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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25. 2022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딩동’ 휘경국민학교 같은 반 E에게서 10년 만에 문자가 왔다. 만나고 싶으니 먼저 전화하란다. 동급생으로 한 해를 다녔으면서도 말 섞지 않은 사이였기에, 뜻밖의 연락에 놀랐다.  


 농성텐트에서 몸을 빼, 성균관 명륜당 앞 400년 넘은 은행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앉았다. 시골에서 전학 온 독특한 아이였던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E는 궁금해 했다. 


수줍음 많은 내 눈에 비친 E는 문학가를 꿈꾸는 총명하고 담박한 소녀였다. 그런데 전공이 법학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성적이 너무 좋아서 서울대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탈하고 밝은 E와의 담소는 금세 사적인 영역을 넘나들었다. 캠퍼스커플이자 교회에 같이 다녔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크게 병을 앓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달라진 E를 그가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가로수 길을 걸어, 진료가 예약된 혜화동 서울대병원까지 바래다줬다. 이후 E를 다시 본 건, 막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일수를 데리고 신림동 고시촌에서였다. 수년 뒤, 변호사가 된 E가 신문에 났다.     

 E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간 인연도 있지만, 정情 준만큼 상처 입기 쉬운 게 인간관계다. 한 눈에 사랑을 직감했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몰입을 기억한다. 


북적거리는 거리에서도 그 아이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태지 콘서트를 꽉 채운 인파 속에서도 그 사람만 빛났다. 대화에 취해 모기에 손등 뜯기는 줄 모른 채, 수화기를 들고 달빛아래 공중전화 박스에서 여러 밤을 지새웠다. 이렇게 눈 감고 뜨는 매 순간 하나로 서로에게 일상日常이 되어갔다. 


 “이제 끝내자.” 


 나란 존재가 육군 장성이던 아버지에게 행여 해害가 될까봐서란다. 말이 안 된다. 난 그저 선배들의 작은 심부름꾼일 뿐이었다. 그녀는 등 돌렸다. 그러나 나는 놓지 못했다. 나는 아직 뜨거운데 그녀는 차갑게 식었다.


 낙차 큰 결별에 발광發狂했다. 사무친 마음이 뽑혀나간 자리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화병火病에 내가 타올랐다. 뭘 잘못했을까 자책했다. 내쳐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미련이 남아, 재회할 수 없다는 슬픔에 망가져갔다.


 계집애 하나 때문에 그러냐는 말이 조롱으로만 들렸다. 그 후 한 차례 더, 사랑과 증오가 번갈아 삶을 스쳐갔다. 그러고도 여전히 옛 이별은 잔상으로 남아 아팠다.    

  

 차茶 향 은은한 규산 정현인 교무님 연구실에 앉아, 잔을 들어 한 모금 따스한 온기를 머금었다. 규산님께서 내 뒤에 젊은 여자 영혼이 보인다고 하셨다. 감히 곁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몇 걸음 떨어져 있다고 했다. 


다른 분의 같은 말씀도 있었고 또 호주에 살던 그녀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보이지 들리지 않더라도 의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내게 냉정했던 그네였다. 그런데 왜...


 만덕산에서 천도재薦度齋 모시던 마지막 날. 영가靈駕를 깨우치는 경종이 울리며, 하얀 티슈 한 장이 새처럼 무릎에 앉았다. 눈물 닦으라는 농타원 법사님의 배려였다.      


 네가 가는 길. 이번 생生, 둘 관계에 남은 내 마지막 역할이 이것이라면 마땅히 그러하리라. 미래 생에 너와 나, 현絃이 되어 활이 되어, 온 누리에 청아淸雅한 선율을 빚는다. 

 그대 잘 가라. (2012년 봄)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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