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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퇴사와 새로운 도전

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도전해 보길 바라.

서툴러도 괜찮고, 잘 몰라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단다.

늘 곧은 길로만 걸어갈 수는 없잖니.

길이 없으며 길을 만들면 되고,

진흙탕 길은 수렁에 빠져가면서도 걸어가면 된단다.

가끔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길은 굽이쳐 돌아가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섰다가 헤매기도 하면서 찾아가면 된단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겠니.


- <딸아, 행복은 여기에 있단다> 중에서 -




퇴사를 생각하며


'직업이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라면, 직장은 자신의 꿈을 담아내는 그릇이다.'라고 여겼던 그녀는 직장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했다. 삼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시댁으로 가고 남편은 다른 지역에 있는 직장으로 가 있다가 주말에만 집에 왔다. 남편이 주말에 집에 오면 그녀는 병원으로 출근했다. 야간 근무는 또 어찌나 힘들던지 밤근무 들어갈 때만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 쓰림도 심해졌다. 밤근무 후 낮에 잠을 때는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잠을 깨기도 했고 깊은 잠을 자지도 못했다. 손이 가는 네다섯 살 아이들은 예민했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시기라 보살피기도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갑상선 암으로 수술하고 난 후에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일기에는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을 거야. 차라리 짐승으로 태어나고 말지" 그러고는 폭폭 해서 울었다. 여자는 도대체 뭔가. 돈 벌어, 집안 청소해, 밥 해, 빨래해, 애봐, 시부모 공양해야지... 도대체 쉴 틈이 없다. 수술 후 피로가 가중되는 지금. 지쳐 쓰러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요즘 아이들 장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싸우는 일도 많아지고. 나도 아이를 혼내고, 화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약 잘 챙겨 먹고 있어?"라고 말한다.

어젯밤에 울고 났더니 남편은 밤늦게까지 거실 청소를 말끔하게 끝내고는 거실에서 잠들었다.

매 근무가 모두 힘들고 지친다. (2005년 6월 3일 금)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 간호사로서 자부심과 긍지도 사라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번아웃(소진)이 왔다. 한번 이직을 생각하니 간호사의 일상이 고달프기만 했고, 아주 사소한 직장 내 갈등에도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입사했지만 병원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상당히 충격이 컸는데 '이 시련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는 신의 계시다'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퇴사를 생각하며 퇴사 전 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십여 가지 리스트를 작성해서 체크해 보니 돈을 제외하면 잃는 게 더 많았다. 주변에서는 친정어머니만 빼고 모두 퇴사를 말렸다. 친정어머니는 잠도 못 자고 삼 교대하는 딸이 얼마나 힘드냐며 그만두라고 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였다. 직장에서는 조금 기다리면 외래로 빼주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새로운 일이 명확했기 때문에 퇴사를 결정했다.


2008년 일기장에서 발견한 만화 한 컷


새로운 도전, 독서지도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직장의 성장성, 안정성, 연봉, 복지, 근무환경, 조직문화, 발전가능성, 근무환경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두를 따져보고 선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형편대로 그냥 묻어가기도 하고 오로지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퇴사 후에 육아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순히 병원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업을 생각했다. 병원에서 간호사 업무는 의사오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 보니 자존감 상하는 일이 꽤 많았다. 다음 직업은 조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가진 일을 하고 싶었다. 본인이 자유롭고 창의성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직업을 찾으려고 했다.

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고, 책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독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다. 책은 아이들 교육을 생각한 면도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가 책이기도 했다.

