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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두보 Jan 25. 2023

케이팝은 흑인음악인가?

번역서를 내며


지난 해 번역서를 냈습니다.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출간을 결정한 출판사 대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책 제목에 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염치를 무릅쓰고 책 소개를 하기로 합니다. 책의 원제는 <Soul in Seoul>입니다. 저자 Crystal S. Anderson 은 흑인음악 소울과 한국의 수도 서울(Seoul)의 음가가 같다는 데 착안해, “케이팝은 흑인음악의 한 갈래다”라는 주장을 펼치기에 적합한 제목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번역서 제목을 <쏘울 인 서울>로 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옮긴이(심두보, Wonjung Min, 정수경)와 눌민출판사 Sung Won Chung 대표가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 <케이팝이 흑인음악이라고?> <케이팝은 흑인음악인가?>등 설의법(設疑法)을 활용한 몇 가지 가제목이 등장했고, 결국 종지형(終止形) 제목이 독자들에게 더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라는 Sung Won Chung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여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로 결정했습니다.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돌 음악만을, 혹은 제작사에 의해 기획된 음악만을 케이팝으로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과 달리, 케이팝을 여러 장르를 포괄하는 ‘우산’으로 정의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한국 음악이 케이팝인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에 등장했으며, 세계화의 기치 아래 다양한 장르와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그 과정에서 혼종성이라는 특질을 갖추게 된 한국 음악의 큰 흐름을 케이팝으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실제로 케이팝은 수많은 외국 음악문화와 장르의 영향을 받았지요.(사실, 타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립한 민족음악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그중 가장 큰 영향은 미국 흑인음악으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물론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라고 단정 짓는 태도는 논쟁적이지만, 케이팝이 흑인음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점, 아시아 대중음악 중 가장 ‘흑인음악스럽다’는 점은 신현준선생 등 여러 비평가에 의해 인정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케이팝이 오늘날처럼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 데에는 음악 자체의 혼종성에 더해, 각국의 팬들이 온라인에서 음악언론(music press)으로서 기능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케이팝에 관한 보도에 주의를 기울이셨던 독자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케이팝이 국제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케이팝이 자국 문화를 전유한다고 비판하는 해외 팬들도 많아졌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미국 흑인이기도 한 저자에 따르면 음악 리뷰에 참여하는 진지한 팬일수록 케이팝의 혼종성이 문화 전유 혹은 도용의 결과라기보다 미국 흑인음악을 진정성 있게 참조한 때문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즉, 찐팬들이 흑인음악에 대한 케이팝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인증한다는 것이죠.


결국 저자는 케이팝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글로벌화한 흑인음악 혹은 알앤비(R&B) 장르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고 주장합니다(실제로 Rolling Stones의 키스 리차즈와 The Who 멤버들은 본인들이 알앤비 음악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빅마마, 박효신, 자이언티, 혁오밴드 등 우리나라 여러 뮤지션의 음악성과 퍼포먼스가 외국의 팬/음악언론에 의해 어떻게 평가되고 분석되었는지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케이팝과 흑인음악 간 친연성을 밝히기 위해 아레사 프랭클린,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닥터 드레 등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과 연행(퍼포먼스)에 관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 즉, 이 책은 흑인음악에 관한 친절한 개론서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 비밥, 덥스텝 등 여러 음악용어와 아프리카 밤바타와 줄루네이션 등 힙합의 역사가 언급되고, 저희 옮긴이들이 각주를 통해 이에 대한 보충설명을 추가했습니다.


또 하나 궁금증이 생깁니다. 번역서의 부제에 왜 현진영이 강조되는가? 많은 이들이 케이팝의 첫주자로 서태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현진영에도 주목합니다. 현진영은 어린시절부터 동네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흑인음악의 그루브를 익혔고, 80년대 후반에 뉴잭스윙(소위 토끼춤) 등을 실연하며 이태원 춤꾼세계에서 강자로 군림했지요. 90년대 한국음악이 상징하는 ‘신체의 해방과 자유’를 이태원 춤꾼들이 열어젖혔다고 볼 때, 그 맨 앞줄에 현진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 케이팝을 떠올릴 때 첫손에 꼽히는 기획사인 SM의 1호 가수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번역은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전에 번역했던 두 권에 비해 대략 일곱배 정도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역작업을 이끌었던 힘은 지구 어느 곳에선 케이팝(한국인들의 ‘국뽕’을 드높이는)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한국노래가 K-pop으로 기호화되어 세계와 연결되고, 그 현상 덕에 세계가 다시 한국으로 향해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습니다. 번역을 흔히 반역이라고들 하지요. 번역의 정확성뿐 아니라 가독성 측면에서 여러 차례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오역과 오타, 어색한 표현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저희 옮긴이들 몫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대사 “Here’s looking at you, kid”가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를”이라고 더 멋지게 번역되기도 했고, 맨부커 국제문학상(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이 번역의 가치를 인정해 원작자와 번역자를 함께 시상한다지만, 저희 옮긴이들은 그저 원작의 소개자에 불과한 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번역서가 한국사회에 대안적 해석과 담론을 확대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한다면 그것으로 고맙고 감사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감수를 맡아주신 Ildong Joe, 이규탁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는 책에 실린 <한국어판 서문>과 <옮긴이의 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국어판 서문>


