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외국인으로 미 국방성의 공무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 많았다.
전 세계를 위하는 일인 것처럼 느꼈지만, 결국은 미국을 위하는 일이었고, 그에 대한 개인의 보상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혜택이었다. 미국 공무원이지만, 미국인이 아닌, 용병처럼 활동하기에 그 이상의 대우를 받는 그러한 상황... 미국적 사고방식에 의해 난 활동을 하였다.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잠시 생각에 잠기며, 1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첫 출근하던 날을 떠올려 본다.
그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대부분을 알게 된 날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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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전철을 타고 맨해튼 브리지를 건너며 내 눈에 들어온 맨해튼의 모습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보였다. 지하 정거장 특유의 퀴퀴한 냄새마저도 괜찮았던 것 같다.
25층에 내려 들어간 사무실은 교실과 같았던 공간은 없어지고 독립된 방들이 늘었으며 깔끔하게 만들어진 회의실이 생겼다. 가운데로는 15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들이 놓인 책상들과 IBM PC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내 이름이 놓인 책상 앞에 서있자 한 여직원이 다가와 책상에 놓인 이름이 본인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내게 커피와 함께 조금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가져다주었다. 그 봉투의 겉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HS가 출근하면 회의가 시작될 거라고 알려 주었다.
HR은 출근과 동시에 각자 받은 서류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라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3개의 각기 다른 서류에 서명함과 동시에 미 상무부의 컴퓨터 관련 민간용역업체 직원이 되었다. Cray Research사가 기계적인 보수를 책임진다면 우리는 전체 관리를 담당한다는 표면적인 목적이었다.
첫 6개월은 15명 모두 이 회사 직원 소속으로 업무를 보았으나 1988년 겨울 나를 포함한 7명은 용역업체 직원에서 GS13에 해당하는 국방성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GS(General Schedule)은 미국 공무원의 보수 체계로서 GS13은 상당히 높은 수준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급여를 지급하는 곳은 국방성이니 굳이 비교하자면 소령 내지는 중령 급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다만, 당시 GS13이 취급하는 정보의 수준에서 우리가 취급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은 아마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행정부 내에는 계약을 통해 외부 전문조직과의 프로젝트 성 업무들을 상당수 진행한다. 원활한 업무를 위해 외부 조직에서는 해당 행정부에 직원들을 파견하여 협업한다. 특히, 국방성의 경우 객관적 결론을 위해 많은 회의들을 한다. 이유는 명령 체계에 따른 획일적인 결론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물론, 외부 업체 입장에서 국방성이 '갑'이므로 대부분 국방성의 의지에 맞추어 갈 수 밖에는 없었지만 최소한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의견을 통한 결론을 얻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퇴직하는 날로부터 10년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의 비밀유지 동의서와 함께 매 2주마다 우리의 은행 계좌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 부여 동의서에도 서명하였다. 기혼자일 경우 배우자의 은행 계좌 열람에도 동의하여야 하지만 우리들 중 기혼자는 하나도 없었다. 은행 계좌에 대한 열람은 업무 수행 중 가장 큰 유혹이 금전 그다음이 이성 그리고 마약이었으므로 돈을 받고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를 감시하겠다 라는 목적이었겠지만 정작 그런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은행으로 돈을 받던지 받은 돈을 은행에 예치하는 바보는 없었을 것 같았다. 그저 상징적인 제스처와 너희는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한다라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실제로 급여 이외의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었거나 과도한 지출 발생 시 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했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내가 서명한 계약서 상 지켜야 할 내 의무였다.
여직원은 우리에게 바인더로 된 매뉴얼을 전달하였다. 인덱스가 잘 정리된 그래서 필요한 제목의 탭을 열면 서류 작성 요령이나 순서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부분을 별도로 교육받지는 않았고 필요시 두 여직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정작 우리가 정확하게 숙지하여야 할 매뉴얼은 개인에게 지급된 페이저(삐삐)와 필드에서 다룰 기기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 책자였다. 그리고 그 어떤 형태의 기록으로도 존재하는 것 없이 무조건 외워야만 했던 우리들의 실질 업무 매뉴얼이었다.
미국은 매뉴얼의 나라이다. 그만큼 모든 방면에 잘 정리된 매뉴얼들이 존재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며 어떤 업무에 있어서 프로가 되는 첫 단계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그 매뉴얼 대로의 습관적인 행동들과 경험이 그 시대의 진정한 프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의 관리자 직급이 되었을 때 각 팀원들의 매뉴얼에 대한 숙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 팀원들을 관리하면서 아주 여러 번 그리고 소중하게 경험하였다.
민간 용도로 판매된 슈퍼컴퓨터의 대한 관리가 주목적이었던 만큼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한 Cray사의 Cray-2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고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과 인도가 미국과 흥정 중에 있었고 브라질,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었다. 무역 증진과 대량살상 무기 확산에 대한 대응이라는 상반된 구조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 행정부는 수출 통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슈퍼컴퓨터 산업은 이런 점에서 큰 도전이었다. 수익성이 높아 수출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창출하는 동시에 수많은 잠재적 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기에 미국에 입장에서 상당한 확산 위협이 되고 있었던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이후 더 많은 수출증대와 안보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하여 슈퍼컴퓨터 성능의 35~50% 정도 능력의 미니 슈퍼컴퓨터를 개발 생산하여 총칭 고성능 컴퓨터(HPC-High Performance Computer)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일본과는 1984년 협상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컴퓨터 개발 및 생산을 제한하는 Supercomputer Safeguard Plan으로 묶어 놓았고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사용 이력을 파악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우리 15명이 투입되게 된 것이다. 특이한 사항은 본인 출신 국가는 출장지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즉, 나는 대한민국으로 출장을 갈 수 없다. 다른 국적의 친구들 만이 갈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에 하나 출신 국가에 대한 향수나 동질감 또는 애국심에 본인의 업무에 반한 정보 누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미국의 명분 아래, 미국 슈퍼컴퓨터 산업 육성과 미국에 위협이 되는 사항에 대해 감시 활동을 하는 미국을 위한 업무를 하는 외국인 용병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소속감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중요했고, 함께한 동료들과의 전우애 같은 것이 시간이 지나며 싹트기 시작했다.
다시 내가 이 일을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난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그만두고 다음을 위한 어떤 일을 한다면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듯하다.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잠시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