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Dec 22. 2022

숨겨진 발톱

숨겨진 발톱


 찬 거실을 지나 문을 열자 훅 밀려오는 더운 기운이 얼굴을 친다. 급한 온도변화에 적응 못한 몸은 이내 콧물을 흘린다. 늦은 저녁 안마시간. 반듯이 누운 어른 곁에 무릎 꿇고 앉아 뭉친 근육과 관절을 풀어드린다. 둘 뿐이라, 평소 가진 의문을 꺼내 여쭙기 좋은 때다. 근현대사를 되짚어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리던 대목이 있었다.     

 “국민들의 너나 없는 헌신과 시민항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일궈온 한국이지만, 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미군정과 이승만을 등에 업은 친일파가 냉전의 흐름을 타고 반공을 기치로 살아남아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며,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모습이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애초부터 친일잔재를 뿌리 채 뽑아버렸어야지 않았을까요?” 


 “그럼 모조리 죽여야 했나?” 


 꾸짖음 섞여 돌아오는 답변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마침 남북관련 뉴스가 나오고 어른께서 리모컨으로 TV볼륨을 높이시면서 그 날 문답은 흐지부지 끝났다. 그러나 마음의 불길마저 사그라진 건 아니었다. 왜 그런 말을 내 가슴에 꽂으셨을까...   

    

 1936년, 식민지 조선인으로 태어나, 십대 후반에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소년은 출가자가 되어,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 하루도 어김없이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한다. 


어른께서 올리는 간절하고 정성스런 기도 안에, 민족반역자도 이념을 들어 살상을 서슴지 않았던 남과 북의 형제들도, 그 죄를 미워할 지언 정 없애버려야 할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깨우쳐야 할 중생이자 더불어 살아가야 할 차별 없는 한 동포다.  


 착한 중생에 기뻐하고 그릇된 길을 가는 중생에 아파하며, 포기 없는 사랑으로 품어 안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일진데, 내 마음 속 어리석음은 무자비한 살기殺氣를 미처 떨치지 못했다. 나에게 친일부역자는 죽어 마땅한 존재였고, 이끌어 갈 중생이 아니었다. 


 당신의 일침에는, 수행자의 꼴을 하고서도 여전히 살기를 품은 ‘나’에 대한 안타까움과, 제자가 스스로 깨쳐 악한 마음을 부셔내길 바라는 따스함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검게 자라 숨은 발톱이 부끄럽다.


...마음에 미워서 해할 마음이 있으면 자비가 아니니라. - 원불교 정산종사법어 8:34      

매거진의 이전글 봄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