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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는 다시, 귀환할 수 있을까

안상수 개인전 <도깨비집-경계의 날개> 옵스큐라 성북, 9월 13일까지


한글 도깨비.png 안상수 작가의 개인전 <도깨비집-경계의 날개>가 옵스큐라 성북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옵스큐라 성북’ 전시장 외부에서 작품 '한글도깨비'를 찍은 이미지다. ⓒ 옵스큐라

날개 안상수가 불가해(不可解) 존재 '도깨비'를 소환했다.


안상수 작가의 개인전 <도깨비집-경계의 날개>가 옵스큐라 성북(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에서 열리고 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미학을 개척해 온 안상수는 시인 이상의 실험 정신과 한글의 조형미를 애지음하며 수행해 온 도안가(道眼家)다. 이번 전시는 한글로 멋지음한 '도깨비展'이다.


도깨비는 목적(居處) 없는 존재다. 떠돌며 노래(舞歌) 부르는 인간의 그림자다. 심심소일(心心消日)로 씨름질 청하거나 방망이 두드리며 별안간 나타나는 두두리(豆豆里)다. 그래서 집이 없다. 거처불명이다. 안상수 작가가 성북동 집 한켠에 도깨비집(巫家)를 마련한 까닭이다.


이번 성북동 옵스큐라 <도깨비집> 전시관은 말 그대로 도깨비 거처다. 사라진 도깨비를 부르기 위한 당골집(堂谷家)이다. 도깨비를 불러내기 위해 무당 당골레는 검은 유언(幽言)을 허공에 날리고, 소환된 도깨비는 화가의 유언(流言)에 따라 이미지로 드러난다.

당골레.jpg <도깨비집-경계의 날개> 도깨비 퍼포먼스, 이여슬 등 무속인 5인, 2025 ⓒ 옵스큐라
00.png (좌)드로잉, 2025, 종이에 흑연, 100x70cm, (우)드로잉, 2025, 종이에 흑연, 100x70cm ⓒ 안상수


도깨비는 말(言) 없는 존재다. 인간의 이야기만 일부 전한다. 있으면서 없는 존재다. 그러니 얼굴도 없다. 안상수 작가는 '없는 얼굴' 도깨비와 '있는 얼굴' 도깨비를 보는 눈, 도안(道眼)을 가졌다. 없는 것을 보고, 본 것을 만든다. 글자와 이미지가 서로 화통(化通)하여 그 어울림 경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한글도깨비'다.


한글은 음(音)으로 문(文)을 만든 예술이다. 남의 정신과 무늬를 거부하고 쉽고 간단하게 만든 이간(易簡)의 예술이다. "한글은 큰 멋짓이다. 큰 디자인이 한글이다." 안상수의 선언이다. 그렇게 안상수의 도깨비는 한글로 멋지음되며, 간이의 미학은 경계를 가로지르는 날개 안상수의 예술로 완성된다.


들리지 않는 음성(吟聲)에 붙잡힌 존재의 방에는 어느 예술가가 흔적 남긴 시 한편과 도깨비-인간이 풍류 즐기는 음악(巫歌)만 흘러나오고 있다. 다시, 도깨비는 귀환할 수 있을까.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다시, 인간은 도깨비와 어울릴 수 있을까. 한글-도깨비는 그저 지켜 보고 있을 뿐이다.


도깨비, 시

도깨비, 구

도깨비, 동

도깨비, 길

도깨비, 집

한글이.

살고.

있었다. - 날개 안상수 作


000.png (좌)한글 도깨비, 2025, 캔버스에 흑연물감, 227x181cm, (우)한글도깨비, 2025, 캔버스에 흑연물감, 117x91cm ⓒ 안상수
한글도깨비, 4K, 단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스테레오), 60초. 안상수


*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용어 설명 풀이를 덧붙입니다.


- 도안가(道眼家) : 보통 디자이너를 도안가(圖案家)라고 부르지만, 본문에서 사용한 도안가(道眼家)는 불교에서 진리를 분명히 나타내는 눈, 또는 수행하여 얻은 안식을 의미.

- 무가(舞歌) : 춤과 노래를 아울러 부르는 말.

- 심심소일(心心消日) :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심심풀이로 하는 일.

- 두두리(豆豆里) : 도깨비를 이르는 말. <고려사>에서는 두두을(豆豆乙)이라는 도깨비에게 제사지낸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의 설화에서 도깨비는 두두리(豆豆里)로 등장한다.

- 당골레 : 무당의 방언.

- 유언(幽言) : 깊고 그윽한 말, 또는 귀신이나 도깨비 말.

- 유언(流言) : 떠도는 말.

- 멋지음 : 멋을 짓는 행위. 안상수는 '디자인'을 멋지음이라고 바꿔 부른다.

- 애지음 : 애를 써서 짓는 것. 안상수는 이를 '창의'라고 부르고, 이것은 외솔 최현배의 말을 빌린 것이다.

- 음성(吟聲) : 시나 노래를 읖는 소리.

- 무가(巫歌) : 무당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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