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II

왜? 호모사피엔스만이 인류의 유일 종인가?

by 김성원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결혼 I"에 대한 글을 쓰고 난 후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이 남아 있었다.

"결혼"에서 쓴 것처럼, 결혼은 생물학적 본능과 사회적 본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모 사피엔스 고유의 문화 장치다.로 규정을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딱딱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에게 쉽게 해석되지 않는 이 문장을 쓰고 난 후 계속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집착하게 되었다.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반복하면서 나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질풍노도 시절 시를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시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슬픔을 느끼며,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삶의 힘겨움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소년은 사랑인지? 좋아함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를 만났다.

소년의 가족은 소년이 중학교 때 소녀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소년과 소녀는 같은 동네에 살게 되었다. 여자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소녀가 같은 동네에 살고 부모님들 간에도 인사 나누며 지내는 사이였고 소년과 소녀도 동네에서 마주치며 말동무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소녀와 우연과 필연의 만남 횟수가 늘어가면서 호감을 가졌고, 그 호감은 가슴 두근거림으로 바뀌었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면 행복했고, 즐거웠다. 소년은 소녀를 매일 만나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고, 소녀를 만나기 위해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 나와 그녀의 학교 정문 앞에 숨어 있곤 했다. 소녀가 교문 밖을 나서는 것을 보고, 먼발치에서 소녀를 따라가면서 소녀가 친구들과 헤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곤 했다. 소녀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소년은 소녀 옆으로 빨리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10여분 함께 걸으며 대화한 후 각자의 집으로 향하며 헤어졌다. 소년은 그 10분을 위해 매일매일 설렘을 갖고 살았다.


소년은 소녀와의 설렘을 시를 통해 어렴풋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소년에게 시는 입시에 찌든 학창 시절의 해방구였고, 학교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는 안식처였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과 상상력을 배우는 교과서가 시집이 되었다.


스무 살이 넘어 만났던 이성은 친구와 연인 사이가 구분되었다.

편안함을 간직하고 가슴 설렘이 없는 이성은 친구였고, 가슴 설렘으로 주는 이성은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된 이성과는 만남과 헤어짐이 서로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결정이 되었다. 순수한 감정보다는 주변 환경이라는 것들이 작용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난 "짝사랑", "외사랑"이라는 단에 집착했었다. 자연스럽게 만나서 연인이 된 이성도 있었지만, 나 혼자 끙끙되었던 이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난 시를 통해 나를 위로하며 시 속의 행복한, 불행한 결말들을 상상했었다.


당시에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시의 한 구절은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슬픔 아니면 기쁨"은 내 스무 살 시절의 삶의 상징적 문구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이성을 만나고 감정을 교류할 여유 없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로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사람도 공간도 삶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이유는 모든 것이 새로움의 적응기였기 때문이다.


1980년 대 후반 가방하나 둘러매고 상경 한 서울!

노량진 고시원에서 짐을 풀고 시작한 첫 사회생활은 고달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고달픔 보다 더 힘든 것은 고독함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모든 것이 서툰 청년의 사회생활은 힘겨웠다. 청년은 주말이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종일 책을 보았다. 시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처세술과 업무와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청년에게는 광화문 교보문고가 세상을 배우는 창구가 되었다.


당시에 시집과 함께 참 많이 읽었던 책은 류시화의 잠언집이었다.

고달픔과 고독을 즐겼던 청년에게 새겨진 문구는 "지금 알고 있는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었다.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경험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이 문장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글귀였다.


힘겨움이 익숙해지고, 고독함이 낯설지 않을 때쯤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났다.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다.

이러저러한 모임과 기회로 몇 번을 더 만나게 되었다. 만남을 가질수록 호감이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들이 나의 어머니, 학창 시절 소녀 그리고 스무 살의 풋풋한 감정이 살아남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곳에서 내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학창 시절 자율학습 시간 도망 나와 소녀의 학교 정문 앞에 있었던 것처럼, 매일매일 그녀를 보고 싶은 생각에 그녀의 회사 근처로 퇴근하거나, 그녀의 집 근처를 서성였다. 스무 살 무렵 지독하게 앓았던 "짝사랑", "외사랑"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도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와 그녀와의 연예 기간은 길었다. 나의 불안정한 사회생활과 불확실한 미래가 어른들에게는 미덥지 않았던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2월 우리는 법적으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 이혼을 위해 법정에 서지 않고 2024년 12월 은혼식을 맞이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결혼을 하게 되었는가?" 질문을 한다면

원초적인 질문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싶어서...

이러한 말의 배경에는 그녀에게서 내가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함을 일깨워 주었고,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감성적 충족과 이성적 부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느냐? 고 묻는 다면 <그녀를 처음 만났던 설렘이 지금은 그녀가 없는 나의 삶은 말할 수 없기에 나는 지금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혼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사랑"의 감정에서 출발하여 이성적 소통과 사회적 욕구 보완 순으로 이유를 말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말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생활에 결혼은 제도화 법제화 되어 있다. 왜??


"결혼"은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마지막 종으로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원시 사회에서 다른 인류와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체를 증식시켜야 했고, 함께 모여 살면서 외부 환경에 공동체 조직으로 대응이 필요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직화, 체계화, 내부 결속을 위한 공동체로 "우리"라는 사회적 의식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었다.


"우리"라는 조직의 가장 작은 단위가 부부, 가족이고, 이를 통해 가족과 가족의 공동체를 형성시키고, 가문으로 묶고, 경제를 바탕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고, 정치적 공동체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라는 개념에서 나와 너,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생겼다고 본다.


결혼이 지극히 한 개인의 감정과 삶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라는 공동체의 최소단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공동체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으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한 장치들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결혼이다. 그래서 결혼은 공동체를 유지 발전하고 내부 결속화 시키는 사회적 도구로서 국가가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과 번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 중심의 공동체를 조직했고, 이 과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협력과 규범을 강화했다. 이후 이러한 제도는 국가와 권력 시스템에 의해 법적으로 구조화되었다.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닌 종족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제도화 법제화 시킨 것이 결혼이다. 그리고 결혼은 감정, 이성, 사회적 욕구가 결합된 사람과 사람과의 계약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 입장에서는 공동체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법제도화 시킨 것이다.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 건조할 수 있지만.


결혼은 호모 사피엔스가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생존을 연결 짓기 위해 만든 사회 문화 규칙이자, 인류 생존 경쟁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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