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브이 필름메이커들: 잭과 헤더, 그리고 혜련
미디어오리가 만드는 숏다큐 미디어 <인터브이>. https://www.instagram.com/interv_media/
인터브이는 형식에 메시지를 맞추지 않고, 메시지에 형식을 맞추는 숏다큐 미디어다. 온난화 시대의 출산, 닭, 옥탑방, 연기하는 K-장녀 등 우리 일상의 크고 작은 순간들을 담아 '저널리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다.
굉장히 자유롭게 영상 실험을 할 수 있는 인터브이에게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그건 바로 '프로타고니스트에 대한 사랑'이다. 모든 인터브이 필름메이커는 영상 속 인물에 대한 사랑과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대상에 대한 따뜻함이 영상에 묻어나와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 방식이 1인 크리에이터 체제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기획자-연출자-편집자 등으로 역할이 나누어졌을 때도 가능할까?
그래서 <사라지는 동네에서 할머니와 걷다>는 다소 이상한 사람들로 구성된 인터브이에게도 다소 이상한 실험이었다.
<사라지는 동네에서 할머니와 걷다>는 기획부터 발행까지 약 8개월이 걸린 영상이다. 과거의 인터브이 영상과 달리, 촬영과 편집을 분업하여 진행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다. 촬영을 진행한 잭슨 브룩(Jackson Brook)과 헤더 넬슨(Heather Nelson)은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장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2020년 여름에 한국으로 왔다. 어찌어찌하여 이문동에서 재개발에 대한 촬영을 시작하였으나, 한국어의 장벽이 너무 컸기에 2021년에 인터브이의 필름메이커인 내가 편집자 겸 공동연출로 합류했다.
합류하기로 마음먹은 구체적인 계기는 2021년 겨울, 헤더가 인터브이/미디어인큐베이터오리(미디어오리) 사무실로 찾아와 첫 러프컷을 보여줬을 때다. 러프컷은 구렸다. 시청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영상적 리듬이란 건 없었고, 제작자가 어렴풋이 가진 '재개발의 심각성'이라는 추상적인 메시지가 여기저기 흩어진 장면들을 어색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보였다. 50여 년을 산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을 손자와 걸어다니며, 함께 마주친 이웃들을 가족처럼 친근하게 윽박지르는 신철순 할머니. 글은 못 읽지만, 계산은 철저한 사람. 어디를 가도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에 피땀 흘리며 청계천에서 식당을 운영했고, 외국인 노동자로 해외에서 20여 년 힘들게 일했던 남편과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집을 지었다. 그 집에는 마당에 감나무도 있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도 있고, 할머니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족들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몸은 오랜 투병으로 죽어가고 있고, 할머니의 이문동도 재개발로 인해 조만간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인터브이라는 숏다큐 미디어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프로타고니스트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하면 그 대상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 애정이 어린 시각이 필름메이커의 손가락으로 전달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영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인터브이와 작업 방식이 달랐음에도, 제작 중간에 프로젝트의 편집자로 합류했다. 할머니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재개발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주제다. 네이버를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매일 우수수 쏟아진다. 재개발은 정치와 자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주거공간과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문4구역"으로 명명된 신철순 할머니의 동네도 (구체적인 일시는 불분명하지만) 재개발될 것이다.
할머니의 가족들 사이에서도 재개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개발'이 되며 교통이 편리해질 거라는 할아버지, 획일화된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할머니의 딸, 그리고 지금의 동네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는 할머니.
난 떠나기 싫어. 이문동은 우리 동네야.
거대자본의 흐름으로 인해 우리들이 속한 커뮤니티가 사라지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동연출 잭은 현재 캄보디아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의 재개발은 중요한 인권 문제라고 한다. "프놈펜에는 항상 거대 인프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정부와 기업이 제시한 조건을 이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에요.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죠."
기후 위기에 관심 있는 공동연출 헤더는 베트남 달랏시에서 바이오매스 가스화 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제 고향은 미국 뉴저지 주예요. 우리 동네는 해안가에 있어서 부근에 재개발 공사가 잦았어요. 아파트나 리조트 건물을 짓기 위해 제가 알던 가게가 사라지는 게 슬프긴 했지만, 제 일상과 직결된 문제는 아니라서 크게 영향받지는 않았어요.
<사라지는 동네에서 할머니와 걷다>는 제가 베트남에서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와 연관이 있어요. 미국 MIT 대학에서 저는 해수면 상승과 관련된 기술적 솔루션을 연구했어요. 앞으로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 변할 거에요. 제가 잘 아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이해하고 싶어서 다큐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인터브이는 '재개발'이란 단어 뒤의 실제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모두가 익숙해하는 주제를 색다르게 다룰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신철순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으니까. 할머니 특유의 리듬을 성실하게 고민하면, 재개발이라는 해묵은 주제가 신선하게 녹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동연출 잭은 이렇게 말한다.
최종 영상이 좋은 이유는, 제가 생각했던 그림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익살스러워서입니다. 촬영 당시 제 머릿속의 영상은 진지하고 심각했어요. 하지만 결과물은 할머니의 즐거운 에너지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 같아요.
편집 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촬영본 자체의 리듬을 숙지하는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는 항상 염두에 두지만, 1순위는 프로타고니스트의 리듬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리듬. 그의 표정, 목소리, 움직임; 그를 통해 보이는 이문동이라는 공간의 다채로움. 음식을 배달하는 트럭 소리, 골목 곳곳 리어카, 길고양이, 소소한 농담을 나누는 이웃들. 영상에 깔린 통통 튀는 음악. 나는 할머니와 이문동의 활기와 에너지를 강조하며, 그 살아있음을 통해 사라짐의 슬픔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브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같이 담는 미디어다. 그 사람의 평범한, 사소한 순간들이 아름답게 포착되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공명을 지향한다.
<사라지는 동네에서 할머니와 걷다>는 신철순 할머니와 그의 이문동에 보내는 사랑의 엽서다. 시간의 엽서다. 수년 뒤, 할머니의 이문동이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의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이 좁디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일상은 온갖 냄새와 색깔과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글 강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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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다큐로 미디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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