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모사피엔스만이 인류의 유일 종인가?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 동생이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의 가족이었다. 내가 20대 초반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들이 결혼을 하면서 가족은 아버지와 나 그리고 동생이 남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동생과 나만이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하면서 동생은 홀로 남게 되었고, 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장인과 장모님으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나와 아내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책임을 지고 보살피고, 챙기며 돌봐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서적 유대와 무한한 책임감으로 연결된 관계다.
가족은 서로에 대한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사회의 기본 공동체를 이룬다. 가족에 대한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은 부모님, 아내, 자녀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으로 흘러간다. 한국 사회에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의 역사가 가문이 되고, 족보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왔다.
그러나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관계가 꼭 혈연으로만 이어지는 것일까? 입양을 통해 새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아내와의 결혼을 통한 장인, 장모님과 인연을 맺는 것은 혈연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가족은 혈연 중심적 사고를 넘어 정서적 유대 관계, 즉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면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고리가 약해지거나, 느슨해지거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관계를 우리는 친인척으로 보통 3촌 이상으로 분류한다. 3촌 이상은 친인척 범주로 인식하며 '인간적 도리'의 범주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며 양보를 통해 가문이라는 집단 내에서 상호 도덕과 윤리를 갖추는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친족(親族)과 친인척(親姻戚)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친족은 혈연과 혼인 관계 중심이며, 친인척은 혈연과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포괄적 관계이다.
- 가족: 무한하며 조건 없는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 공동체. 법적/정서적/생활 공동체를 포괄
- 친족: 혈연 및 혼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법률적·사회적 범주. 주로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포함
- 친인척: 보다 넓은 범위의 법적·사회적 관계. 법적 친족 범위를 넘는 인연도 포함
가족, 친족, 친인척...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는 농경 중심 사회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문명 속에서 가족과 3촌 이내의 친족이 현재 삶에 영향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3촌 이상의 친족보다 더 친밀한 정서적 유대 관계를 갖는 경우가 많다.
친족과 친인척은 관계의 연결을 이어가면서 '우리'라는 것에 중점을 둔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던 농경문화의 개념이라고 본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계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진정한 친족, 친인척의 범주는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고리의 연결성과 정서적 유대 관계가 핵심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은 '남남'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남'에 대한 규정은 필요하다.
친족 간 이성적 사랑으로 인해 중세의 순혈주의, 정치권력의 세습 및 동맹 강화 목적의 근친혼의 폐해가 있기 때문이다. 근친혼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전질환 발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하나의 왕조, 하나의 혈통을 고수하면서 왕가의 신성한 혈통 유지를 위해 근친혼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합스부르크 턱'이라는 안면 기형과 그 후유증으로 언어장애, 불임 등이 나타났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5촌 이상이면 유전질환 위험도가 낮고 결혼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4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근친혼을 4촌 이내를 금지하고 있으며, 친족 범위는 8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및 배우자로 규정하고 있다.
'남남'이라는 규정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1.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의 고리의 연결성과 정서적 유대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 (친족, 친인척 포함)
2. 유전질환 위험도가 낮은 5촌 이상의 친족, 친인척
3. 우리나라 기준으로 9촌 이상 혈족과 5촌 이상 인척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공부를 거의 하지 않던 내가 그래도 대학 진학을 해보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려 어렵게 단과 학원 수강을 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자율학습 대신 나는 단과학원의 수학 수업을 3개월가량 받았다. 고3 여름 방학 때 부산에서 당시 5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에 살고 계신 큰 고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방학 때 가끔 고모집에 놀러 간 적이 있어 고모님을 참 좋아했다. 고모님은 시골에 있는 동안 나를 아들처럼 잘 보살펴 주셨기 때문이다.
고모님은 나와 사촌인 아들과 함께 오셨다. 나와 사촌인 고모님의 아들이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서로 '어~~~'하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사촌과 나는 단과학원의 같은 수학 수업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 간 우리는 계속 스치면서 남남처럼 학원 수업을 듣는 또 다른 학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와 동갑인 사촌이 서로의 얼굴을 몰랐던 이유는 내가 국민학교 때 시골에 가면 그는 형, 누나가 있는 인근 도시로 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몇 번 스쳤지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부산에서 학원을 다니는 것을 몰랐던 것은 고모께서 우리 부모님께 말하기가 어려워, 그를 자취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동갑이지만 빠른 생일로 부산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나와 사촌인 그는 학원에서 만나 군것질도 하고, 주말이면 우리 집에 오기도 하였다. 사촌이면 우리는 친족이며 남남이 아닌데, 우리는 남남으로 3개월간 함께 했던 것이다.
가족, 친족, 친인척, 남남...
호모 사피엔스는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존을 위해 결혼,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도화시켰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와 나, 우리,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가르기 시작하였고, 집단과 사회, 욕망과 권력을 존속시키기 위해 제도, 법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적 규정을 만들어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켜 왔다.
가족, 친족, 친인척, 남남 등은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에 따라 다르게 규정할 수 있고, 그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또 다르게 운영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유일 종으로 살아남기 위해 만든 보이지 않는 개념이었고, 그 개념 속에는 시행착오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유일한 생존 인류로 남아 있게 된 지혜가 담겨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는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욕망과 욕구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그려내는 힘으로 생존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도와 법 그리고 국가로 상징화된다. 그리고 제도와 법 그리고 국가는 가족, 친족, 친인척의 씨족 사회에서 발전된 개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