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의 정기 건강검진이 있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아이의 키와 체중이 평균을 밑도는 성장차트를 받아 보니 머리가 띵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성장 속도가 다르고 아이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균이라는 기준 앞에서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립니다.
1945년 클리블랜드 건강박물관에서는 조각상으로 전시돼 있던, 전형적 여성상인 ‘노르마Norma’와 신체 치수가 근접한 여성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노르마’는 부인과 의사 로버트 L. 디킨슨 박사가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와 합작해 탄생시킨 작품으로서 벨스키가 1만 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신체 치수 자료를 바탕으로 빚어낸 조각상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 건강박물관은 ‘노르마’ 조각상을 전시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미니어처 조각상까지 판매하며 ‘노르마’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선전하면서 ‘노르마’ 열풍에 불을 댕겼습니다.
대회가 열리기 전에 심사 위원들은 대다수 참가자의 신체 치수가 평균치에 근접해서 승부가 밀리미터 단위로 아슬아슬하게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대회가 열리자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9개 항목의 치수 중 5개 항목에 한정한 경우에서도 평균치에 든 여성은 3,864명의 참가자들 가운데 4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9개의 전체 항목에서 평균치에 가까운 여성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평균 체격의 여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죠.
19세기 이후 사회 전역에서의 보편적 평균주의 시스템 시행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부유한 민주주의의 수립에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가 그러했듯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고,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씁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평균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어 열패감을 느끼게 됩니다.
니체는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하고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 (초인 Übermensch)’고 했습니다. 이는 남이 만든 평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고유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100%의 나를 만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내용은 책 ‘평균의 종말’,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에서 일부 영감을 받아 그리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