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동네 극장에서는 ‘지브리 스튜디오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보러 갔습니다.
극한의 과학 문명이 불러온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천 년이 지난 시대, 부해(腐海)라 불리는 숲과 거기에서 날아오는 유독한 포자가 있어 남겨진 인간들이 살아가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다행히 나우시카가 있는 바람의 계곡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으로 부해의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어요.
애니메이션에서 유독한 포자를 뿜는 부해를 보며 지난날의 회사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유해한 기운을 뿜으며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체념해 버리기에도 너무 고역인 나날이었습니다. 나우시카의 세상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독이 고여 살 수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바람’이 필요했어요. 이 사실을 깨닫고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의 ‘바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시간에 오면서 환경이 변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고, 무엇보다 아이로 인해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면서 나는 조금 변했습니다.
다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날 선 방어기제도 조금씩 무너지고, 아이가 나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자라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참 이상했습니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어디에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나요?
나를 나로 살게 할 ‘바람’을 찾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