병원을 퇴사한 후에는 '독사지도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율성과 전문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책과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감성적인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인 것 같았다. '내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에서 시작했는데, 전체 교육을 바로 세우고 싶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보고겠다는 희망도 있었다. 돈벌이로서가 아니라 사람을 키워내는 일로서 독서지도사를 생각했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시험이 도입되면서 독서와 논술의 붐이 일었다. 그녀는 서른여섯에 병원을 그만두고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초등영어회화지도사 자격증은 전업을 생각하며 몇 년 전에 취득했었고, 퇴사하면서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를 공부했고, 속독사와 경매도 강의를 들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지인의 자녀 몇몇을 모아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일 년 후에는 주식회사 대교의 독서. 논술 지도 사업자를 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여러 선생님들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독서지도는 유아와 초등 저학년까지는 할만했다. 아이들이 굳이 책을 읽어오지 않아도 수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으면서 해도 되고 그림만 보고 이야기해도 되니 수업 부담이 없었다. 독서 수업을 놀이처럼 하면 되었다. 독서 효과도 좋아서 책을 즐겁게 읽고 활동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딸 친구들 모임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럴 줄 몰랐는데 제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이 맞았다. 딸이 잘하는데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었고, 또 욕심 많은 아이가 딸을 질투하거나 괴롭히는 것 같으면 화가 나기도 했다. 딸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으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책 읽기는 어려워졌다. 책이 두꺼워지면서 아이들의 독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고 숙제가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책을 잘 읽어왔으나 대부분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독서지도가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여러 학원 중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고학년은 수업을 방과 후에 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저녁이 되었다. 야간근무 하기 싫어서 병원을 그만두었는데 다시 밤에 일을 해야 했다. 한 번은 수업을 하고 나왔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도로가 꽁꽁 얼어붙었다. 차를 운전하는데 바퀴가 휘돌며 화단에 쾅 박아버렸다.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처음 독서지도 시작할 때는 스스로 교안을 짜고 자유롭게 했는데 회사에 들어가서는 좋은 교재를 받아서 수업했다. 회사의 교재와 가이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의 독서 수준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실적 압박이 있었고 선생님들이 모여서 초등학교 앞에서 홍보도 해야 했다. 사회적으로도 처음 독서논술 붐에 비하면 점차 시들해졌다. 같이 시작했던 여러 선생님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회원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회원도 많고 사업이 번창하는 선생님도 몇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신통치 못했다. 독서 수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책 읽기는 재미보다는 과제가 되었다. 독서가 더 이상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4년 만에 독서. 논술 수업을 접었다.


나중에 독서모임을 한다면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만 하고 싶다. 그때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낙엽 줍기, 압화 만들기, 책 만들기, 봉숭아 물들이기 등을 할 것이다. 그리고 실베 작가님으로부터 가족독서모임(도서,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신재호 지음)을 소개받았는데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가족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 다양한 독서지도 경험을 쌓았으니 힘을 빼고 모임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융통성 있고 재미있는 소통의 시간으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와 손자가 독서모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2008년 일기장에서 발견한 만화 한 컷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직업이 있다. 병원만 보아도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사, 물리치료사, 치위생사, 방사선사, 조리사, 영양사, 청소부, 이송요원, 행정사무직 등으로 직군이 정말 다양하다. 간호사가 일하는 곳도 신경계중환자실, 순환계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마취과, 소아과, 신경외과, 신경과, 혈액종양내과,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 여러 부서가 있다. 직업은 누군가의 권유나 강요에 의해서 하는 일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선택이다. 일하는 곳은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순간 마음이 끌려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지속하기도 하고 중도에 그만두기도 한다. 선택 혹은 배치 등은 순순히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만두는 과정을 보다 보면 가끔은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 직업, 관심사, 취미, 사물 등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인연이란 원인과 조건이 되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80억 인구 중에 어떤 사람에게는 끌리고 어떤 사람은 싫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 만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쳐 지나치기도 한다. 비단 사람만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기에는 예쁜 장미가 끌렸다가 어떤 때는 들국화에 매료당한다. 어느 시기에는 소설이 끌리다가 어느 때는 시가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수필이 손에 잡히기도 한다. 어느 물건도 필요에 따라 선택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작별을 고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진데 물건이야 오직하랴. 이별이란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영원한 헤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연을 헛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이 변화와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면 현재의 모든 인연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의 인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인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지금 이 순간 하는 일, 사람, 관심사, 물건 등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운명처럼 만났건 스스로 선택하였건 과거에 만났던 모든 것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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