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동유럽은 자유화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소련의 방관인지 포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별다른 제제 없이 자유를 외치는 집회들이 많아졌고 폭력적인 시위도 발생하였다. 작년 HR의 말처럼 냉전의 종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CIA팀들 중 몇이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하여 인근 피자집으로 갔다.
사실 점심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다. 주어진 한 시간을 오히려 간단히 먹고 근처를 한 바퀴 돈다든지 공원을 찾아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듯하였다. 특히나 좋은 날씨라면 콜라 하나와 초콜릿 바를 가지고 공원에 가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의 아지트 같은 피자집주인인 이태리 할아버지는 특유의 과한 몸짓과 함께 이태리어로 인사를 하였고 우리는 마치 지정좌석처럼 항상 앉는 같은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점심을 예상했었던 나와는 달리 정식 메뉴와 함께 와인도 주문하였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점심 먹으면서 업무적으로 물어볼 것이 있는데…” 업무적인 질문이면 사무실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점심을 먹으며 따로 물어본다는 것이 궁금하였지만 점심은 먹어야 하는 것이니 나는 농담처럼 “밥값은 니들이 내는 거야"라고 하면서 와인잔을 들었다.
어디 살며 월세는 얼마인지 동네는 괜찮은지 등 사소한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식사의 중간쯤 “한국이 통일되기를 원해?”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왜 원하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냐는 등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자국민 출신의 의견을 상세히 물어보았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과 상상을 답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혹시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있다면 이유가 무얼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묘한 느낌이었고 어떤 답을 해야 옳을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테스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로 답하고 이후 답변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벌기로 하였다.
이럴 때 양방향 페이저가 필요한 것인데… 있다면 HR에게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내가 먼저 질문을 하였다.
한반도 정세에 관한 특별한 정보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향 후 빠른 시간 안에 그럴 가능성에 대한 첩보가 있는 것인지를. 그들은 내 질문에 ‘통일된 독일’ 이란 그리 두껍지 않은 보고서를 보여 주었다.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분리된 유일한 두 국가인 독일과 대한민국 중 동서로 분리된 독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을 시 발생 가능한 사실들을 분야별로 간단하게 서술해 놓았다. 아마도 그 보고서를 기초로 한반도 통일 관련 심도 있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주문이 있었고 독일인이 아닌 다른 분단국가 출신으로부터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우리 팀 독일 출신 K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고 하는데 의외로 K는ㄹ 통일된 독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몇 달 후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라며 건네 준 종이에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과 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통화 내용 일부가 있었다. 도청을 한 것인지 정보원으로부터 전달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처 수상은 통일된 독일을 원하지 않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유럽에서의 힘의 균형을 생각했었던 것이다. 프랑스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는데 심지어 자연재해로 위장하여 소련과 군사적으로 협력할 용의도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독일은 유럽연합 국가들 중 가장 부자 나라가 되었으니 염려하고 싫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을 대한민국이 싫어하는 것과 같은 논리 아닐까!
그럼 미국은 통일 독일에 대한 입장은 어땠을까?
당시 미국은 독일에만 240여 개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 비용은 연간 10억 달러 정도였다.
냉전 종식과 함께 통일된 독일에서 그 많은 기지들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지정학적인 계산과 함께 폐쇄와 이동 그리고 재배치에 따른 비용도 고려해야만 하였고 27개에 달하는 핵무기에 대한 운영 유무도 고려해야만 하였다.
2차 대전 후 군사력 우위에 의한 유럽 방어를 목적으로 힘의 지배가 가능했었던 유럽에서 그 지배력의 축소가 워싱턴의 미국적 사고방식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