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깨어나는 몸

감각을 되찾으며 살아가기

by 아토

언제부턴가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마도 옆에서 뒤척이다 침대 아래로 떨어지거나, 혹은 “엄마, 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자기 때문일 거다. 오늘은 안방 가득 울려 퍼지는 두 남자의 코골이 서라운드에 결국 눈을 떴다. 새벽 네 시 반.


우리 집에서 제일 안락하게 느껴지는 거실 소파에 기대 누워,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바깥소리에 귀 기울인다. 우수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 식구들이 내는 코골이에는 잠을 깨면서도 풀벌레 소리에는 평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거리가 멀어서일까. 소리의 결이 달라서일까.


주방 냉장고 팬이 윙윙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20대 초반 한 절간 주방에서 잠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무렵의 나는 세상에 물음이 가득했고, 왜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는지 답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적절한 경계 짓기’를 몰랐던 나는 모든 자극을 내 몸과 마음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 결과, 남들보다 몇 배는 깊고 진하게 세상과 사람들을 느끼며 살아왔던 것이다.




심리학을 파고들며 황폐화된 내면세계를 다스리려 애썼지만, 삶의 지혜는 조금 더 풍요로운 토대에서 자라나는 게 아닐까 하는 본능이 나를 절로 이끌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셨던 외할머니는 늘 불교방송을 틀어놓으셨는데, 어느 날 대구 동화사 승가대학 학장(강주)이셨던 지운 스님께서 강의를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 나 아무래도 지운스님을 뵈러 가야겠어.”라는 충동적인 결정과 함께, 이튿날 새벽 곧장 버스를 타고 혼자 동화사로 향했다. 연고도, 계획도 없었다. 대학교 2학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서울에서만 자라 지방행 고속버스를 타본 적도 없던 애송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끝내 산길을 올라 여섯 시간 만에 팔공산에 닿았다.


동화사 입구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그리움과 함께, ‘와야 할 곳에 마침내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운스님은 어떻게 뵐 수 있을까, 약속도 없이 큰스님을 찾아가도 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바로 옆에 붙여져 있던 법문 안내 전단지를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재가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문을 바로 그 시간에 하고 있었다. 무작정 설법전으로 향했다. 열띤 강의가 한창인 설법전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자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지운스님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학생은 어떻게 왔는고…?”라 물으셨고, 나도 모르게 선문답 하듯 대답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스님 뵈러 왔습니다.”라며 자리에 앉았다. 강의가 끝난 뒤 스님의 다실로 초대받아 이틀 동안 차담을 나누었다. 그때 처음 접한 불교적 몸의 해석과 마음의 작용에 깊이 매료되었다. 스님이 외국에서 어렵게 구하셨다며 보여주신 티베트 불교 도감과 몸의 지도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자료들을 공부의 재료 삼아 다시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인연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나의 내면으로 돌리게 되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답과 함께.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의 투영이었고, 닦아야 할 대상은 오직 나 자신뿐임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너는 맨발로 세상을 밟고 다니는구나. 그러다가 발을 다치면 그건 네 잘못이냐, 세상 잘못이냐… 신발을 신어라, 아토야. 신발을 신고 세상을 살아라.”라는 한 선지식의 말씀을 이제야 조금 알듯 말 듯 느끼고 있다. 그때는 영 알 수 없었다. 신발은 또 어디서 구하라는 건가 싶어 눈만 껌뻑이며 들은 지가 어느덧 십오 년 전이다.


다시 감각하는 기능이 살아나고 있다. 내가 그동안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무리했던 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감각을 차단하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수한 자극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감각을 차단하고 포자처럼 움츠리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씩 세상과 적절하게 경계를 지으며 교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너무 울지 않으며 슬픔 그 자체가 되고, 너무 웃지 않으며 기쁨 그 자체가 된다. 코 끝을 스치는 공기가 가슴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자연스레 나가는 호흡을 바라본다. 키보드를 어루만지는 손 끝의 감촉,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 책상 앞 곧추세운 척추를 느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


어제부터 다시 현대무용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몸을 관통하는 생명의 흐름을 느끼며, 건강하게 감각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수업은 맨발로 진행됩니다! 공간을 뛰어다니고 바닥에서 뒹굴며 흐름을 느껴보세요!”라는 무용학원 원장님 말씀에 맨발로 선 나를 보며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바라건대 앞으로의 삶은, 매 순간 감각하며 맨발로 세상에 서서 만물과 교감하는 길이 되기를.



https://youtu.be/OwuEY23eg94?si=JfgFAHQNh83G_5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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