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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Jan 06. 2017

[영화] 꿈이 현실이 된 허구의 나라

함께 꾸었던 꿈,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라라랜드 

LA 지역, 캘리포니아에서 도합 10년쯤 살았던가. 이동진 평론가가 이미 언급했듯이 “음악(꿈)과 삶(관계)”는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LA 는 딱 라라랜드, 그런 곳이다. 하지만 엄연히 둘은 실상에서 양립하며 존재하고 있고, 수시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모든, 꿈꾸는 이들이 동경하는 도시의 삶이 그런 것일테지만 LA 는 유독 그런 곳이다. 부의 상징 West LA 와 East LA (히스패닉 거주지역)의 극명한 대비가 그렇고, 휘황찬란한 할리우드와 올림픽 블러버드 벨트 밑의 흑인거주지역이 그렇다. 전혀 딴세상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동포라 불리우는 대부분의 한인, 아시아인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으며 살아간다. 일부는 계층의 위로 진입하기도 하지만 유리천장이라는 실재상황이 있다. LALA 랜드는 어감 그대로 그런 ‘허상과 허구의‘ 세계이다. 그 안에 마치 동화처럼, 그리피스 천문대라는 세상 위, 세상 밖 세계가 있고 같은 이름을 가진 엄청난 규모의 그리피스 공원, 동물원이 있으며 종착역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길다란 기차가 다닌다. 물론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그 이상(beyond)이다.  


영화는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할리우드의 “셀프 오마주” 다. “Singing in the Rain” 과 플롯이 거의 흡사하고 우디 앨런의 “Cafe Society”를 생각나게 하며 로렌스 올리비에를 떠난 제니퍼 존스, 엘리엇 굴드와 헤어진 바바라 스트라이젠드를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대지, 고속도로 위에서 대담무쌍하게 펼쳐지는 초반의 군무는 “웨스트사이트 스토리” 에서 아메리카, 아메리카 외치던 씬의 데자뷰. 다정다감한데다 인내심까지 수퍼맨급인 프린스 차밍 라이언 고슬링은 젊은 시절 니콜라스 케이지의 “Moonstruck” 뉴마초를 보는 듯 하고, 엠마 스톤은 마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페미니즘 전공으로 갓졸업한 2010년대 브룩 쉴즈 같다.


디즈니랜드에 있는 신데렐라의 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재'를 뿌리자면, 영화 속에서의 ‘성공 스토리’ 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좇고 있는 ‘미국의 꿈’ 보다 차라리 환상에 가깝다. 이때 천문대에서 발견하는 ‘테슬라 코일’ 모티브는 reality check 일까. 감독이 “꿈과 삶”의 양립불가능이론에서 나아가 현시대의 실존마법 ‘테슬라’(엘론 머스크)를 통해 ‘환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든 대목이다. (결국 아닌 것으로 판명.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를 철저히 찬양하고 오마주한 것이라 한다. 위플래쉬 이후 그의 성공에 대한 감사의 인사처럼.) 그러나 결국 할리우드의 영원한 우상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이 상시상영되는 리알토 극장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우리에겐 주인공들에게 당연히 있는 집과 차와 재능이 없다.” --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았던 환상에게 종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중간 중간 귀여운 지점들이 있다. ‘Someone in the crowd’ 를 ‘사람들 틈 속의 사람’ 이라 번역한 것. 빼곡하고 숨막히는 군중 속에서도 내가 보는 희미한 틈이 생기고 그 속에서 빛나는 사람이 보이는 법이니까. "To be found". 나 또한 그렇게 찾아지는 거니까. 라이언 고슬링의 사람 ‘연구’ 언급.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 You are an actress, what are you talking about? (배우라면서 사람들을 시선을 싫어한다고?) 그 원천적인 모순에 대해. 영화는 “꿈과 삶” 의 휴식 없는 저글링을 그렸다기 보다는 차라리 모순에 취약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사랑하는 상대방의 성공을 빌고 ‘함께’ 노력한다지만 그것이 둘이 함께 하는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반드시 그러하다.) “다시 하라고 해도 똑같이 할 거야.” 과연 그럴까. 그들은 결코 힘들게 얻은 달콤한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환상과 허구로 아름다웠던 과거를, 먼훗날 미래에 이르러 서로에게 보내는 찰라의 눈빛에 담아내고 그걸 읽어낼 뿐. 그렇담 뭐가 중요할까. 무엇이 정답일까.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세뇌하듯 읊조리는 “그냥 흘러가는대로 가 보자.” 결국은 그렇게 ‘내맡기는 것’?


영화의 백미는 엔딩 뮤지컬 피날레.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에 따르면 죽음에 발을 들인 그 순간 삶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대사 없이 음악과 영상, 역동성만으로 관객에게 각자의 의미와 대사를 제조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그때 펼쳐지는 빛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댓가도 치룰 수 있다는 의지가 발동될까. 인상적인 시퀀스였다. 이 영화가 그전까지는, 관객을 철저히 관객으로 배제 또는 남겨두었었다면 그 부분에서만은 스스로 영화와 함께 잠길 수 있는 여지를 준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영화는 Made in Hollywood, USA 딱지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있는 영화다. 산뜻했고 예뻤다. 특히나 해질녁, 해넘이 특유의 골든 아워에만 볼 수 있는 모브(mauve)톤 보랏빛은 한동안 LALA Land 의 색상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촬영시간으로 즐겨 사용하는 시간대이다. 이 시간대에 맞춰 넉넉히 촬영하려면 저녁식사를 걸러야 한다.) 젊은 날 LA에서 보낸 시간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장소들을 되짚어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없는 날 자전거 타고 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그리피스 공원, 언제 가도 아늑하고 운치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 '허구' 와 '환상' 으로 치부할지언정 내게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저 그런 곳' 이 아니다. 의미있는 누군가와 재방문할 수 있다면. Pink Floyd 의 The Wall 레이저쇼가 천문대 돔 상영관에서 여전히 상영 중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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