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와 습관형성의 과학
※ 2025년 7월에 쓴 글입니다.
매일 108번의 티베트식 오체투지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2주가 되어간다. 잘못된 자세와 오랜 무리가 누적된 탓인지 두 달 전에 급기야 척추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몸을 구겨 넣고 잘못된 자세로 운전을 했던 날 이후로, 왼쪽 허리에서 시작해서 발끝까지의 바깥쪽 면이 아프고 시리고 저렸다. 앉아있는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루의 대부분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루푸스 증상인지, 혹은 늘 앉아 일해서 생긴 직업병인지 알 수 없었다. 스테로이드를 써서 신경 쪽의 염증을 잡아보려는 시도도 하였으나, 근본적인 부분에서 개선이 안된다면 매번 이 통증이 반복될 것이 틀림없었다.
24년 12월, 루푸스를 진단받은 몇 달 후 시작하게 된 헬스 PT 선생님에게 나는 결국 도움 요청을 하였다. PT 선생님은 젊은 나이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결국 한 사람을 전문가로 키워내는 건 우직한 성실함이라는 점을 PT 선생님을 보며 자주 느낀다. 우리 헬스장에는 10여 명 남짓한 트레이너들이 있는데, 유일하게 우리 PT선생님만 수업 중의 모든 동작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수업이 끝나면 후기와 함께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날 밤이든 다음날 새벽이든 열댓 개의 카톡이 선생님으로부터 주르륵 날아온다. 이제까지 선생님과 PT 수업을 50차례 진행했는데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보내주었다.
선생님에게 나는 아주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회원일 것만 같다. PT를 시작하면서 측정한 인바디에서는 100점 만점에 75점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는데, 오히려 PT 두 달째 잰 인바디에서는 근육량이 10%가량 줄어들어 버렸다. 생전 근력운동을 한 적이 없는 회원에게 철봉을 거머쥐는 방법, 두 발로 땅을 제대로 지탱하고 서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틈틈이 카톡으로 컨디션까지 챙겨가며 관리를 해줬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두 달 째의 인바디 결과를 받아 들고 나보다 오히려 선생님이 실망하면서 보인 참담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당시의 나는, 휴직을 들어가기 전 ‘모든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들어가려는 욕심’ 때문에 밤낮으로 무리를 하고 있었다. 낮에는 연구소에 가서 실험에 매달리고, 저녁에는 낮에 못다 한 병원 판독과 보고서 작성을 하느라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던 내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또 원래 모습대로의 나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루푸스 활성기가 와서 전신염증반응으로 온몸이 자글자글 끓다 못해 몸 안의 근육이 녹아내린 것이다. (과도한 염증 반응은 근육단백질의 분해를 증가시키며 근육 합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혹은 자가면역성 근육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망하며 자신의 트레이닝 방법론이 잘못된 것인가 자책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오히려 회원인 내가 위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어려 보여서 건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몸의 내구성은 엄청나게 떨어져요. 설마 이 정도로? 라 생각할 때 저는 벌써 병이 나있어요. 그러니 저를 환갑 넘긴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노인에 준해서 트레이닝해 주시면 아마도 제 몸이 잘 따라갈 거예요. 선생님의 방법은 틀리지 않았어요. 평소 같았으면 이미 입원했었어야 했는데, 이번 겨울은 헬스 덕분에 입원 없이 지나갔다는 게 그 증거예요.”
이후 선생님은 더욱더 살뜰하게 나를 보살펴주었다. 이제 컨디션을 좀 끌어올릴만하면 독감에 걸려서 수업을 빠지고, 이제 또 근육을 붙일만하면 루푸스 활성기가 와서 기껏 붙인 근육을 녹여오는 일상의 반복 중.. 이번에는 이 할머니 회원이 또 고관절부터 발끝까지 저리단다. 다리가 저려 속상해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일상생활 중의 잘못된 자세와 누적된 피로를 지적했다.
“몸은 결국 카르마(업)에요. 우리가 해오던 모든 습관과 행동의 결과물이 몸에 그대로 보여요.”
선생님의 대답은 나를 대단히 놀라게 만들었다. 단 한 번도 불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 선생님 입에서 저런 얘기를 듣다니..
선생님은 원래 육상을 전공하던 체대생이었다. 특히 오른쪽 고관절을 반복적으로 쓰던 허들 넘기 선수였는데, 한쪽으로만 넘는 행동 패턴이 몸에 익고 습이 되어 결국 몸의 불균형과 통증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고 하였다. 본인의 종목 연습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던 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과 몸의 중앙을 관통하는 척추선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가 크게 다쳤고, 선생님은 재활을 해나가며 몸에 대해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얻게 된 듯하였다.
