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태어나서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나는 전포동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희망퇴직 시기에 맞춰 양정4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양정 4동은 나에게 특별한 인연과 만남을 갖게 한 동네이다.
난 이곳에서 평생친구라고 생각하는 인연들을 얻었다.
짧은 3년의 양정4동 생활이었지만 평생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한다.
양정 4동에서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속앓이를....
양정 4동에서 사춘기의 방황과 좌절과 혼란을 경험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논하고, 삶에 대한 성찰로
깊은 실의의 나날을 보낸 곳이다.
끝나지 않은 방황의 시작에 내 곁에는 가족보다 친구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웃고 웃으며, 나를 찾아갔다.
헤르만헤세를 좋아했던 소년,
산울림을 좋아했던 소년,
시를 좋아했던 소년,
친구를 사랑했던 소년,
그래서
학교생활에 부적응했던 방황아,
그래서
집에서는 반항아로 군림하며 겉돌았던 외톨이
지극히 고독을 좋아했고
지극히 삶에 대한 불안감이 강했던 나약한 존재였지만
언제나 미소 짓고 긍정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소년....
그 소년이 살았던 양정 4동 그 흔적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전포동에서 양정4동으로 처음 이사 온 동네 골목
왼쪽 두 번째 집이 우리 집이다.
이 집 역시나 우리 집을 포함해서 3 가구가 함께 살았던 전포동 집과 같이
3 가구가 함께 살게 된 집이다.
1 가구는 금은방에서 다니시는 젊은 부부로 어린아이가 있었고,
1 가구는 아주머니가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어렵게 사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주인집인 우리는 마당을 차지하는 가운데에 살았다.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정말 좋았던 것은
옥상과 청포도 나무 그리고 조그마한 연못이었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청포도를 따기 위해
우리 집 담장아래에서 아이들끼리 목마를 태우고
포도사리를 하다가 어머님께 혼나곤 했다.
난 이 동네 아이들에게 이사 온 이방인으로
청포도를 갖고 인심을 쓰면서 함께 어울렸다.
사춘기 가슴 답답한 시간이면 옥상에 올라 하늘을 봤고,
학교 앞에서 팔던 금붕어를 비닐에 싸서 가져와
연못에 키웠다. 금붕어는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 창문이 아주머니와 고등학생 형이 함께 쓰던 방이었다.
그 형이 담배를 피우고 창문밖으로 버려 동네에서 지탄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 골목 끝은 막다른 길인데...
4 가구가 사는 데 아줌마들의 원성이 많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도 힘들었다.
결국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청포도 담장 아래의 철제대문이 2009년 기준으로
20여 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놀라웠다.
이 골목은 재개발의 영향에서 비켜간 듯하다.
그리고 당분간은 재개발을 하지 않을 듯하다.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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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출장으로 2009년 이후 다시 이곳을 방문했다.
재개발로 이곳의 흔적은 사라졌고,
빌라촌이 형성되었고, 아파트 재건축으로 공사 중이었다.
이젠 사진으로만 남긴 나의 옛 동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