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첫 교육을 통과 후 다음 단계 16주간의 해외 교육을 위해 우리는 호주로 향했다.
호주에서 16주 교육 기간 동안 우리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교육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탈락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문제로 외부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창이 없는 지하에 외부와의 단절 그 흔한 TV나 라디오, 신문 잡지도 없이, 먹고 교육시키고 재우는 일상의 반복을 16주 동안 했다. 교육을 시작한 지 2주차부터 우리 교육생 중 일부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3주차부터 교육을 포기하는 교육생도 나왔고 8주차에 탈락하는 교육생을 마지막으로 24명 중 최종 15명이 16주 교육을 이수하였다.
호주에서의 16주간 교육은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갖고 있는 각 나라 출신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 정부가 요구하는 최적의 사람이 되는 기간이었다. 개인적으로 호주 사막에서의 교육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 업무차 방문하게 된 호주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호주가 내 인생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내가 미국 영주권자로 살아갈 마지막 관문이었던 곳이다. 사람에게 생존을 위한 목표가 설정되면 자기에 주어진 변수나 환경은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당시에 내가 그러했다. 나는 영주권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극복하고 이겨내고 견뎌야 할 시간들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 아니 포기라는 것 또한 사치 같은 것이었다.
일본에서 호주로 이동할 때 우리는 군용기가 아닌 민간 비행기로 이동하였다. 일반 자가용 비행기보다는 큰 제트엔진을 사용한 비행기였다. 일본을 출발하여 대여섯 시간 후 호주의 북쪽에 위치한 공항에 도착하였다. 일본도 처음이었지만 저녁 무렵 기지로 들어가 있었으니 일본 안에 있는 미국땅에 머물렀던 것이고 이제 호주에 도착해 시야에 들어오는 또 다른 정취에 혼란스러웠다. 호주 공항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헬기 이착륙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헬기를 타고 이동 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우리들이 교육 종료 후 실무에 투입되어 하는 일이 미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는 3대의 헬리콥터에 나누어 탑승하였다. 헬기가 이륙하면서 엔진에서 나오는 소음과 흔들리는 기체로 시간이 갈수록 멍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타보는 헬기였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창 밖을 보니 처음 몇 분 동안은 잘 정돈된 도시와 숲이 보였지만 이내 끝없이 펼쳐진 평원, 붉은색 황무지와 사막만이 보였다. 헬기의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하강을 하고 있었고 황량한 사막의 모습은 점점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상에는 군복 차림의 사람들이 헬기로 인해 발생하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이착륙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조금은 넓은 콘크리트위로 3대의 헬기가 차례로 착륙하였고 미 해병대를 표시하는 패치를 부착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헬기의 문을 열어 주었다.
사막 한 가운데의 강렬한 태양 빛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게 만들었고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숨을 막히게 할 정도였다.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니 주변에는 어림잡아 수십 개의 얇고 높은 철탑 같은 것이 있었고 한쪽으로 3층 정도 높이의 조그마한 흰색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철탑들은 모두 전파 감지 용이란 것만 알았지 그 시설의 목적과 내용은 알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 짐을 챙겨 해병대원을 따라 건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와 문명의 이기를 느끼며 창 밖의 이글거리는 열기를 보고 있을 때 교육생들을 집합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각자의 이름을 호명하며 앞면에는 사진과 이름이 뒷면에는 특이하게도 바코드가 인쇄되어 있는 아이디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디 카드를 교부받은 후 해병대원을 따라 중앙에 위치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엘리베이터가 나왔고 사용 설명을 들었다. 미국, 일본, 호주로 이어진 신기함과 의아 함에 연속인 지난 48시간이 넘는 여행의 끝에서 엘리베이터 사용 설명을 들으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자세히 보고 나니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없었다. 건물의 구조상 올라갈 층 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려가는 버튼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방향을 나타내는 버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정사각형의 검정색 패드 같은 것만 있었다. 우리들 중 한사람을 불러 좀 전에 교부한 아이디카드를 패드에 갖다 대라고 하였고 카드를 대자마자 삐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는 모두 와~ 소리를 질렀고 신기한 놀이 기구를 본 아이들 같았다. 하긴 모두 20대 초 중반의 대학을 갓 졸업한 외국인들이었고 얇은 비닐에 코팅된 신분증만 보아왔던 시절 플라스틱에 내 얼굴이 인쇄된 신분증은 신기한 것이었다. 특이한 것은 여러 명의 탑승 시에도 탑승자 모두 각자의 아이디카드를 패드에 갖다 대고 확인이 된 후에야 문이 닫히고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이디를 대지 않은 친구의 공동 탑승 시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엘리베이터 였기에 서너 번에 나누어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세개의 버튼이 있었는데 숫자는 없었다 그저 지하 1,2,3층까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본 실내의 모습은 마치 호리병을 본뜬 모습이었다.지상 층이 호리병 입구였었다면 이 지하층은 호리병의 밑부분 같았다. 건물 내부는 미국의 공공건물, 학교나 병원 건축에 쓰이는 블록을 사용한 전형적인 건축 구조였다.
우리는 강의실 같은 곳으로 안내 된 후 일상복과 운동복 그리고 세면도구가 들어가 있는 백과 필기도구가 포함된 문구류를 지급받았고 우리가 가져온 짐은 각자 이름을 붙인 꼬리표를 달아 한쪽에 보관하였다. 그 후에는 2인 1실로 방을 배정 받았고 나가면서 오른쪽에 진열되어 있던 운동화 박스에서 각자에 맞는 사이즈를 찾아 방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상에서부터 안내를 맡았던 해병대원을 따라 비상구를 통해 한 층을 더 내려갔는데 꺾어진 계단을 세 칸 정도 내려갔으니 일반 건물의 높이 보다는 더 깊었던 것 같았다. 안내된 방문 앞에는 내 이름과 룸메이트인 서독 출신 K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지급받은 물품을 대충 정리하고 있자니 방안 천장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필기구를 지참하여 15분 후 처음 모였던 방으로 오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K와 함께 나와보니 복도에 모두 모여 있었는데 어느 문을 통해 올라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친구들이 열리는 문을 통해 올라갔다 왔었지만 모두 잠겨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교육의 시작인 줄을 아는 사람은 우리들 중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인도 출신 P의 기억력을 빌려 지하 1층으로 올라갔고 처음 들어갔었던 강의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강의실 뒤쪽에는 음료와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었고 앞에는 HR이 서 있었다. 우리가 착석하자마자 “여러분 24명 중 생존자가 아무도 없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HR의 첫마디에 긴장감은 높아졌고 그렇게 호주 사막 한가운데 지하 강의실에서의 교육은 시작되었다. HR은 앞으로 어디를 가던 공간과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을 키우는 것과 객관적 사고방식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앞으로의 주된 교육과정임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