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돌멩이같이 무거운 책들을 힘겹게 이고 도서관을 향하면 항상 마음속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질문이 있다. 왜 도서관들은 이렇게 언덕진 곳에 위치해 있지?
처음으로 가게 된 동네 시립 도서관은 매서울 정도로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전철역에서 나와서 번화한 거리를 조금 걷다가 어느 뒷골목으로 가다 보면 갑자기 세계가 바뀐 것처럼 눈앞에 웅장한 언덕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올라갈 때에는 반납해야 할 책, 내려올 때에는 새롭게 빌린 책으로 항상 내 가방은 책으로 가득해 가뜩이나 힘든 오르막길에서 거친 숨을 내쉬기 일쑤였다.
그나마 그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이 살벌한 언덕을 오르는 방법과 조금 돌아가고 길목이 어둡고 음습하지만 완만한 길로 올라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다. 나는 이 두 번째 길을 '지름길'이라고 불렀다.
학교를 마치고 전철을 타서 동네로 돌아오는 시간을 감안해도 항상 쨍쨍한 대낮이었는데 그 지름길은 뭔가 모르게 어둡고 채도가 낮게 느껴졌다. 도서관으로 가는 양쪽 길에는 모텔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언제 지나도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그 길을 지나야 했다.
밝고 사람들도 많아 안전하지만 매우 가파른 길과, 비교적 편안하지만 길은 어둡고 무서운 지름길. 항상 오늘은 어떤 길로 가야 하나 전철에 내릴 때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언덕의 아찔함을 몇 번 맛보고 나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지름길로만 다니게 되었다. 뭔지 모를 어둠과 불안함도 내 일신의 안락함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날도 여느 때처럼 대낮의 밝음과 길목의 음습함이 공존하고 있는 지름길로 들어서 도서관을 향해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거의 그 길을 다 벗어나 조금만 더 가면 역이 보이는, 그 길목의 끄트머리와 다시 나오는 역적의 북적거림이 거의 맞물리는 지점에서였다. 내 등 뒤에서 굉장히 큰 목소리로 어떤 아저씨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아직도 그게 나를 향한 말인지, 그냥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의 언어와 말투, 그 의미들은 매우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지치지 않고 여성을 희롱하는 말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다.
원래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게 말뿐이어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런 상스러운 표현은 물리적 실체를 가진 명확한 폭력으로 다가왔고, 확 기가 눌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너무도 무서웠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버려 빨리 어딘가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마 그 아저씨는 지름길에 있는 모텔촌에서 술을 먹다가 나온 것 같았는데 다행히 거의 역 앞에 다다러서야 그런 행위를 하여 나도 빨리 역전의 혼잡함 속에 몸을 맡겨 숨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내가 그 도서관을 향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 물론 매번 언덕길을 오른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때 그 장소로 혼자 돌아가 그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다는 무서운 우연에 몸을 내던지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은 유독 색채가 진한 것 같다. 그날 아저씨가 했던 그 말들을 지금도 전부 단어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날 이후로 그 동네, 그 전철역의 그쪽 출구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특히 그 도서관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때 빌렸던 책들은 아마 어쩌지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연체가 되어 다른 도서관 통에 반납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 도서관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직도 그 도서관의 이름만 듣거나 떠올려도 조금은 찝찝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은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