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국 요원 활동 첫 위기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지금 돌이켜 보면 짜릿함과 아찔함이 교차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인도 출장은 나에게 첫 시련을 준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내가 받은 훈련으로 무엇을 했는 지를...

미국이 CRAY를 수출 후 해당 국가에 나와 함께 훈련한 팀원들을 통해 무엇을 수집했는지...




뉴욕을 출발한 비행기는 런던을 경유하여 인도의 수도 뉴델리로 향하였다.

런던에서 탑승한 콧수염과 터번을 쓴 남자들과 전통 의상인 샤리를 입은 여성 승객들로 보아 대부분이 인도 사람들 같았다. 70여 년간의 영국 식민지와 수백 개의 다른 언어로 인하여 영어와 힌디어를 사용하지만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모르는 언어라면 신경을 안 쓰면 되겠지만 분명 영어가 들리는데 정작 무슨 단어를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전날 HR의 말에 신경 쓰느라 잠을 설쳤고 런던에서 경유하느라 피곤한 상태에서 그들의 대화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작용했다. 어느 상황에서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유연한 멘털을 유지하여야만 하는 내가 급기야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착석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승무원을 찾아가 고이 그리고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던 두 가지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는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편지였고 두 번째는 유사시 도움을 청할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내 신분을 증명할 신분증이었다. 친필 서명이 담긴 편지를 읽은 여자 승무원의 표정은 의아한 표정과 함께 “캡틴에게 물어보겠다”라는 답을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선 객실 담당 캡틴은 정중하게 내 신분을 요구하였다. 나는 한 가지 목적 이외에 꺼내서는 안 될 나의 국방성 직원을 증명할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그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지은 이유는 아마 동양인인 내가 국방부 장관의 친필 서명 서신과 함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였었던 것 같다. 그나마 객실 담당 캡틴은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공무를 위해 내가 앉아 있던 자리보다는 편한 자리를 원한다”라고 답하였다. 어느 나라 영공을 통과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미국의 국적기를 탑승하고 있었기에 무조건 가능할 것만 같았고 나의 감정대로 행동한 이 사건은 월권행위로 간주되어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이유가 되었다. 캡틴은 나를 일등석 자리로 안내해 주었고 간디 국제공항 도착 전까지 수시로 찾아와 필요한 것을 물었다. 내 입장에서 인도식 억양의 듣기 힘든 영어나 수시로 찾아와 필요한 것을 물어보는 캡틴의 영어나 똑같은 외국어였다.


간디 공항에 도착한 나는 이름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팻말에서 내 이름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뉴욕 출발 전 나와 인도 출장을 함께할 Carrier에 대한 사전 정보로는 현지 채용된 대사관 여직원으로 알고 있었다. 예정 시간보다 상당히 늦게 나타난 그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고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약속 장소인 컴퓨터 센터로 가자고 요청하였다. 공항 건물을 나와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공항에서 대기하던 대사관 차량을 타고 인도 컴퓨터 센터로 출발하였다.


인도 미국 대사관

Carrier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없어 대사관에서 센터 방문 후 일정을 물어보았다.

센터 업무를 마친 후에는 내가 요청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라는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말은 내게 메시지를 통한 전달사항이 있다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녀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인도로 돌아와 인도 주재 미 대사관에서 근무한 지는 1년이 되었다며 묻지도 않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 내게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관리회사 사람을 왜 대사관에서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인지 등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겠지만 민감한 부분 일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상무성의 용역업체이고 대부분의 설치 장소가 일반 사람의 출입이 자유스럽지 않아 설치 후 첫 번째 방문에는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하였지만 잘 모른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였다.


인도는 컴퓨터 설치 후 첫 번째 출장이기에 Handler인 내가 직접 처리 후 그 여직원이 대사관으로 직접 가져가거나 내가 직접 가면 되겠구나 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대사관 직원과 운전기사 간의 힌디어 설전이 시작되었고 그 설전은 센터 도착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차례의 무슨 일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 기사가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구조상 나는 협조를 받고 있는 입장인지라 무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극히 불쾌한 일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착하였고 센터 입구에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중 나온 사람들이 웃음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마중 나온 사람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사람이 다가와 두 손을 합장하며 힌디어로 인사를 하였다. 그는 인도 IT의 저명인사로 BB였다. 그의 안내로 센터 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내게 한 건의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Do it yourself as my instruction.” 처음 접하는 내용에 당황했지만 평소대로 Cray의 뒤편으로 가 외부 저장장치를 장착한 후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전달된 메시지에는 Cray 본체와 연결되어 있는 각 슬롯의 십자 나사 방향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본체와 일직선상에 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는지. 확인을 위해 다가서자 센터 직원으로 보이는 인도 남자 두 명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Cray사에 일을 하게 되었지?” 등의 질문을 하였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본체와 외부로 연결된 십자 나사의 위치였다. 그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하면서도 내 시선은 일자를 이루고 있지 않은 몇 개의 나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페이저로 일치하지 않은 나사의 개수와 슬롯 식별번호를 전송하였다. 예상치 않은 메시지 내용과 확인 요청 사항이 다른 곳과는 사뭇 틀린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 외부 저장 장치의 녹색 불이 깜빡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어느 순간에 녹색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나는 저장 장치를 해체하러 가면서 일치하지 않는 나사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컴퓨터 주변을 한번 돌며 작업 완료 메시지를 전송하였다. 그들은 내가 분리한 저장 장치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무슨 용도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 내었다. 각 슬롯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기계장치라고 설명해 주고 있을 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그들 앞에서 페이저를 꺼낼 수 없어 화장실로 가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On the way” 이는 파견된 직원이나 요원을 구출하거나 데리러 올 때 사용하는 문구로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문구였다.


