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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오리 May 28. 2021

"실은, 공장의 모든 동물이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인터브이 미디어 <경희의 닭> 감독 혜련에게 묻다


미디어오리가 만드는 숏다큐 미디어 <인터브이>. https://www.instagram.com/interv_media/




공장에 가두는 모든 동물이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그걸 필요로 하고. 하지만 인간이 그 필요를 앗아가는 이유는,
공장에 있는 동물들은 생명이기 전에 상품이기 때문이에요.


인터브이 영상 <경희의 닭> 썸네일


인터브이의 영상 <경희의 닭>을 기억하시나요?

닭의 세계와 질서를 관찰하고 있다보면, 인간 사회와 닮은 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인터브이의 감독 '혜련'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희의 닭> 비하인드 스토리를 파헤쳐 볼까요?



닭이 먼저냐, 경희가 먼저냐

주연 | 이 영상에 대해 짧게 소개해주세요.


혜련 | 경희와 정기, 라는 따뜻한 소작농 농부들이 건강한 닭들을 재밌게 키우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공장닭이라는 유령 같은 내레이터가 있어요. 그 내레이터가 우리가 영상 속에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과 음산한 대조를 이뤄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닭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다양한 방면으로 전달하는 영상이에요.



주연 | '닭이 먼저예요, 달걀이 먼저예요?'라는 질문이 있잖아요.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혜련 | (침묵) 그러니까, 닭이나 새 같은 조류가 진화한 과정이, 공룡에서 진화한 거 아니에요?* 생선이 바다에서 놀다가 천천히 육지로 나와서, 걔들이 좀 더 커지면서 뭔가 날개 같은 게 달리고. 하. 근데 걔들도 알을 낳았고.... 아,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닭이 티라노사우르스의 후손이라는 논문도 있고, 말도 안된다는 반문도 있다.)


주연 | 그러면 이 영상 속에서는 닭이 먼저예요, 아니면 경희가 먼저예요?


혜련 | 존재론적인 서열 관계에서 보자면 경희가 먼저죠. 왜냐하면 이 영상에 나오는 닭들은 인간에 의해 생성되고, 부화가 되니까. 근데 촬영을 할 때 저한테 더 큰 주인공은 닭이었던 거 같아요.


우선 닭들을 중심으로 경희와 정기의 일상이 만들어졌어요. 한 10년 전부터 그들의 인생에 닭들이 들어오면서 둘은 새벽에 일어나서 먹이를 주고, 밭에서 채소를 가져와서 닭들에게 주기도 하고, 전라남도 전역에 퍼져있는, 특히 광주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고객들에게 알을 배송하죠.


두 번째는 닭들이 목소리가 없다는 것? 그게 끌렸던 거 같아요. 실제로 닭들을 보면 소리가 가장 크잖아요. 소리가 다채롭고 큰데 사실 그 서열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특이한 위치에 있는 동물의 관점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경희, 정기 그리고 닭

주연 | 어떻게 이 주제와 경희 님이라는 인물을 선택하게 됐어요?


혜련 | 사실 201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한 2년간 단양에 있는 한드미 농촌유학마을에서 생활지도 교사로 일한 적 있었어요. 거기서 애들이랑 같이 기숙을 하면서 농사도 짓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를 기점으로 여성 농민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인터브이 영상을 기획하는 도중에 구본숙 씨라는 여성 활동가와 접촉을 했는데, 그분이 제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경희님을 소개해주신 거죠.


경희는 스카이프로 처음 만나서 사전 인터뷰를 했었는데 한참 여성 농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뭐가 특별할 게 있다고 인터뷰하러 오냐'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걸 듣고 되게 끌렸던 거 같아요. 인터브이의 브랜드 자체가 평범함 속에서 영화 같은 가치를 포착하는, 그런 반짝거리는 순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미디어니까. 경희님의 특별함을 한번 저도 실제로 보고 싶었어요.


주연 | 그래서 실제 만난 경희님은 어땠어요?


혜련 | 언론이나 라디오 같은 매체에 나와서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한 번에 휘어잡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분이고, 흥도 많으시고. 영상에 보면 편집된 부분이 많지만 장구도 잘 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세요.


주연 | 경희와 정기의 관계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재밌었는데, 둘의 관계에서도 서열이 있다고 보신 건지 궁금해요. 관계들을 나타내는 컷은 어떻게 편집하게 된 거예요?


