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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데아 Apr 04. 2018

현직 간호사의 진심어린 조언 "간호사, 하지 마세요"

"태움 문화? 생기는 게 당연하죠"

간호사들의 직장내 문화 '태움'을 아시나요?
사람을 불에 타는 것에 비유하여,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군기 문화인데요.
외부인의 시선에서, 간호사의 태움 문화 당장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 보여요.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8년 째 일하고 있는
간호사 H 씨는 태움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태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H 씨는 이러한 문화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H 씨가 말하는 간호사로서의 삶
한번 들어보실래요?
SBS 비디오머그 뉴스 갈무리
신입, 11시간 근무는 기본이죠"

-안녕하세요. H 씨. 벌써 8년 차 간호사인데, 혹시 나이팅게일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항상 그만 둘 생각을 갖고 있는 간호사입니다(웃음)."


-이직을 꿈꾸는 간호사군요. 벌써 한 직업군에서 8년이나 일했으니, 다른 직업에 관심도 갈 것 같아요. 그래도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것 같은데요. H 씨의 신입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요.

"지금은 연차가 있어, 여유롭지만 그때는 매일 긴장 상태로 다녔죠. 제가 근무하게 될 병동으로 발령받기 전에 실습 교육을  받아요. 초반에는 진짜 힘들었어요. 새벽 4시에 출근하고 일은 저녁 6시 넘어서 끝나고. 거의 매일 11시간~12시간씩 일했던 것 같아요."


-우와. 생각보다 긴 시간을 근무했네요.

"간호사는 3교대 근무예요. 데이, 이브닝, 나이트 이렇게 나뉘어요. 데이는 오전 7시~오후 3시, 이브닝은 오후 2시 30분~ 오후 10시 30분, 나이트는 오후 11시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신입 때는 최소 2시간은 일찍 출근했어요. 보통 막내들은 출근하면 병동에 있는 혈압계나 청진기 등 제대로 있는지 물품 카운트부터 시작해서 환자 파악하는 것들을 해요. 신입이다보니 일이 느리잖아요. 그래서 퇴근은 3시간 정도 늦고요. 특히 간호기록을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를 해주고 가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좀 오래 걸리거든요."


-간호기록이 어떤 거예요?

"간호기록은 간호사가 책임지고 기록하는 환자의 공적인 기록이에요. 예를 들어서 환자가 무슨 검사를 하고 왔고, 열이 몇 도로 측정되거나 통증이 어떻다 이런 것들이요. 직접 담당한 간호사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써야 돼요. 이 기록이 법적인 자료로 쓰일 수 있고, 또 이걸 기록한 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게 요구되거든요."


-신입 교육이 끝나고 나서 어떤 병동에 배치를 받았어요?

"저는 내과 병동으로 갔어요. 수술실 아니면 외과병동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안 좋았어요. 외과병동에는 지인이 많아서 적응하기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요. 새로운 공간에 갈 때 아는 사람 있으면 괜히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잖아요. 정말 낯선 곳에서 근무하게 된 건데, 어떤 게 제일 어려웠어요?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여러 환자가 한꺼번에 요구할 때, 뭐가 먼저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혈관 잡는 정맥주사를 놓는 것도 힘들었어요. 내과병동은 반복적으로 아픈 분들이 많이 와서, 혈관 찾기 힘든 환자가 많거든요. 일의 숙련도가 없는 신입 때니까 환자도 저를 많이 거부했어요. 응급환자나 중환자를 보면 뭘 시켜도 정신이 나가서 어버버하고 있거나 가만히 있게 돼요. 이건 경험이 늘어갈수록 민첩해지는 부분이라, 신입 때는 빠르게 행동하려고 항상 노력했죠."


- 방금 환자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대체로 환자들이 요구하는 건 어떤 게 있어요?

"본인의 건강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분들이 있죠. 이건 당연한 건데 가끔은 너무 사소한 걸 요구해요. 예를 들어서 시 갈아달라, 물 떠달라 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까지 간호사한테 해결하라고 해요. 이럴 때는 정말 귀찮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요."


-특히 간호사들이 조심하는 환자가 있나요?

"간호사 직업군에는 여성이 많아요. 가끔 성추행하는 환자가 있어요. 엉덩이, 허벅지 만지고. 간호사들이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지만 병원에서 취해주는 조치는 없어요. 인계해줄 때, 저 환자 조심하세요 하고 우리끼리 이야기해요."


-에휴, 너무 힘드네요. 담당 환자가 있다고 했는데, H 씨는 혼자서 몇 명 정도의 환자를 책임져요?

