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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Feb 27. 2024

엄마아빠, 노티드 먹어봤어?

매일 쓰는 짧은 글: 240227




작년 연말쯤에 받은 생일선물. 쿠폰을 언제쯤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오늘 낮에 엄마아빠와 길을 걷다 우연히 근처 노티드 매장을 지나가게 되어 이때다 싶어 물어봤다.



엄마, 아빠 노티드 먹어봤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3년 전쯤에 한참 유행했던 도넛 브랜드, 노티드. 운이 좋게도 당시 근무했던 회사가 강남 노른자땅 중앙이었어서 웨이팅은커녕 그냥 편하게 배민으로 주문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대도심에서 일하는 자들의 특권이랄까, 낄낄대면서. 지금은 여기저기 쉽게 보이고 체인도 많이 딱히 웨이팅을 할 필요도 없이 편하게 구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안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빵순이인 우리 엄마는 새로운 빵집을 보면 무조건 사 먹는 진취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강남을 비롯해 어느새 우후죽순으로 생긴 노티드 가게를 정확히 뭘 파는지는 몰라도 달달한 냄새에 이끌려 한 번 사 먹어볼까 간만 보다가, 미친듯한 인파에 포기하고 여태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근데 이 타이밍에 노티드의 케이크 쿠폰을 가진 딸이 노티드 매장을 지나며 노티드를 먹어봤냐고 묻다니. 오늘이 바로 노티드를 먹는 날로 탕탕탕 정해졌다.


케이크 쿠폰을 도넛으로 바꿔먹어도 되는지 여쭤보고 직원분의 추천을 받아 착착 도넛을 골라 추가 금액만 결제하니, 우리 엄마는 나를 무슨 천재처럼 옆에서 흐뭇하게 쳐다본다. 엄마는 쿠폰이 있어도 쓸 줄도 모르고 포장은 키오스크로 하라는데 키오스크도 모르고 돈이 있어도 사람이 많아 겁이 나 못 사 먹는다는데 오늘 내 덕분에 호강을 한다고. 내가 흔하게 사 먹을 수 있다고 엄마아빠는 그러지 못했다는 걸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나를 속으로 조금은 자책하며 겉으로는 딸을 잘 뒀다고 떵떵거렸다.


꽤 무거운 도넛 상자를 엄마아빠에게 안겨주고 친구를 만나러 전철을 타러 가는 길. 도넛을 받아다 친구랑 먹으러 들고나갈 줄 알았던 아빠는 도넛을 건네니 아이고 젊은 너네가 가져다 먹지 뭘 이런 걸 다 주냐며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번진다. 아이고 젊은 우리는 먹을 날이 더 많으니까 엄니 아버지 많이 드시라고 만담처럼 서로 정해준 예의상의 멘트를 날려준다.


엄마 아빠의 첫 노티드, 옆에서 같이 호들갑을 떨면서 어때, 어때! 하고 놀아야 하는데 약속 때문에 그 호들갑을 놓친 게 조금 아쉽다. 저녁에 엄마아빠가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뜨끈한 차와 함께 달달한 도넛을 먹고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아쉽지만 인증샷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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