혜련 | 저는 ‘관계’라는 단어가 좋아요.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영화잖아요. 닭과 인간 간의 관계, 경희의 닭과 공장닭 간의 관계, 닭과 정기와의 관계. 그중에 서열도 있고.


어떻게 구성하게 된진 잘 모르겠네요. 붙이다 보니 붙었는데. (웃음) 주로 촬영본을 검토하기 전에도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경희와 남편이 티격태격할 때 '아 이 순간 진짜 좋았다.' 그 관계에서 부각하고자 한 것이 서열은 아니에요. 둘은 제가 보기에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역할을 배분해서 같이 비즈니스를 꾸려가는 팀이에요. 사실 법적인 서열 관계로 따지면 경희가 위죠. 왜냐면 경희가 그 농장의 대표니까요.



편집, 편집, 편집

주연 | 총 제작 기간은 총 얼마나 된 거예요?


혜련 | 편집을 시작하고 엎고 다시 시작한 과정까지 합한다면, 총 제작 기간은 촬영에서 발행까지 1년 걸렸어요.


촬영 기간은 2019년 7월에 1박 2일, 10월에 1박 2일 걸렸어요. 첫 촬영은 저 혼자 영광군으로 내려가, 멋도 모르고 비싼 카메라를 대여해 엄청 고생했어요 (영광 버스터미널에 혼자 앉아 세팅 공부만 2시간 했어요). 그 이후의 촬영들은 이현경, 권오연 촬영 감독과 함께 진행했구요. 항상 혼자 일하던 저에게 ‘세컨캠’의 존재는 여러모로 새로웠어요. 소통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됐죠.


편집은 제가 주로 편집하는 플로우가 있는데, 우선은 촬영한 영상을 전부 다 봐요. 검토 과정이 저한테는 제일 중요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보면서 타임 코드를 적어두기도 하고. 이렇게 검토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나오는 대로 편집을 시작하는데, 이 영상에 대한 검토 과정을 몇 번 갈아엎었어요. 검토할 때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데, 처음에는 계속 “빨리 끝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어 촬영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주연 | 결과물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나요?


혜련 | 좀 더 긴 호흡으로 가면 경희가 부각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여성 농민의 위치, 권리. 사실 경희가 닭을 키우는 행위도 정치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거예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활동을 하면서 언니네 텃밭이라는 생산자 조합 같은 단체가 있는데, 거기서 계란을 파는 농부가 없어서 경희가 10여 년 전에 유정란을 생산하기 시작한 거든요. 그런 활동에서 시작한 상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닭을 윤리적으로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많이 보였어요. 예를 들어 고여있는 물을 주지 않고, 미생물 같은 경우에도 건강한 미생물, 채소를 써요.


주연 | 닭과 계란의 매치 컷을 보면서 약간 잔인한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건 얘기를 하려나 싶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는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혜련 | 콘텐츠 내용적인 차원에서 비거니즘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이 됐죠. 우리는 거의 선택권이 없을 정도로 공장식으로 생산된 고기와 계란 등을 소비하고 있어요. 공장식 음식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저도 고기를 정말 좋아해요. 경희의 닭 편집을 하면서 공장닭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기는 (전체 고기 생산량의) 99%가 될 정도로 보편화돼있고, 경희의 닭이 지내는, 우리가 상상 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예쁜 농장은 극히 소수에요. 그리고 (그렇게 생산했을 때) 실질적으로 전 세계 고기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양이 전혀 되지 않아요. 공장식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우리가 치킨과 계란을 먹을 수 있는 거거든요?


이게 일방적으로 소비자 잘못이고 우리 개인이 바꾸면 되는 문제라고 하기엔 어려운 일이잖아요. 물론 소비자가 문제에 대한 자각을 하는게 생산자를 변화시키는 데에 중요하지만. 고기는 너무나도 문화적인 문제에요. 우리가 가족들, 친구들이랑 술 한 잔 먹을 때 필수 요소가 되는 게 고기기 때문에 그걸 빼앗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에요.


주연 | 현재 경희와 같은 농민들을 위해서는 계란을 꼭 소비하지 않는 게 꼭 방안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사람들한테는 당장 생계의 수단이니까요.


혜련 | 그러니까 이게 복잡한 문제인 게, <경희의 닭>처럼 ‘윤리적으로 생산된 고기나 계란을 먹자’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기엔 계급의 문제도 커요. 윤리적으로 생산되는 농산품, 축산물들은 대부분 가격이 훨씬 세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못 먹어요.