화장실을 나오기 전 맨 먼저 저장 장치를 내 양복 안 주머니에 넣었고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대사관 여직원을 찾아 업무가 끝났으니 가능한 한 빨리 센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 순간 여직원의 태도가 급변하였다. “저 사람은 용역 직원이 아니다. 미국 정부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녀의 외마디와 같은 외침에 나는 상황 파악을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컴퓨터실 분위기 파악에 주력하였다. 명확한 것은 그녀는 미 대사관에 위장 취업한 인도 정부 사람인 것이니 이 안에 객관적인 판단을 할 사람은 하나고 없는 것이고 결국 본인들이 원하는 정보를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란 결론은 쉽게 나왔다. 나의 업무가 사실 그대로 밝혀질 것에 대한 대응과 그전에 가능한 자연스럽게 센터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훈련이나 지침 사항은 없었는데 과연 어떤 연기를 펼쳐야 할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컴퓨터실 입구 문이 열리며 두 명의 백인이 중년의 인도 사람과 함께 들어오면서 한 명은 BB를 찾았고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와 함께 왼쪽 어깨를 허그하듯 붙이자 그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스치게 되었다. 그는 작은 소리로 “Hello My friend.”라 하였다.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할 수 있었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본체와 일치하지 않은 나사들의 내용은 인도 컴퓨터 센터가 임의로 본체에서 슬롯을 해체하였다는 증거가 된 것이었다. 슬롯을 해체하여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는 계약 파기는 물론 미국이 거래 조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구실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다만, 미국 정부 주도로 슈퍼컴퓨터의 연산 내역을 저장한다는 나의 업무 발각 시 나는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한국인으로서 미국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주장 하였겠지만 그때는 나를 구하러 미국 정부가 힘을 써 준 첫 사례였다.


뉴욕으로 돌아와 안 사실이었지만 두 명의 미국인들 중 하나는 인도 상공회의소 회원으로 BB와 친분이 있었던 컴퓨터 관련 사업가였고 나머지 한 명은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던 미정보요원이었다. 당시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경험상 그 직원은 나와 친한 친구처럼 행동하면서 인도에 출장 온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고 컴퓨터 사업가는 내가 컴퓨터 센터에 머무를 시간에 맞추어 BB와 만날 약속을 정한 것 같다.

추후 미국 정부는 그 여직원과 운전기사를 간첩 혐의를 내세워 인도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였으나 상호 없던 일로 무마된 것 같다. 인도 현지 채용으로 들어온 여직원과 기사 모두 인도 정부 소속으로 그동안 여직원은 본인이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기사는 대사관 직원들의 이동 경로 등을 수집하여 왔던 것이다. 그간 대사관에서도 두 사람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나의 출장 때를 디데이로 잡은 것 같다. ‘하필이면 내 출장 때,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아니면 뭐지?” 복잡한 질문에 내가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유사시에 우리들 모두는 미국인이 아닌 출신 국가의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었다.


인도 슈퍼컴퓨터

인도는 91년 자체 슈퍼컴퓨터를 개발하였고 같은 해 소련에 같은 기종을 설치하였다. 부시 행정부 초기 이와 같은 결과로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으나 공식적으로는 미국이 인도에 슈퍼컴퓨터를 판매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인도는 미국 입장에서 결코 편하지 않은 국가였다. 1960년대 소리 소문 없이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였으며 파키스탄과 수 십 년 간의 분쟁을 빌미로 핵 보유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국가 간 협정의 실천력을 점수로 따지자면 아마 최하위권에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소련과의 유화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슈퍼컴퓨터 판매를 1년 이상 지연시킨 이유였을 지도 모르겠다. 최초 인도는 Cary의 최신형을 요구하였고 미국은 그 보다 아래 등급인 CDC(Control Data Corp.) 제품을 추천하며 서로 시간을 끌어왔다. 그러는 동안 인도는 일본 회사에 본인들이 원하는 성능의 슈퍼컴퓨터 구매의사를 타진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이 미국과의 협의에 의해 그 등급의 슈퍼컴퓨터를 생산이나 수출이나 하지 못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정보를 간파한 미국이 Cray사에 요청하여 적정한 수준으로 제작 결국 수출을 허락하였다. 인도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소련을 견제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생각된다.



< Handler와 Carrier 역할 >

내가 소속된 팀원들이 현장에 파견될 때 우리는 2인 1조의 팀으로 움직였다.

Handler와 Carrier, Handler는 팀의 조장으로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였고 Carrier는 일종의 수습사원으로서 일정 기간 동안 현장 경험을 쌓는 것과 동시에 매 출장마다 습득된 결과물을 가지고 말 그대로 지정된 장소로 배달하는 업무를 하였다.

Carrier들은 Handler가 전해준 외장하드(현재)를 대부분 가장 가까운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전달하였고 전달된 물건은 외교행낭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하고 은밀하게 미국으로 보내 지도록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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