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으로 남는 사랑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일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새삼 실감한다. 어른에게는 사랑하는 진심 어린 마음뿐만 아니라, 그 무형적인 마음을 삶 속에서 유형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능력까지 모두 필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만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사랑한다'는 말 안에는 사랑을 느끼는 마음과 그 사랑을 삶 속에서 구체화하고 견뎌내는 능력이 함께 담겨 있다.
지난 한 해는 내게 출사표를 던진 시간이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말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아휴직을 감행했다. 친한 동료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커리어 개박살 날 텐데, 정말로 괜찮겠냐?"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학회의 간사직을 내려놓고, 시험 출제위원 자리부터 여러 발표 기회들, 병원의 각종 위원회까지 먼저 손을 놓아버렸으니 스스로 커리어를 박살 낸 것이 맞다. 이전으로 돌아갈 기회도, 그 미련도 한꺼번에 차단해 버렸다.
그 선택이 가진 의미를 나는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너와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삶의 방향을 바꿀 용의가 있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누군가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을 때면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한 어르신이 남자의 사랑을 보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셨어." 그 말의 함의를 이제야 새삼 깨닫는다. 상대의 마음이 아무리 깊고 진실되더라도, 그것을 삶 속에서 구현해 낼 수 없다면 내 삶의 행복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며 회식 자리로 향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사과보다, 별다른 이벤트가 없더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평범한 저녁을 택하는 모습을 보며 사랑은 결국 선택하는 능력임을 다시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거창한 결심을 줄줄이 늘어놓고, 숱한 작심삼일의 흔적만 부끄럽게 들여다보게 된 이후였을까.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하게 다른 것을 느낀다. 거창한 결심보다 중요한 건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라는 것을. 사랑은 어떤 감정이 아니라, 꽃이 피어날 조건을 묵묵히 마련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터전을 만드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휴가를 냈는데도 병원에서 업무 연락이 빗발친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고, 동시에 답장을 적느라 손은 분주하다. 문득 정신을 차린다. 아, 나는 지금 아이와 함께 국립어린이과학관에 와 있었지. 아이 옆으로 다가가, 비어 있는 물펌프 손잡이를 잡고 나도 힘껏 펌프질을 해본다. 물이 튀고, 아이가 웃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디에도 미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