그리고 주연 님이 말씀하신 그런 문제도 있어요. 생산자들과 공장에 대한 규제를 가한다면 그 사람들의 삶에도 장애물이 딱 생겨버리는 꼴이니까.


주연 | 또 재밌었던 장면은, 닭들이 ‘암컷들을 위해서 수컷들이 양보해준다’는 장면. 혜련님은 양보하시는 인간인가요?


혜련 | 그 순간은 모순이 참 많은 장면이에요. 경희의 남편이 말한 것처럼 닭이 양보를 잘 하는, 너그러운 동물이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 닭 중에 자기 새끼 먹는 애들도 있어요.


인간은 닭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아요. 그 중 하나는 서열 관계에요. 닭을 연구하는 K-lynn Smith 교수(호주 매커리 대학)에게 물어보니, '왕따를 만드는 서열구조'가 야생 본능이라고 단정짓고 의미를 부여할 만큼 우리는 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어요. ‘계획적이고 전략적이기 때문에 천적이 오면 던져 준다’와 같은 인간적 의도를 부여하는 건 아직 좀 이른 것 같아요.


주연 | 그냥 정기의 애정을 알 수 있었던 장면이네요.


혜련 | 맞아요. 정기가 얼마나 닭들을 애정 있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던. (웃음)



닭을 ‘생산’하는 세상에서

주연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영상이었어요. 또, 공장닭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어요. 공장닭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혜련 | 전세계 생산되는 닭의 대부분은 공장닭이에요.


경희네 같은 소규모 농장은 천 마리 미만씩 키워요. 공장닭은 스케일이 달라요.  몇만 마리, 몇십만 마리씩 키워요. 수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효율화) 과정이 닭들의 생활에도 반영돼있어요. 에이포지 크기의 닭장에서 평생 서서 살다가 거기서 죽어요.


공장닭 같은 경우엔 항생제 주사를 굉장히 많이 놔요. 이미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공장닭 건강이 안 좋으니까요. 그런데 항생제를 투여하면 투여할수록 건강이 안 좋아져서 또 항생제를 투여하고. 그렇게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경희의 닭들은 그렇지 않아요. 이미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먹고 자라니까 닭들 혈색도 좋고 농장에서 냄새도 안 나고 계란 퀄리티도 좋고요.


그리고, 책에서 읽은 건데 미국의 경우에는 전체 공장닭 중 한 10~15%는 죽을 걸 예상하고 키운대요. 왜냐면 환경이 열악한 전제 조건으로 두니까. 공장 시스템이 시작되기 전 60년대 이전 (소작농 중심 축산업)에는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어요. 경희 같은 소작농에게 '닭의 10%가 죽는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공장닭 시스템은 10%가 죽어도 돌아오는 이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주연 | 찾아보니 축사에 몰아놓고 키우는 ‘집약적 사육방식’, 즉 경희의 닭 방식조차 최선의 방식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맞나요?


혜련 | 그렇죠. 공간만 있으면 더 넓으면 넓을수록 좋죠. 근데 이게 또 가격과 직결돼있는 문제에요. 공장닭은 그만큼 싸요. 경희의 닭은 소비자가 비싸게 낼 수 있으니까 그런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예요.


주연 | 닭들을 키우는 최선의 환경이란 뭘까요?


혜련 |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천적에서 보호해주는 우리는 있되, 바깥에서 최대한 뛰어놀고 햇빛을 받으며 통풍 잘 되는 곳에서 자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닭은 뛰어놀기도 좋아하고 흙에서 이것저것 파서 지렁이 잡아먹는 것도 좋아하고, 굉장히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에요. 안 그런 동물이 어디 있겠어요? 돼지나 소나 칠면조나 ㅡ 우리가 공장에 가두는 모든 동물이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그걸 필요로 하고. 하지만 인간이 그 필요를 앗아가는 이유는, 공장에 있는 동물들은 생명이기 전에 상품이기 때문이에요.


주연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혜련 |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 영상을 보고 닭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이 영상이 닭에 대한 복잡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은 아니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맥락이 전달되고, 닭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영상 속 시간은 그대로 멈추었지만, 우리가 말하려는 메세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썸네일로 <경희의 닭>을 단장하고, 감독 혜련의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브이의 영상 <경희의 닭>과, 따끈따끈한 신작 <사라지는 동네에서 할머니와 걷다> 역시 많이 사랑해주세요.



글, 인터뷰 최주연


인터브이의 영상 <경희의 닭>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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