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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20. 2022

미륵산 자락 구룡마을

미륵산 자락 구룡마을


 단단히 물린 빗장을 풀어 동틀 녘 별을 맞이한다. 몸을 바루고 숨을 골라 새벽 기도 올리는 목탁을 울리는데, 멀리서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잔디밭 가로질러 아기 백구 다섯 마리가 달음 쳐온다. 


심고心告 올리는 내내 다리를 에워싸 부비고 핥고, 운동화 끈을 당겨 풀어내기도 한다. 기도를 마치고야 강아지들을 몰아 우리에 넣어준다. 바짓가랑이에 다닥다닥 흙 발자욱이 밉지 않다. 


 좌선 마치는 대로 청소기로 밤새 앉은 먼지를 모아들이면, 엉덩이를 높이 들어 걸레로 바닥을 훔친다. 어른의 샤워부스에 들어서니 바닥이 물 한 방울 없이 정갈해 손댈 일이 별로 없다. 손수 빨아 반듯하게 편 양말이 침실 창가에 널려있다. 


이제 밖에 나가 비질하고 도량 여기저기 흩어있는 개똥을 줍는다. 공양간이 분주해질 쯤, 장작더미에서 잘 마른 땔나무 몇 장을 골라 난로에 불을 지펴, 고구마며 얌yam을 굽는다. 그제야 어른께서 시자侍者와 더불어 당도하셔, 다 함께 공양을 든다.  


 수저를 내리고 간단하게 양치하시고는 이내 정원 잡초를 골라내신다. 지근거리에서 잡풀을 추려 뽑다, 때가되어 탕약을 데워 올린다. 이어 사다리를 가져 오라시더니 전지가위와 톱을 차고 나무에 올라,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잔가지를 솎아 내신다. 물러서 보니 나무 꼴이 근사하게 살아났다. 


가지를 치되 전체를 헤아리는 안목을 잃지 않으신다. 부지런히 긁개로 부스러기를 모아 수레로 날라 멀리 쌓는다. 어른 뵈러 온 손님 덕에 쉴 틈이 나, 평상에 누워 눈을 붙이니, 고양이가 소리 없이 배 위에 올라 몸을 기대 갸르릉댄다. 


 도량 용은정사龍隱精舍 담 너머엔 메타세콰이어 묘목장이 있다. 논이었던 자리에 굴삭기로 우물 정井자 수로를 판 뒤, 배수가 잘 되도록 대나무 가지 등을 얽기 설기 놓고 흙을 덮었다. 거기다 거름 뿌리고 골을 타니 얼추 밭 모양이 났다. 


고르게 편 두둑에 묘목을 심고 분수호스를 늘어뜨렸다. 비닐을 치지 않아, 때마다 호미며 예초기를 들고 뙤약볕 아래 김을 맸다. 일흔을 넘긴 어른께서 이 모든 일을 꼼꼼히 챙기시고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화덕에 건 가마솥에 딸기를 졸여 잼jam을 만들고, 콩을 삶아 메주를 쒀서 새끼줄을 꼬아 묶어 달아매며, 공양 들어오는 단감은 일일이 깎아 정자에 발 내리듯 널어 곶감을 만들었다. 이웃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면 얻어다 땔감으로 다듬어 쟁겼다. 


어른께서 산책을 나서실 때는 늘 자루 하나씩을 챙겨서 마을 쓰레기를 치우신다. 이래저래 해가 져서야 바깥 일이 끝났다. 그러고도 어른이 주무실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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