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긴 건 좋은 거다. 잘 가라 사우디 친구들. 침대축구와 여러 비매너 논란으로 사우디를 욕하신 한국분들이 많던데, 그러지 마라. 내 마음속에 사우디는 영원히 고마운 나라다.
때는 1991년, 처음 미국에 갔을 때다. 지금은 사라진 노스웨스트(Northwest) 항공을 타고 미네소타의 Hamline 대학에 가, 한 달간 영어를 배웠다. 브라질, 스위스, 멕시코, 자유중국(그땐 그랬다),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지도에서만 보던 여러 국가 사람을 한번에 만났다(얼떨떨했다). 당시만 해도 사우스코리아는 안 먹히는 나라였다. 아무리 88올림픽 드립을 쳐도 무표정한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일본 애들 무리에는 꼭 프랑스며 스위스며 멕시코며 이런 나라 애들이 다가가, 신난 표정을 하고 망가와 아니메 얘기를 하더라. 딱 요즘 우리 나라 엠쥐들이 외국에 갔을 때 경험할 법한 일들이다.(부럽다 엠쥐들아)
그때 한국을 존중한 유일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아시아 축구의 최강 자리를 한국과 사우디가 나눠 가졌던 딱 그 시절이었다. 짧은 곱슬머리에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모하메드와 알리는 나만 보면 꽤 반갑다는 듯 헤이 코레안, 렛츠 플레이 사커 오케이? 하며 말을 걸었다. 그럼 나도 씩 웃음을 날렸더랬다.(축구 덕분에 한국이 인정받는구나, 아 군대스리가여)
전체 200명 가까운 학생 중 일본 애들이 30여명으로 가장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한국인 남학생 그룹은 일본 여학생들과 좀 친한 편이었는데, 처음엔 서로를 first name으로 부르곤 했다. 하지만, 예절을 중시하는 조선의 선비였던.. 나는 왠지 그 상황이 불편했다. 결국, 존칭어 사용법을 이 여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고. 한참 연습한 후에 이들은 드디어 "오빠"란 단어를 완벽하게 발음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수업에 늦지 않게 가려고 뛰어가는데 복도 건너편에 있는 요코와 준코가 날 반기며 "오빠~"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이 친구들은 그 후에도 계속 내게만 "오빠"라고 불렀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우디에서 온 모하메드와 알리가 오빠가 내 별칭인 줄 안 듯(하긴 외국인들은 정식 이름 말고도 별칭이 많으니),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꽤 징그러운 발음이었...) 아무튼 “오빠” 호칭의 세계화는 그때가 시초가 아니었나 짚어본다...
한류가 거센 요즘과 달리, 30여년 전 그나마 한국을 인정해 준 외국 친구들은 사우디 사람들이었다. 한국-사우디 경기를 보며 관중석에 혹시 그 시절 모하메드가 있지나 않을까 찾아봤던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