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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데아 Dec 24. 2018

아가씨와 새언니,  우리가 어색한 진짜 이유

시누이와 며느리의 이상한 관계

나는 시누이자 새언니다.


처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시누이였다. 친오빠가 결혼할 때, 엄마는 우리를 앉혀놓고 누누이 서로를 아가씨와 새언니로 깍듯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언니 입에서 나오는 아가씨라는 말에 닭살이 돋았다. 그 옛날 양반집 딸을 부를 때나 썼던 그 단어가 나와 맞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상대를 높이는 의미의 아가씨라는 호칭을 얼마나 들으면서 살까? 대게 아가씨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젊은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지만 이마저도 거의 들어본 적 없다. 그래서 나를 높여서 부르는 아가씨 호칭은 정말이지 민망했다. 새언니가 나를 아가씨라고 부를 때면 내가 더 높은 지위에 있다는 느낌에 혹시나 갑질 하는 시누이가 되지 않을까 농담은 커녕 말을 걸기도 힘들었다.


나는 부모님과 오빠네 부부가 있는 곳에서 아가씨라는 단어의 부적절함을 시도 때도 없이 말했고 지금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아가씨와 새언니의 근원적인 불편함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 이상한 호칭을 떼어버렸다는 점에 한걸음 나아갔다고 서로를 대견해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아가씨 역할에서 새언니가 됐다.


나에게 주어진 아가씨라는 역할이 싫었듯, 나의 아가씨에게도 이러한 호칭을 붙이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나 언제인가 아가씨는 아가씨라는 호칭이 좋다고 이야기했고 이 단어를 오랫동안 들을 거라고 선언했다. 아가씨와 이름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마음을 바로 접었다.


나는 아가씨에게 먼저 연락을 하거나 말을 거는 것을 많이 어려워한다. 아가씨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알기에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런 나를 보면 엄마는 너무 유별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유별난 건 내가 아니라 이 호칭이다. 그냥 언니도 아니고 굳이 '새'언니라고 칭하며 나를 남편의 가족에게서 타자화다. 절대 그냥 언니가 되지 못하고 시댁에서 영원한 타자로 남아야 하는 그 호칭과 달리 아가씨는 내가 모셔야 하는 '분'이다. 한 명은 모셔야 되는 분이고 한 명은 가족은 가족인데 진짜 내 가족은 아닌 사람이고.


우리가 어색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아가씨와 새언니. 가족 같지만 평등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고 되짚어 주는 이 단어. 시누이가 주는 엄청난 위압감과 무서움은 이 호칭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남편의 반응은? 언제나 그랬듯 '그냥 정해져 있던 대로 해'다. 남편과 나의 역할이 바뀌었어도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요상한 결혼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남의 편이다.


photo by https://www.instagram.com/young_and_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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