다리 저림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때부터 선생님과 나는 다시 척추를 바로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고관절을 풀어주는 동작, 요추전만을 만들어주는 동작, 견갑골의 가동범위를 넓혀주는 동작, 전체 척추선을 곧게 유지시켜 주는 동작 등. 하루하루 다시 기본부터 쌓아나갔다. 통증 덕분에 밤낮으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동작을 집에서도 복습하던 중, 친한 화가 언니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언니는 거의 30년간 그림을 그려와서 오랜 시간 목과 어깨, 허리 통증에 시달렸는데 오체투지를 하고나서부터 통증에서 벗어났단다. 그러고 나서 언니로부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배웠는데 웬걸! PT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척추 운동 대여섯 가지가 오체투지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마치 그동안의 수업이 오체투지라는 한 문장을 위해 단어들을 따로따로 배워온 과정인 것처럼.
그날 이후 나는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PT 수업을 복습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첫 며칠은 배가 근육통으로 당겨서 고생을 했지만, 일주일째가 되니 정말 신기하게도! 다리 저린 증상이 90퍼센트가량 사라졌다. 그래도 다시 재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오체투지를 매일의 중요한 습관으로 만들고자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불교에는 삼칠일(三七日, 21일) 기도라는 수행 전통이 있다. 불교에서 7일 단위의 수행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체계인데, 특히 삼칠일은 7일을 3번 반복하는 집중 수행기간을 의미한다. 수행자들은 마음의 변화, 습관의 형성, 카르마(업)의 정화 등을 위해서 이 21일의 기간을 소중하게 사용한다. <대념처경>, <증일아함경> 등의 불교 초기경전에는 7 단위 시간의 수행을 권장하는 내용이 반복되며, 부처님 역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기 전 7일씩 총 7주간(49일) 머무르며 각 단계의 관조를 했다는 전승이 있다. 또한 불교의 심층심리학이라 부를 수 있는 유식학에 따르면, 반복된 행동과 마음의 고착화된 패턴(습기, 習氣)이 무의식에 잔상처럼 남아 이후의 인식과 습관, 성향에 계속 영향을 준다. 번뇌를 끊어내도 습기는 남아있을 수 있는데, 새로운 현상의 반복(훈습, 薰習)을 통해 새로운 행동 패턴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한다. 마음에 새롭게 길을 내고, 몸에 습관을 배이게 만드는 것이다.
최신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된다. 습관 형성과 관련된 주요 뇌 영역으로는 기저핵 (Basal Ganglia, 자동적 행동의 저장소), 전전두엽 (Prefrontal Cortex, 초기의 의식적 노력에 관여), 전측 대상회 (Anterior Cingulate Cortex, 새로운 습관 형성 시 활성화)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행동을 시도할 때는 전전두엽이 계획과 실행을 주도하고, 전측대상회가 동기부여 등으로 관여를 한다. 행동이 반복되면 점차 전전두엽과 전측대상회의 개입은 감소하고, 기저핵이 그 행동을 ‘습관’으로 자동화시킨다. 물론 그 습관이 형성되는 시간은 21일로 똑 떨어지지는 않는다. 96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영국의 Phillippa Lally 팀이 습관 형성에 실제로 얼마나 걸리는지 추적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그 기간은 18일에서 254일 (평균 66일)로 다양하였다고 한다. 개인의 차이에 따라 편차가 컸고, 습관화시키려는 행동의 특성 (단순할수록 빠르게 자동화)에 따라서도 달랐다. Phillippa Lally의 연구 논문을 검토하던 중 한 문장이 주의를 끌었다.
"Missing one opportunity to perform the behaviour did not materially affect the habit formation process."
(행동을 실천할 기회를 한 번 놓치는 것이 습관 형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Lally, P. et al. (2010). How are habits formed?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0(6), 998–1009. https://doi.org/10.1002/ejsp.674
이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매일을 끊김 없이 이어가려 애쓰는 내 몸과 마음에게 말이다. 지금 내가 새로 내고 있는 이 길이, 언젠가 아무런 내적 갈등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게 하려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소중한 한걸음이 108번을 이루고, 하루의 정성이 일주일의 흐름이 되는 과정을 꾸준히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척추를 곧게 세우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리라 믿어본다. 혹시 하루를 놓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음날부터 다시 일관된 마음으로 이어나가면 된다.
※ 26년 1월에 덧붙이는 에필로그.
늘 바깥에서 안식할 대상을 구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물리적 공간이었고, 어떤 때는 사람의 품이었습니다. 오체투지와 명상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니, 결국 쉬어갈 곳은 제 안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처럼 비장하고 치열하게 108배를 이어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지저분해진 집을 치우듯 조금씩 오체투지와 명상을 합니다.
무언가를 크게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면의 공간을 다시 넓히는 쪽을 선택합니다.
21배, 때로는 3배만으로도 지금의 저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