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늘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얼음장 같던 나를 녹여준 한 사람에 대하여

by 아토

4년간 전공의 수련을 함께 받았던 동기가 있다. 그 동기가 출산 휴가를 간 동안, 동기의 친정어머니가 암 합병증으로 우리가 수련받던 병원에 입원하셨다. 집에서 갓난아기를 돌보며 발만 동동 굴리던 동기를 대신해, 나는 병실을 자주 찾아뵈며 딸 역할을 했다. 동기가 복직했을 때 밀려드는 업무에 힘들까 봐, 일주일 치 업무를 미리 처리해 두기도 했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는 내게 고맙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토, 너는 참… 다정이 병인 사람이야.”


나는 언제부터 ‘넘치는 다정’이란 병을 안고 살게 된 걸까. 지금은 많은 친구들로부터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만, 나에게도 꽁꽁 얼어붙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차디찬 몸과 마음을 꾸준한 애정으로 녹여준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우정을 쌓는 법을 배웠다. 우정이란 늘 균형 잡힌 저울 위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친구 관계는 꼭 대등하지만은 않다고, 가끔은 생각한다. 하지만 함께 이 소중한 관계를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의 방향이 같다면, 둘의 다른 속도쯤은 아무렴 어떠랴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어린 시절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도 못했건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또 다른 이방인이 되었다. 물과 기름을 억지로 섞어놓은 듯, 아이들 무리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힘겨웠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나는 처세술과 인간관계론 책을 읽으며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혔다. 자녀의 아스퍼거 진단 이후 부모가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자폐적 기질을 발견하곤 한다는데, 나 역시 사회성을 책으로 배웠다는 점에서 조금은 독특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인천의 외갓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 진학과 함께 부모님이 계신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한 끼 저녁에 닭 네 마리는 기본으로 끓이던 대가족 속에서 지내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과 살게 되자 텅 빈 집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 엄마가 출근 전에 챙겨둔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와서는 몇 시간이고 혼자 컴퓨터를 했다. 서울 아이들과의 성적 경쟁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차라리 저녁 내내 학원에 붙들려 있는 전 과목 종합반에 보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 지영이와 친해졌다. 활발하고 장난기 많았던 나와 달리, 지영이는 단아하고 얌전한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말투는 늘 조근조근했고, 글씨는 자기 성품처럼 둥글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지영이 특유의 모난 데 없는 필체가 떠오르곤 한다. 은행에 다니시던 성실한 지영이 아버지는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산에 올랐다. “어제도 수분 보충한다면서 오이 먹으면서 산에 올랐어. 너무 힘들었어.”라는 투정 섞인 지영이 목소리를 들으면, 산에서 먹는 그 둥글고 길쭉한 오이의 맛이 괜히 궁금해지기도,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안정적인 가정 안에서 온화하게 자란 지영이는 나에게 우정을 가르쳐주었다. 말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몸으로 보여주었다. 친해진 이후 지영이는 매일 아침 등굣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 아버지를 닮아 성실했던 그 아이는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전날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하다 늦잠을 잔 나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고, 내가 씻고 아침밥을 먹는 동안 지영이는 텔레비전을 보며 조금의 재촉도 없이 기다려주었다. 가끔 준비가 늦어지는 날이면 둘이 허둥지둥 학교로 뛰어가곤 했다. 애벌레처럼 굼실거려도 지각할 일이 없을 만큼 일찍 일어나던 지영이가, 나 때문에 종종 지각을 하기도 했다.


지영이와 보낸 시간은 내게 일상이자 치유였다. 하교 후에는 자주 지영이네 집으로 향했다. 학원에 가는 날을 빼면 거의 매일 갔던 것 같다. 중학생 둘이 계란을 잘못 풀어 국물이 노랗게 된 떡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나란히 앉아 감상했다. 지영이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었다.


당시 나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어느 밤, 운동을 핑계로 둘이 학교 운동장을 돌며 밤새도록 그의 앨범을 나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뒤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공연을 왔을 때, 돈이 부족했던 우리는 예술의 전당 3층 구석 자리에 앉았다. 무대 위의 그는 점처럼 보였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감격해 눈물을 줄줄 흘렸고, 지영이는 옆에서 계속 휴지를 건네며 나를 달래주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지영이에게 받은 따스함을 당시의 나는 다정으로 갚지 못했다. 깊은 불안과 외로움, 질투에 시달리던 나는 내 결핍 때문에 그토록 착한 지영이를 종종 상처 입혔다.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몇몇 장면 앞에서, “그땐 왜 그랬을까” 하고 깊은 탄식을 내뱉곤 한다. 가시 돋친 말과 이기적인 행동 앞에서 그저 눈물만 흘리던 지영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참 뒤, 과거의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을 때에도 지영이는 둥글게 웃으며 말했다.

“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나도 부족한 거 많았는걸.”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진로가 달라지면서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지냈지만, 가슴 한편에는 늘 지영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남아 있었다. 지영이와 함께한 시간으로 가슴이 녹은 나는 이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배운 우정을,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건네며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 애썼다. “아토, 너는 정말 멋진 친구야. 너 같은 친구를 만난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의미 있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의 내가 지영이를 만났더라면 우리에게 더 많은 웃음과 즐거운 시간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우정에 있어 늘 나를 앞서던 지영이는, 아이만큼은 나보다 조금 늦게 낳았다. 줄넘기를 배우는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내게, 지영이는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딸 이야기를 자랑한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몰래 꺼내 먹는 아들을 단속하느라 분주한 내게, 이유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며 묻는다. 육아를 한 발 먼저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해진다. 나는 지영이에게 말해줄 수 있다. 너는 정말 잘하고 있다고, 좋은 엄마라고. 육아란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아이의 결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라서, 너는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사람이라고.


오늘 오랜만에 지영이를 만났다. 네 달 된 아기를 식구에게 맡기고, 나를 보러 병원 근처까지 와주었다. 일이 조금 늦어져 양해를 구하고 나갔는데, 웬걸. 얇은 옷차림이 몹시 추워 보였다. 얼마나 기다렸느냐 묻자 별로 안 기다렸다고 했다. 손을 잡아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가 계속 채근하듯 묻자, 머뭇거리다 영하의 날씨에 지하철역에서 30분이나 서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속이 팍 상해버린 나는 지영이의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건넸다.


“그렇게 일찍 도착했으면 미리 연락을 하지, 왜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어.”
내 말에 장갑을 주섬주섬 끼던 지영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뭐 괜찮았어.”


내가 또 졌다. 내가 아무리 다정해지고 착해져도, 지영이 너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일이 우정에 있어서 무슨 대수일까. 나의 다정으로 너의 추위를 녹여주고, 너의 선함으로 나의 퉁명을 보듬어 감싸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기다려주며 앞으로도 오래 함께 가고 싶다.


어른이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걸 나눠 가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m4BYpqn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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