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일상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삶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상반기 나의 육아휴직에 이어 남편도 반년 간 육아휴직을 했다. 덕분에 작년 가을부터는 육아와 살림의 대부분을 맡겨두고,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봄이 오자 남편도 다시 중환자들 곁으로 돌아갔고, 우리 세 식구의 일상은 잘 짜인 쳇바퀴 속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의지하며 지냈던 선배 교수의 사직으로, 올해부터는 그가 맡고 있던 수많은 직함을 대신 떠안게 되었다. 병원에 있든 휴가를 보내고 있든 병원에서는 끝없이 연락이 온다.
밀려드는 일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알아차림(sati)을 챙겨보려 노력한다. 고요한 산속의 선원에서만이 아니라, 소음과 방해 요소가 가득한 이 일상 속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명상적 상태를 유지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쪼개며 살아왔다. 수행자로서의 나, 의사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새벽에는 명상을 하고 낮에는 병원 일을 하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언젠가부터 분열적인 이중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에너지도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사실 아토라는 한 명의 사람이다. 그래서 새롭게 목표를 세웠다. 흩어져있던 나를 하나로 모아보기. 그리고 매 순간을 수행하듯 살아가기. 어쩌면 이 소란스러운 병원은 내게 최적의 수련 공간인지도 모른다.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려는 노력 덕분일까.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색채의 업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정신적인 압박감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중간 관리자가 되고 나니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속에 내던져질 때가 있다. 나를 비우고 상대의 입장을 받아들이며 최선의 답을 도출해 보려고 애쓴다. 많은 이들의 목소리로 마음이 가득 차 어느 순간 중심을 잡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 한껏 숨을 들이켜본다. 목덜미를 따라 척추선을 내려가, 날개뼈를 지나 양쪽 폐에 숨이 가득 채워지는 상상을 한다. 신선한 공기가 차오르며 등 뒤가 도톰해지는 느낌을 가만히 느껴본다. 공기가 정말 내가 의식한 그 공간으로 흘러들어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찰나의 순간 살아 있다는 느낌이 스친다.
호흡의 흐름을 몸으로 의식할 때,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이 다시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관통하는 이 일상을 하루하루 황금빛으로 채워나가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