대부분의 해외 팬들이 케이팝을 처음 접했을 때를 기억할 텐데, 저에게는 사실 그런 기억이 두 번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동료가 “The Korean Usher”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비의 “레이니즘(Rainism)” 유튜브 동영상 링크가 들어있었지요. 비의 춤과 노래를 보며, 관능적인 목소리와 춤으로 유명한 미 흑인 R&B 가수 레이먼드 어셔의 스타일을 모방했다고 느꼈습니다. 어셔의 노래 몇 곡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팬은 아니었기에, 비에 대해 더 파고들지는 않았지요. 이후에 비가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에 출연해 댄스 배틀(dance-off)를 하고,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 그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셜미디어, 유튜브, 트위터, 스포티파이가 인기를 끌기 전이어서 비와 케이팝 음악을 소개하는 미디어 생태계는 없었습니다.


케이팝을 만난 두 번째 기억은 전 세계 팬들을 한국 드라마 세계로 이끈 “꽃보다 남자”를 시청한 때였습니다. 친구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거실 화면에 한국 드라마가 나오자 그는 “아, 저 사람 밴드를 알아요.”라고 했습니다. 김현중이었습니다. “꽃보다 남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보이밴드 SS501의 멤버였지요. 이번에는 조금 더 관심이 생겨 구글 검색을 해봤습니다. 처음 본 영상은 “UR Man”으로, 밴드 멤버 3명이 발표한 곡이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보자 MTV의 전성기가 떠오르며, 제 안에 자리하던 80년대 소녀가 노래에 반응했습니다. 뛰어난 제작수준, 세련된 스타일, 정교한 조명과 소품 배치, 그리고 다양한 세팅을 보니 제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뮤직비디오가 기억났습니다. 게다가 SS501 멤버들의 댄스는 엔싱크(N Sync)나 뉴 에디션(New Edition)과 같은 1990년대 보이밴드가 아닌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나 글래디스 나이트 앤드 더 핍스(Gladys Knight & the Pips)와 같은 1960년대 흑인 그룹들의 춤을 연상시켰습니다. 기억하기 쉬운 음악과 퍼포먼스의 결합을 보며 저는 케이팝의 바다에 빠졌고, 결국 케이팝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두 번의 만남은 이 책의 접근 방식에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흑인 대중문화가 케이팝에 미친 영향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케이팝이 지닌 글로벌한 매력의 비결은 전 세계 리스너들이 언어를 초월해 케이팝과 맺는 정서적 관계입니다. 케이팝이 얼마나 많은 조회 수와 스트리밍 수를 기록했고, 얼마나 많은 ‘좋아요’와 상을 받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팝이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관객들에게 어필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동시에 흑인음악 요소가 케이팝에 녹아들었다는 사실은 한국 가수들이 언어를 초월해 흑인음악 문화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한국 대중음악의 한 장르가 흑인 문화 상품의 영향력과 융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언론은 “케이팝의 그늘”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고 팬 중 일부는 부정적인 문화 전유와 도용의 사례들을 자꾸 들춰내지만, 필자의 케이팝 연구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진정성에 근거를 둔 복잡한 문화적 역동성을 밝힙니다. 케이팝이 흑인 대중음악을 인용하는 방식은 일관됩니다. 그 인용은 주류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흑인음악이나 퍼포먼스의 가치를 희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갖습니다. 또한 최근의 흑인음악 스타일뿐만 아니라 옛 장르와도 관여한다는 점에서 케이팝의 의도성과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케이팝 아티스트와 프로듀서가 흑인 창작인력과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흑인 음악과 퍼포먼스의 기반인 문화 간 협업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케이팝은 한국 문화를 가시화함으로써 그 가치를 대외적으로 드높입니다. 글로벌 팬들은 한국 문화가 케이팝이 지닌 음악적 매력의 주요 요소임을 줄곧 인정해 왔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문화적 역학관계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는 또한 흑인 음악가들을 역사에서 지워버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 록 음악과 달리, 흑인음악 문화의 기여를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케이팝 역사를 포괄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많은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러브콜"입니다. 한국 아티스트들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초대하듯,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이 케이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흑인음악의 감성적 의미를 따르면서도 한국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를 전 세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케이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케이팝이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 한국 독자들은 그 창조적 가치를 깨달을 때입니다. 어쨌든, 인기순위 1위 곡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처음 케이팝을 접했을 때를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이 분명 더 많을 테니까요.


