈육해야 할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엇나기 일쑤였다. 아이가 사랑스러웠으나 그녀의 마음에는 화가 많았다. 아이가 자랄수록 화는 커지고 분노가 되어 활화산처럼 폭발하였다. 한번 폭발하니 더 자주 더 크게 터지곤 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무섭게 대하고 질책하고 큰소리를 치며 몰아붙였다. 나중에는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얼굴이 벌게지고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분노 감정에 휩싸이니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것은 마음뿐이고 현실에서는 나쁜 엄마가 되어갔다. 좋은 엄마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아이들을 훈육할 때 감정에 휩싸여 화를 내거나 분노를 폭발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자식에게 헌신적이었지만 곧잘 화를 내고 남과 비교하고 욕을 했던 어머니를 보고 자랐던지라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나면 후회스럽고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절대 어머니의 모습은 닮고 싶지 않았으나 어느새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자신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보았고, 딸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과거 어머니에게 혼나던 어린아이가 딸의 모습이었고, 딸을 야단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과거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딸과 자신 그리고 과거의 어머니가 혼재되어 마음과 감정을 휘둘렀다. 불행의 연결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같은 얼굴을 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뒤섞였다. 과거 치유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서른이 넘은 그녀를 뒤흔든 것이었다. 남편은 '플레이어가 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이성적으로는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로서 올바른 모습을 찾기 위해 육아서를 읽고, 강연을 쫓아다니고, 엄마 모임에도 나갔다. 당시 한참 유명했던 푸름이 아빠 강연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자라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가 다 큰 현재의 어른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적불행'이라는 무의식의 언어와 그것이 일으키는 감정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해야 '좋은 엄마 되기'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깊은 무의식의 상처는 책 몇 권과 강연 몇 번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 무의식의 영역인 내적 불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의식은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는데 깊이 잠자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셀프(self) 심리치료를 하기로 했다.
사이버 대학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하여 자기 치유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의 목적은 내적불행을 치유하고 내면의 작은 아이를 보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다. 사이버 대학의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마지막 학기에는 대면상담 프로그램도 있었다. 코로나를 겪어봐서 알겠지만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제대로 수업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상처를 반드시 치유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므로 열심히 공부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교재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고, 올라오는 감정 등은 토해내듯 쏟아냈다. 강의를 듣는 시간은 공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치유의 과정으로 삼았다. 강의에서 알려주는 상담기법을 자신에게 적용했다. 상담 기법 중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빈 의자 기법이었다. 의자에 베개를 올려놓고 어린 시절이나 성인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어머니가 되어 딸에게 하고 싶은 말도 해보았다. 어머니에게 듣고 싶은 말도 나누었다. 어머니에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기도 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메모하고 말해보고, 책을 읽고 다시 정리하고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상담심리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과 현재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서라는 깨달았다. 그 깊은 통찰이 기쁜 것이 아니라 슬펐다. 사랑이 고파서, 인정이 받고 싶어서, 관심에 굶주려서 화가 나는 것이었다. 서른이 넘은 자신이 아이처럼 사랑욕구에 목말라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어이없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면의 아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딸에게 어떨 때는 사랑을 주었다가 또 어떨 때는 미워하고 욕을 하고 차별을 하였다.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서 혹은 아이가 잘할 때만 예뻐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원했던 아이에게는 들쭉날쭉한 어머니의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거다. 가뭄이 해갈될 정도로 충분한 사랑이 내려야 하는데 가끔씩 병아리 눈물만큼만 사랑이 오다가 말고 또 오다가 되돌아가버리니 늘 갈증이 났던 것이다. 자기 내면의 욕구에 대한 통찰이 있고 한동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울고 밤새우고 억울해하고 슬퍼하기를 반복했다.
4~5년을 심한 몸살을 앓고 나니 자신의 연약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의식 세계에 대한 깨달음으로 부정적인 감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기감정 들여다보기와 알아차리기로 멈추는 방법도 배웠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사랑과 인정, 안정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어른이어도 아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미움, 죄책감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애써 어머니를 미화하지 않았고 마음껏 미워해도 괜찮았다.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했고, 자신의 감정에도 적당한 시간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내면의 어린아이를 위로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배우고 익히며 감정을 토해내고 통찰로 이룬 진전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좀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어머니의 고단한 인생을 더 이해하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제법 어른스러운 생각도 했다.
자기 치유를 통해 아이와 관계 개선하기
딸과의 관계도 내적 치유를 하면서 조금씩 개선되었다. 물론 쉽게 이룬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괴로웠고, 중간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끝이 안 보이는 듯하여 좌절하기도 했다. 조금 좋아진 것 같다가도 뒤로 가고, 다시 앞으로 갔다가도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아이가 엄마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고 놀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처럼 여겨져 괴로웠다.
어느 책에서 '문제에는 반드시 그 답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안철수(당신 서울대교수, 현 국회의원)-라는 문장을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도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반드시 답을 찾아야 했다.
아이와의 관계는 내적치유와 달리 실천의 문제가 있었다. 실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보고 나은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했다. 아이와 다툼이 있었거나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문제 상황을 재현하고 어떻게 말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보았다. 갈등 상황에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를 말로 연습하고, 딸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는지 바람을 말로 해보았다. 연습하는 것을 보면 일인극이나 신파극이 따로 없었다. 미리 연습을 하니 실제 상황이 닥치면 연습한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아이와 대화법을 연습하고 감정을 통제하니 관계가 개선되어 갔다. 가슴에서 열불이 났던 것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화는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잘못을 아이에게 투사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화가 나는 일이 줄어들고,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차분하고 정제되어 절제된 말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변하기 시작하니 아이는 금방 좋아졌다.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입에서 "행복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만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다이애나 루먼스 -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키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하나만 #라라크루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