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장 안정됐을 때 책을 읽는다. 지금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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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빠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일기의 날짜가 11일 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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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피곤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떠오른다. 예전에 오피스에 앉아 회의하는 체력이 대단했다. 여기서는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걷고 또 걸어도 피곤해지면 안 된다. (주석: 난 얼마 전에 회사를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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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도 난 항상 잠을 자고 나서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정강이에서부터 올라오는 피곤함은 무엇인지 항상 내 인생을 따라다녔다. 요즘 백수로 바깥을 돌 일이 많은 나는 그 피곤함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이 피곤함은 책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글을 쓰지도 못하게 하는 바깥의 기운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이후의 나른함이다. 당신. 이제부터 내가 죽고 나서 이 유서를 읽을 누군가를 당신이라고 칭해야겠다. 당신 이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 잠은 바깥 어딘가를 항해하고 들어온 나라는 배의 정박 행위였다. 어딘가에 묶이기 위해 나는 잠을 자야 했다. 그 피곤함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실제로 몸이 피곤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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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여. 이 유서를 인터넷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방금 했다. 내가 죽고 나서 이 유서를 배포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앞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주석을 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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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노트북은 타자를 꾹꾹 눌러야만 한다. 얕잡아보고 눌렀다가는 헛발을 짚고 자음의 몇 개만 적고 있을 때가 허다하다. 난 이 씨름이 마음이 든다. 날 허투루 보지 말라는 키보드의 단언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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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모든 문장에 여운을 남기는 책이 있다. 그것은 남들이 뭐라 부르든 시다. 장르가 파괴된 *의 나열. 문단으로 단정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파편화된 문장이 *의 도움으로 열거되는 책을 읽으며 난 희열과 자유를 느끼고 있다. 책은 내게 질문을 남기며 결국 슈베르트를 검색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이 모든 언어적 철학가에 앞선 인류의 철학자라는 말을 생각한다. 음악과 문장이 동시에 흡수되고 생각은 섞인 잉크처럼 나선형의 소용돌이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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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난 아침식사에 관심이 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아침식사 말이다. 결정했다. 다음 주의 아침은 생소한 이름의 포리지와 바나나 스플릿이다. 궁금하신 분은 레온이란 식당에서 나온 레시피 책을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