"보통 13명 정도의 환자를 봐요. 간호사 수가 부족하니까. 항상 1명의 간호사가 볼 수 있는 것에 비해 많은 환자가 배정이 돼요. 7명까지는 혼자 환자를 볼 수 있겠는데. 간호사 인건비가 비싸서 그런가. 병원이 간호사를 잘 고용을 안 해요. 인력 부족으로 일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 병동에서도 1년에 3~4명은 항상 그만둬요."


-그렇게 항상 일이 넘치면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요.

"일반 회사는 점심시간이 있잖아요. 간호사들은 간호사실을 비우면 안 되어서 점심시간 보장이 안돼요. 30분 만에 밥 먹고 오면 다른 사람이 가고. 바빠서 밥 못 먹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이렇게 갈 때도 있어요. 간호기록도 원래는 환자 볼 때, 바로 써야 돼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항상 업무 끝날 때 한꺼번에 기록해요. 병동마다 다르지만, 내과병동은 특히 바빠서요."

한국일보 기사 갈무리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고
모두가 예민해지는 곳

-최근에는 간호사 하면 태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와 관련된 사건도 뉴스에 많이 보도됐고요. H씨도 태움을 경험했나요?

"제 대학 동기들 중에 태움을 심하게 당한 친구들이 꽤 있어요. 펜으로 찌르고, 컴퓨터 마우스를 던지기도 했대요."


-굉장히 살벌하네요. 이 태움이라는 문화가 간호사들 사이에서 왜 생겨난 것 같아요?

"다음 근무자한테 인계를 해주잖아요. 이 과정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 여기서 태움이 생겨난 것 같아요. 일 자체가 고되잖아요. 근데 전임자가 인계를 엉터리로 해주고 가면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나한테 밀리면 두 배로 힘들어 지니까. 그리고 전임자의 실수로 내가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또 병원에서 져야 하는 책임감도 크고요. 그래서 보통 신규 간호사들이 인계 과정에서 태움을 많이 당해요. 조직 자체가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곳이라서, 사소한 실수에도 엄청 태우는 거죠."


-태움을 당하는 간호사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당연히 안타깝죠. 태움은 없어져야 돼요. 그런데 동시에 태움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좀  이해가 되죠. 1~2 달이면 신규 간호사들이 스스로 환자를 보는 걸 독립한다고 해요. 그런데 신규 간호사가 독립을 못하고 사고를 치면 선임 간호사들이 본인들 일 다 미루고 책임져줘야 하니까, 선임 간호사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죠."


-H 씨의 말을 듣다 보니까, 왜 태움이라는 문화가 생겨났는지 이해가 되네요. 태움을 하는 간호사들이 열악한 업무 환경의 피해자로도 보여요.

"맞아요.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히는 건 나쁜 거죠. 근데 한순간의 실수로 타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도 있는게 간호사라 언제나 긴장 상태고 예민해요. 또 병원은 아픈 사람이 오는 곳이라, 환자들도 굉장히 날카로워요. 그런 분들을 계속 상대하다 보면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간호사들은 언제나 친절해야 되잖아요.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도 티낼 곳은 없는데 일은 넘치고. 진짜 극한에 내몰리는거에요. 그 와중에 누가 실수라도 하면 난리나는 거죠. 근무자가 조금 더 많다면 아마 다들 친절해지고 동료의 실수도 참을 수 있을 거예요."


-태움 외에도 임신순번제도 있다고 들었어요. 임신을 순서를 정해서 하는. 이것도 처음에 들었을 때 진짜 경악스러웠는데, H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상 지금은 사라진 문화인데, 이것도 결국 인력난 때문에 생긴 거예요. 임신을 하면 나이트 근무를 못해요. 유산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근데 동시에 많은 간호사가 임신을 하게 되면 나이트를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거에요. 나이트 근무가 가장 힘든데, 한 사람만 계속 나이트를 시킬  없고요. 또 출산을 하게 되면 한 번에 많은 인력이 빠지고, 결국 남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져요. 바로 충원되는게 아니니까. 그래서 임신순번제가 생긴 거예요. 나쁜 의미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우리 다 같이 잘 살아보자 이러면서 생겼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죠."

SBS 비디오머그 뉴스 갈무리
송년회마다 추는 춤, 수치심도 들어요

-이 외에도 논란이 됐던 게, 간호사들을 병원 축제 동원하고 그래서 뉴스에 많이 나왔잖아요. H 씨의 병원도 그런가요?

"주로 송년회 할 때, 간호사들한테 장기자랑을 시켜요. 퇴근 후에도 빈 병실에서 제 개인 시간을 써서 춤 연습을 해요. 의사들은 장기자랑 안 해요. 그래서 제가 장기 자랑하는 거 의사들이 앞에 앉아서 보고 있으면 가끔은 수치감도 들더라고요. 잘한 간호사들한테는 상금을 주는데, 그거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안 받고 안 하는 게 나아요."


