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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antmatch Production Sep 29. 2019

하얀 죽이다. 그걸 먹고 있다. 깨소금과 약간의 김가루가 뿌려졌다. 김치는 가져왔지만 먹지 못한다. 주변에 아픈 동료가 쉬고 있다. 피해 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김치는 반투명 플라스틱 통에 그대로 있다. 지름이 약 5cm이고 깊이가 2cm가량인 작은 통이다. 난 죽을 먹으며 김치 맛을 떠올렸다. 김치 없이 먹는 죽은 곤욕이다. ‘이 죽을 어떻게 먹지’ 속으로 생각한다. 그냥 김치를 먹을까도 생각한다. 한 숟가락. 그리고 뒤라스를 읽는다. 아니 그냥 먹는 척을 한다. 두 숟가락. 그리고 뒤라스를 읽는다. 오랫동안 씹는다. 안 먹기 위한 핑계처럼 씹는다. 뒤라스의 글이 머릿속을 타고 흐른다. 그는 글쓰기에 대해서 적고 있다. 뒤이어 머릿속으로, 뒤라스의 문장을 따라서 말이다, 짠맛이 등장한다. 순식간에 전복도 씹힌다. 아주 미세한 전복의 비린맛이 혀끝으로 스며든다. 밥알에서 단맛도 느껴진다. 그 맛이 강렬해서 뒤라스의 문장을 뒤덮어버린다. 쓰나미처럼 말이다. 난 책을 덮고 이 느낌을 적는다. 김치같이 강렬한 맛이 덮어버렸을 수많은 맛의 죽음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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