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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26. 2022

내 마음에 공功들이자

내 마음에 공들이자


 붉은 흙이 넓디 펼쳐진 깡촌 소계마을 농투성이 할아버지는, 고추 따고 담뱃잎 거둔 돈으로 작은아버지 대학 가르치시고 서울 집장만에까지 손을 넣어 주셨다. 그보다 조금 전, 소를 사고팔다 인연이 된 영해 외할아버지와 사돈지간이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찬 강원도 땅에서 사글세로 신혼을 시작해야했다. 


 어머니에겐 잔디밭에 통유리가 딸린 당신 집을 갖고자는 꿈이 있었기에, 두부 한 모에 콩나물 한줌까지도 들었다 놨다하며, 두 아들 키우면서 알뜰한 살림을 꾸려내셨다. 아버지의 이직이 잦았지만, 어머니는 적금 붓기를 그치지 않았다. 


형편에 맞게 자식들을 가르쳤고, 어깨 팔목이 아프다면서도 학교 급식소에서 허드렛일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미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으나, 두 다리 뻗으면 꽉 차는 방에 누운 형제를 보며 더 큰 집을 원하셨다. 


 취업준비하며 못난 영어성적에 골머리를 앓다가, 어머니에게 1년 정도의 어학연수를 도와달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길게 보고 투자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으나, 기대하고 여쭌 건 아니었다. 


돈 없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벌어 해외에 다녀오거나, 어학연수 없이도 잘 사는 친구아들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으실 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지 어머니가 큰이모와 발품을 팔며 집을 보러 다니시더니, 밥상머리에서 집을 넓혀 옮길 때가 되었음을 알리셨다. 서울 관악산 중턱, 잔디밭에 통유리, 게다가 차고까지 갖춘 3층 집이라며 뿌듯해하셨다. 그제서야 아버지와 나 아우, 이렇게 삼부자는 돈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아버지는 일 벌리지 말고 이참에 차나 바꾸자고 조르셨고, 동생은 이사 가면 지하철에서 멀어진다고 입이 나왔다. 가뜩이나 토익성적이 안 나와 애타던 난, 어머니가 나 아닌 부동산을 더 믿고 투자했다는 유치한 배신감에 부글부글 끓었다. 


어머니는 은행 대출과 전월세 들이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주택 매입과 리모델링을 꿋꿋이 밀어붙이셨다. 지붕 페인트칠 값만 반년 치 영어연수비만큼 들었다. 


 새 집에 들어갈 즈음, 관악산 정상에서 오줌을 크게 눈 꿈을 꿨다며 좋아라하셨지만, 어머니의 바램과 어긋나게 이후 십여 년, 집안에 우환이 많았다. 위층에 큰아들 부부를 두고 살고자는 소망도 나의 출가와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 끝내 집은 팔아야 했다. 이제 나이 들어 언덕바지에 있는 집을 오르내리기엔 무릎이 너무 아프셨기 때문이다.         


 나서부터 가난했던 부모세대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렇기에 젊음을 온통 내 집 마련에 쏟아 부으며 평수 늘리는 재미로 사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우가 결혼해서 분가하고, 나도 이렇게 미국까지 와버린 데다가, 자주 아픈 아버지는 짜증이 늘고, 당신도 늙어가며 몸 구석구석 성치 않다보니, 덩그란 큰 집을 가지고도 마음이 외롭고 슬퍼, 지난해 집에 들렀을 땐, 나를 붙잡고 글썽이며 어찌해야 하는지 물으셨다. 


몇 해 전만 해도 까까머리 수행자가 된 아들이 못마땅해, 보자마자 호통 치곤하던 어머니가 이젠 많이 약해지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왔다.   


 화엄경 참회게懺悔偈를 부지런히 외우고, 원불교전서를 정성으로 베껴 쓰며, 더 늙고 병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말씀을 전한다.      


 “사람이 평생에 비록 많은 전곡을 벌어 놓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나니,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어찌 영원한 내 것이라 하리요. 영원히 나의 소유를 만들기로 하면, 생전에 어느 방면으로든지 남을 위하여 노력과 보시를 많이 하되 상相에 주함이 없는 보시로써 무루無漏의 복덕을 쌓아야 할 것이요, 참으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니, 서원과 마음공부에 끊임없는 공을 쌓아야 한없는 세상에 혜복의 주인공이 되나니라.” 불초자不肖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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