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화가 났다. 오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주변의 것들에 짜증 났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속이 좁은 건지 사람들이 우스운 건지 따져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어떤 역사처럼, 군중에 의해 판단될 뿐이다.
나의 역사란 건 가끔… 기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어느 날은 화려한 듯하다가 어느 날은 미련한 곰 같다. 사람은 관찰자에 따라 잘도 변한다. 양자물리학이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실체는 여러 가능성의 차원에서 존재하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확정된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내가 느끼는 나의 역사는 양자물리학이다.
글을 쓰며 이 우울한 자화상을 그리는 건 도움이 된다. 나를 바라본다. 그건 안정감을 준다. 내가 못생겼는지 잘생겼는지 아니면 뚱한 인간인지 아니면 활기찬 인간인지. 아 그랬지. 난 이랬지 싶은 안도감을 준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고 실체적인 존재감을 느끼듯이, 추운 겨울에 오리털 이불속으로 파고들 듯이, 손발에 열이 차오르는 것, 밥을 먹고 배에 포만감이 차오르는 것, 그 부피감은 실존적이다. 그건 내가 나를 느끼는 안도감이고 아 내가 살아있구나 를 연발하게 하는 따스함이다.
벌써 열시다. 이제 더 이상 이 심상에 집중하지 못하겠다. 난 이 몽상에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