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가 말한다 '엄마 이제 쉬어요♡' 근데 너 왜 또 나만 불러..?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엄마 오늘도 고마워요'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각종 기저귀에 붙어있는 문구들이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아기 물티슈에도 육아에 지친 엄마를 위로하는 글들이 잔뜩 쓰여있다. 이뿐일까? 각종 육아서적에는 오직 엄마엄마엄마를 외친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육아서적에 아빠의 역할에 대한 조언은 고작 20페이지나 될까? 내가 읽어본 유명하다는 육아서적은 부모의 책임보다는 엄마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아빠는 늘 보조적인 존재다.
50대들의 육아 세계는 그랬다지만 지금은 점점 육아에 대한 아빠의 참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 내 주변에도 엄마만큼 아이의 육아에 열정적인 아빠들도 많고, 아빠만큼 일에 열정적인 엄마들이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육아시장은 오로지 엄마만 찾고 있다.
세상이 변했다 변했다 하지만 육아시장만큼 보수적인 곳도 없는 것 같다. 육아용품들은 곳곳에서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강하게 엄마를 독박 육아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엄마밖에 없다. 똥을 갈아줘도 엄마고 샤워를 시켜줘도 엄마고 잠을 재울 때도 용품들은 엄마만 부른다.
변한다는 건 참 어렵다. 남성의 육아 참여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걸 안다. 여성이 어쩔 수 없이 출산하고 일을 그만둬야 하듯, 이놈의 사회 시스템이 남성의 육아참여를 아주아주 강하게 거부하고 절단하고 부셔버리고 있다.
나하나 이게 불편하다고 한들 거대한 수레바퀴가 움직일 것도 아닌 걸 알고, 기저귀에 아빠 수고했어요 하나 적는다 한들 남성의 육아휴직을 결사반대하는 사회에서 육아휴직이 늘어날 것도 아닌 걸 안다.
그래도 틀린 건 틀렸다. 오로지 엄마만 찾고 엄마만 위로해주고 엄마만 다시 힘내라는 문구들은 틀렸다. 육아용품들도 이제는 아빠를 좀 불러줬으면 좋겠다. 기저귀를 갈 때, 아빠 수고했어요 라는 문구를 보면서 아빠도 자신의 육아에 뿌듯함을 느끼고 물티슈를 뽑을 때마다 아빠 사랑해요 라고 적힌 예쁘고 감동적인 글귀를 보면서 육아의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
아빠의 수고로움을 칭찬해주는 육아용품들이 많아져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을 더욱 기쁘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아빠들에게도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이번 기저귀는 아빠가 갈아주세요' '아빠가 먹여주는 이유식!' '아빠도 나랑 놀아주세요'하고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반대하고 여성의 출산을 무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만든 산물이다. 언제 바뀔까? 언제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1년 내내 임신하고 출산해서 몸이 망가진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언제쯤 아빠가 아이를 보고 엄마가 출근하는 것이 드센 엄마, 기센 여자가 아닌 사회가 될까? 오늘도 왜 출산율이 최저로 정점을 찍고 있는지 너무나 크게 공감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