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을 보며 PC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
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인종, 성별, 장애, 종교, 직업 등에 관한 편견이나 차별이 섞인 언어나 정책을 지양하는 신념, 혹은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영원한 것이란 없고 세상은 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바라 ‘PC주의’ 또한 열린 사고로 바라보려 합니다.
그러나 가끔 아이가 순진무구한 눈으로 정답을 물어올 때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진땀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프리스쿨에 호르몬 주사를 맞아서 수염이 나는 XX염색체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 선생님에 대해 물으면 다양성 존중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을 잘 골라 설명해 주지만 아이는 갸우뚱 합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여자야, 남자야?"
SNS나 메일 등으로 ‘They, Their, Them’으로 본인을 칭하길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이웃나라 캐나다는 좀 더 나아가 일부 주에서는 성별을 칭하는 종류가 세 가지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M, F, 그리고 이를 명시하지 않는 X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민감한 사안이지요.
레스토랑에 갔을 때 구석진 자리를 안내하거나 서버가 너무 늦게 오면 우리가 아시안이라 차별하는 것은 아닌가 눈을 희번뜩 거리며 주위를 살피지만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만큼 인종차별이란 때로 참 미묘합니다.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s)이란 말을 아시나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는 말처럼 대나무 천장은 서구권에서 아시아계가 겪는 승진 후순위 등 리스크, 즉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이가 자라며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명백한 가름선 사이에서 겪게 될 혼란스러움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부모가 대신 겪어줄 수 있는 일도 아니라 아이가 오롯이 혼자 거쳐가야 할 길입니다.
세상의 경계는 흐려지고 재정립되기를 반복합니다.
마치 블럭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것처럼.
새로운 정의는 기존의 질서가 모두 무너진 위에 바로 서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와르르 무너진 블럭 사이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파리올림픽 #PC주의 #대나무천장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