-궁금한데 의사랑 관계는 어때요? 저는 예전에 의사들이 간호사들한테 무조건 반말한다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요.

"모든 의사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간혹 있죠. 예를 들어 20대 의사가 40~50대인 수간호사한테 반말을 해요. 어떤 경우는 본인 기분 나쁘다고 환자의 바이탈체크(활력징후 체크)를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여서 하라고도 해요. 그럼 간호사들은 바쁜 상황에서 심각하지 않은 환자의 상태를 계속 보고하니까 계속 시간에 쫒기게 되는거죠. 간혹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의사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 보면 니가 뭐라고 명령이야. 의사면 다야 이런 마음이죠. 같이 일하는 것 뿐이지 인간대 인간의 상하관계는 아니니까요."

SBS 비디오머그 뉴스 갈무리
병원 인증제도 평가 기간
피폐해지는 간호사들

-항상 힘든 일의 연속일 거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이 일만은 너무 힘들어서 참을 수 없다'는 부분이 있나요?

"네. 4년마다 하는 병원인증제도 평가 기간이요. 평가원에서 병원의 등급을 매기는거에요. 대학병원이라, 최우수등급을 받아야해서 신경 많이 쓰거든요. 이것 때문에 많이 그만둬요. 평가의 기준이 병 위주인데 결국은 타겟은 간호사거든요. 그래서 평가 감독관들의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려고 몇개월 동안 책을 달달 외워요. 또 평가 기간 동안은 모든 것을 매뉴얼대로 해야 돼서 시간이 엄청 낭비돼요."


-음, 저는 이해가 안 되는데요. 평소에는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거예요?

"위법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게 아니에요. 평가의 기준이 너무 현장과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평소 너무 바빠서 생략하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환자의 이름이요. 평소에는 환자 이름을 알고 있으니 불러서 환자를 확인한다 치면 평가 기간에는 무조건 환자 앞에서 가서 이름 확인하고 환자 팔찌 확인하고, 생년 월일 물어봐요. 주사도 평소에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한 번에 준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평가 기간에는 일일이 환자의 눈 앞에서 주사 섞는 거 보여줘요. 당연히 우리도 그걸 지키면서 하면 좋죠. 그런데 시간이 없는데, 일하면서 스스로 생략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아, 어떤 건지 알겠어요. 저도 회사 다닐 때 굳이 내가 확인을 받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판단을 내려서 했거든요.

"네. 근데 간호사들이 일일이 이걸 지켜야 되니까 환자를 봐야 하는 시간이 계속 뒤로 밀려요. 환자한테도 피해가 가는거죠. 이 기간에는 평소보다 3~4시간 늦게 퇴근해요. 추가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데. 또 감독관들의 질문에 답해야 되니까  못하고 집에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달달 외워요. 만약 잘못 대답하면 승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쳐요. 계속 얘기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지 않고 간호사들한테 주먹구구식으로 너희가 다 책임져 이러니까."


-결국은 부족한 간호사가 항상 문제네요.

"네. 결국 간호사의 이런 악습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난이에요.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일이 너무 힘들어지는거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안 오려고 하고, 일 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게 일을 하고요."


-우리 너무 우울한 얘기만 한 것 같아요!. 간호사 생활하면서 보람찼거나, 그래도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기를 잘했다 이렇게 느낀 적은 있어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 일보다는, 순간순간 환자들이 해주는 말들과 행동에서 뿌듯함이나 기분 좋음을 느껴요.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먹을 거 줄 때요(웃음). "

SBS 비디오머그 뉴스 갈무리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면?

-간호사라는 직업이 힘든 직업인 줄을 알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강도가 높아요. H 씨는 만약에 대학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간호사를 선택할 거예요?

"아니요. 다른 직업도 고민해볼 것 같아요. 저는 간호대학을 나오면 무조건 간호사가 되어야 하는지 알았어요. 그래서 직업에 대한 고민 없이 간호사를 지원했거든요. 근데 일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세상은 넓고 길은 많더라고요."


-간호사, 진짜 힘든 직업인 건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업무 강도가 높네요. 혹시 간호사가 되고 싶은 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네. 간호사는 정말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에요. 사람이 죽는 것도 많이 봐야 하고요. 저는 사실 간호사를 하고 있지만 이 직업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사무직을 선택하길 추천해요. 간호대학 나와도 보건소, 건강보험공단,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거든요. 사무직은 몸이라도 덜 힘드니까. 그래서 간호대학을 다니는 친구들한테 정말 넓은 시야를 갖고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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