- 크리스털 앤더슨


                                                   <옮긴이의 말>


2020년 2월 10일은 한류 팬에게 잊지 못할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그 몇 년 전부터 보이밴드 BTS가 ‘21세기 비틀스’로 불리며, 어느 케이팝 아이돌도 가보지 못한 경지를 개척하고 있던 터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이다. 결국,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며 한국 대중문화가 변방에서 세계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알렸다. 실제로 BTS는 백인 남성이 주도해 온 ‘강한’ 남성성이 아닌, 페미니즘과 연대하는 ‘부드러운’ 남성성을 표방했으며 인종적 다양성 등 보편적 가치를 옹호했다. <기생충>은 한국의 빈부격차 현실을 극적으로 묘사했지만, 세계는 이 영화적 재현을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각국 미디어는 연일 한국 대중문화 관련 기사를 쏟아냈고, 해외 학계는 한류 관련 세미나와 학술대회를 대대적으로 기획했다. 필자만 해도 그즈음 이탈리아의 학자로부터 5월 한 달간 이탈리아 내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한류 강연시리즈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는 BTS와 <기생충>이 만들어낸 해외 언론과 학계의 한류 열기를 급속히 식혔다. 어둡고 외로운 역병이 가시지 않았고, 외출이 어렵게 된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문화적 갈증을 채웠다. 흥미롭게도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로 한국드라마가 부상했다. 한드 속 다양한 캐릭터가 전달하는 서사와 위로의 메시지에 세계인들이 빠져들었다.


바로 이즈음,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본인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이 곧 나오는데,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다. 원고 파일을 읽으며 앤더슨 교수의 분석력에 감탄했다. 지난 30여 년간 발표된 케이팝의 주요 곡을 음악, 퍼포먼스, 가사의 측면에서 꼼꼼히 검토했으며, 이를 미 흑인 대중음악의 역사와 연결 지었다. 간혹 그녀의 ‘흑인 중심적’ 해석과 시각이 불편했으나, 조금씩 설복되는 ‘나’라는 독자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 지난 수년간 해외 팬들은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에서 자국의 전통문화요소가 정당하지 않게 차용되고 침탈되고 있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국 흑인 커뮤니티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래 거의 모든 케이팝 밴드가 흑인음악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혼종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수준에서 얼버무리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더욱이 미국 내 한국드라마와 케이팝 팬덤에서 차지하는 흑인 팬의 비중이 다른 인종과 대비해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의 해외 한류 보도에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 대해 반발했다. 이러할 때 발간되는 앤더슨 교수의 흑인음악과 케이팝 간 친연성에 관한 분석서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필자가 앤더슨 교수를 처음 만난 때는 201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되었던 대중문화학회(PCA: Popular Culture Association Conference)에서였다. 그녀는 필자가 속한 세션의 청중석에 앉은 유일한 흑인이었다. 필자가 그간 참석한 세계 각지의 한류 관련 세미나 장소에서 흑인을 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필자의 발표 내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앤더슨 교수는 세션이 끝나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그녀가 한국드라마의 ‘어마어마한’ 팬임을 알아차렸다. 이미 그때 그녀는 케이팝에 이바지한 흑인음악에 대한 저술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이에 대한 연구계획을 얘기했다. 그 이후, 앤더슨 교수는 학술지 The Journal of Fandom Studies (2015년)의 한류 특집호 공동편집인을 필자와 함께 맡았고, 필자가 편집인이었던 학술지 ACR(Asian Communication Research, 12:2. 2015년)에 북리뷰도 게재했다. 앤더슨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되었을 때는 필자가 그녀를 위해 추천서를 쓰는 등, 연구 동료로서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 책은 대중음악의 진정성, 그리고 세계화와 초국적 교류에 대해 성찰케 한다. 통속성과 저급함이라는 오랜 낙인을 떨쳐내고 음악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한 한국음악의 오랜 노력은 록과 발라드, 힙합과 댄스음악, 재즈와 트로트가 공존하고 융합하던 1990년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개화했다. 당시 음악인들이 영미권을 포함한 해외 뮤지션과의 동시대적 연대감 혹은 ‘코즈모폴리탄’ 정서의 공유를 음악미학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점은 의미 있게 되짚어볼 만하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장르인 케이팝이 1990년대 젊은 음악인들의 실험정신과 기업가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케이팝에 흑인음악의 지분이 상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이란 또한 독자의 것이기도 하다. 미국 흑인문화와 케이팝 모두에 정통한 한 아카팬(AcaFan, 학자팬)의 책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이 그간 당연시했던 것을 새롭게 생각해본다면 좋겠다. 해석은 열려있다.


칠레에서 오랜 기간 라틴문학과 한류 연구를 해온 민원정 교수, 방송작가를 거쳐 언론학자 겸 언론운동가로 활동하는 정수경 교수와의 공동 번역작업은 내내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근 1년 반 동안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또한, 큰 이익이 없을 줄 알면서도 번역서를 출간하기로 결정했으며 생각보다 오래 걸린 번역작업에 불평 없이 기다려주었던 도서출판 눌민 정성원 대표와 번역물이 출간에 적합한 모양새가 되도록 스타일, 문장, 용어 교정에 세심한 배려와 노고를 아끼지 않은 문유진 선생을 포함한 편집진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책이 번역돼 출간되기까지 후원해준 방송문화진흥회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은 가족과 친지 그리고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두서없는 글을 맺는다.


2022년 5월,


옮긴이를 대표해 심두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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