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일요일 아침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JTBC의 '방구석 1열' 을 시청하였다.
주제는 테러와 관련한 영화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방송에서 두 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다. 9.11 테러 이후 빈 라덴 검거 과정을 그린 영화 '제로 다크 서티'와 실제 뭄바이에서 발생한 호텔 테러 사건을 그린 영화 '호텔 뭄바이' 를 다루었다.
https://tv.naver.com/v/13945771
방송을 시청하는 내내 머리 속에는 HR이 그려지고 있었다. HR은 나를 미국 요원으로 키워준 나의 보스(Boss)이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보스 였다. 그가 있었기에 내가 요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HR은 내가 활동 하는 동안 많은 영향을 끼친 분으로 은사이신 G박사님 이후 나에게 기회와 동기 부여를 준 사람이다. 방송을 보는 동안 그와의 함께 했던 여러 일들이 스쳤고, 그가 보고 싶어졌다.
HR 잘 계신 거죠!!!
앞선 일화 중에서 런던에서 뉴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행동 2가지를 했었다.
첫 번째는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편지였고 두 번째는 유사시 도움을 청할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내 신분을 증명할 신분증이었다. 개인적인 상황을 공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본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위기일발의 뉴델리 임무를 마치고 사우디를 거쳐 뉴욕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징계였다.
인도와 사우디를 거쳐 복귀한 뉴욕은 마치 고향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임무 이후 느끼는 안도감은 뉴욕의 생동감과 자유스러운 분위기와 더해졌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을 갖고 뉴욕 사무실로 출근한 그 날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몇 명의 동료들과도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던 중 갑자기 HR이 “당장 내 사무실로!”를 소리치는 순간 사무실 전체가 분위기가 돌변하였다.
HR의 방으로 들어간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HR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런던에서 뉴델리는 정해진 일정대로 가는 것이었는데 목적지 변경이 아닌 좌석 승급 요청을 위해 장관 서신을 제시한 이유를 물었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평정심을 잃은 나의 행동은 심각한 사안일 수 있다. 쿨 했어야 했다. HR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였고 내 대답은 “I’m sorry.”
같은 질문을 계속하던 HR이 승급에 따른 차액을 보여 주면서 3개월 감봉으로 그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더불어 3개월간 해외 출장 금지 명령과 함께 한 달간 펜타곤 근무를 지시하였다. 그곳에서의 업무는 물품 창고 재고 조사였다. 지하에 위치한 창고에서 휴무 없이 30일 동안 재고 조사를 하라는 것은 유기 정학을 당한 학생이 도서실에서 하루 종일 반성문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벌칙이다.
감봉 조치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30일의 재고 조사 업무는 좀 가혹하다 싶어 나는 인도에서 발생했었던 사건에 대해 따지듯 HR에게 물었다. 알고도 보낸 것인지 아니면 내가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인 상황이었던 것인지. HR은 서슴지 않고 “너라서 보낸 것! 너라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라고. HR이 조금이라도 생각한 후 이 말을 했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규칙을 어긴 것은 나였고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나 징계를 받는 것도 내가 행한 일의 결과로 내가 감수해야 할 조치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지하에서 보낼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근무를 시작한 나는 HR이 주는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읽고 요약하는 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공부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별 필요 없는 생각과 그래도 지하 창고의 재고 조사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하며 각종 인쇄물과 씨름 한지도 열흘이 넘은 것 같다. 휴일 없는 30일의 노동형을 받으러 펜타곤으로 가기로 정해진 것은 금요일이었다. 목요일 퇴근 무렵 HR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HR은 내게 서류 봉투를 주며 내일 펜타곤에 도착하여 그 봉투에 적혀있는 사무실로 찾아가 제출하라고 하였다.
HR은 “Big days are coming”이라고 말하며 잘 다녀오라고 하였다. 30일 동안 햇빛도 없는 창고에서 지내는 것이 big day이지 라고 여기며 “Thank you so very much.”라고 답하며 방을 나와 바로 퇴근길에 올랐다.
HR이 나를 펜타곤에 보낸 것은 나를 믿고 나에게 또 다른 기회(?) 같은 것이었다.
HR은 나를 믿었고, 그에 따른 업무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방인을 믿었던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만약 지금 다시 HR을 만난다면, 뉴욕의 어느 한적한 Bar에서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HR과는 그러한 기회를 영원히 가질 수가 없다.
HR은 해외 출장 중 폭탄 테러에 사망하였다.
HR과 함께 한 요원은 그나마 유품이라도 찾을 수 있었지만, HR은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는 참혹한 순간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당시 HR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함께 했던 우리 멤버들은 HR의 아들이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HR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대신하며, 그를 위한 금전적 지원을 하기로 약속하고, 꾸준히 지원을 했었다. HR의 아들이 입학과 졸업식 때는 멤버 중 한 명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일요일 아침 방송에 HR의 모습이 내 눈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