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을 "너의 이름은."
(본글은 영화에 대한 무수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생전 이토록 멋진 장면을 보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입니다.
1200년 주기로 지구를 방문하는 유성이 다가온다. 세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지상최고의 스펙터클. 찬란한 재앙, 유성은 둘로 쪼개어져 일본시골의 작은 마을'이토모리' 를 초토화시킨다. 3년전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현실과,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수평적'이고 '병행적' 으로.
우연히 자기 안으로 들어온 존재에 대한 궁금증. 도대체 누구일까, 알아내는 과정 속에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소년과 소녀는 조금씩 변해간다. 다소 식상한 감도 없지 않은 "뒤바뀐 신체" 라는 소재. 섬세하게, 작은 감정들이 만들어지고 분화된다. 서로에게 '대상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세상 구석구석까지 가닿을 수 있다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약속을 동시에 말하는 거야. 우리가 만난다면 절대, 바로 알 거니까. 내게 들어왔던 건 너였고, 네게 들어갔던 게 나였으니.
그때 할 인사... 서로에게 할 인사를.
고등학생인 미야미즈 미츠하는 미야모토 마을 신사를 지키는 가문의 자손으로 할머니와 촌장인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산다. 할머니와 함께 실로 매듭을 만들고 매년 ‘쿠치카미자케’를 만드는 의식을 행한다. 실을 잇는다는 것은 땅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신의 영역에 속하는데, 신의 능력,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매듭이라는 것. 때로는 돌아오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것이 '무스비'(매듭)이다. '풍양제' 에서 미츠하와 그의 여동생 야츠하는 밥을 입속에서 씹어 지정된 도기에 뱉는다. 이 광경을 본 친구들은 눈쌀을 찌뿌린다. 전통주 '쿠미가미자케' 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천년 전 재해가 났던 마을의 호수 안 둔지에 모셔진다. 물과 쌀, 술이 실처럼 연결되어 있고 사람의 마음과 몸이, 신과 인간처럼 한 매듭이 되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예컨대 "이승으로 돌아오려면",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너희가 씹어서 만든 술'이 무스비로의 연결점을 제공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왠지 모르게 울고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고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처럼 나를 비로소 완전하게 해줄 존재를. 채워지지 않은 가슴으로, 황혼녘의 해를 바라본다. 낮도 밤도 아닌, 신비의 존재를 만나는 시간.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황혼은 일본 고어로 "거기 누구신지"라고 한다. 나도 모르던 내가 찾던 이, 이제 내 속에 들어온 당신은 누구인가. "... 이름은?" 지긋지긋한 시골의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겠다는 미츠하의 바람은 그렇게 꿈처럼 현실이 되고, 미츠하를 만나고 싶어하는 타키의 바람 역시 이루어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역겨워한, 너의 소중한 것을 통해서.
두 사람은 늘 함께 있지만 반드시 함께 있지 않다. 내가 소멸된 지점에 네가 있고 네가 떠난 자리에 내가 들어선다. 하지만 절대 끊겨지지 않는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한.
해넘이, 황혼의 시간 속에 미츠하와 타키는 둘 사이의 시공간의 벽을 뚫고 서로와 만난다. 손바닥에 이름을 써주는 두 사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 황급히 뛰어다가 넘어져 손바닥을 다시 펴 보니 "좋아해(すきだ)"라는 단어만이 적혀있다. "이러면 너의 이름을 알지 못하잖아..." 미츠하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름보다도, 애틋한 감정을 전달하고픈 마음이 더 간절했을지 모른다.
이 영화의 제목, "너의 이름은." 은 영어로 온전한 번역이 힘든, 의도된 문법을 포함하고 있다. Your name 으로 번역하기엔 역부족이다. "And Your Name.." 또는 "Your Name That is.." 라고 하기엔 너무 설명적이라 아스라한 느낌이 감소되고. 한글과 일본어에서는, "너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너의 이름은 뭐야?", "너의 이름은 타키?", "너의 이름이 미츠하?" 조사를 통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점(.)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점' 은 마침표가 아니다.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상징의 점.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 인연, 운명이 이어지는,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비밀의 지점인 것이다. 내가 너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 기억하는 한 우주 어딘가 숨어있는 빛나는 별처럼, 너와 나에게로만 열려 있는 좁은 문처럼. 그 문이 열려 있기를.
RADWIMPS – Nandemonaiya (なんでもないや)Kimi no Na wa. (Your Name.)君の名は。
https://www.youtube.com/watch?v=nPwCtsLhYto (동영상은 아쉽게도, 동영화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