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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29. 2022

한 마음 잘 챙기소

한 마음 잘 챙기소


 정우 형은 88학번이다. 오래 전, 학생운동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던 형이 숨어들어간 곳은 사찰이었다. 머리 깎고 잠시 승려 생활하던 그 시절이 정우 형에겐 묻어둔 오래된 미래일지 모른다. 


대학원에서 유학儒學을 전공하기도 한 형은 수행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서울의 한 주점에서 옛 선후배들이 만나던 날, 혼자 사이다 잔을 앞에 둔 내게, 발그레 취기가 오른 H형이 다가왔다.


  “종훈아, 내가 말이지, 요새 청정도론淸淨道論을 읽고 있는데 말이야, 너랑 얘기를 하고 싶다... blah, blah, blah...아! 맞다. 이런 얘기는 술 먹고 하는 게 아니지? 미안해.” 머쓱해하며 이내 자리로 돌아갔다. 


수행이 비단 출가자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그날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아쉽다 못해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수행의 처음과 끝을 꿰는 고리는 바로 ‘마음 챙김’ 즉, 유념공부有念工夫다.     


 앉아서 하는 명상을 통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 끌리지 않고, 멈춰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왔다면, 그 요령으로 서서 하는 명상도 아울러 나가게 되는데, ‘챙기는 마음’은 앉고 서는 매 순간을 공부 길로 이어준다. ‘마음 챙김’은 ‘할 일’과 ‘말 일’을 정해 잊어버리지 않고 챙기면 그 뿐이라, 쉬워서 아무라도 할 수 있으니 그저 하면 된다. 


 뉴욕교당 두 학생에게 ‘할 일to do’과 ‘말 일not to do’을 잡아보자 했다. 한 학생은 ‘하자는 조목’으로 ‘일찍 일어나자’, 다른 학생은 ‘말자는 조목’으로 ‘늦게 일어나지 말자’를 뽑았다. 


이 두 사람이, 단지 행위를 챙기는데 초점을 두고, 각자 고른 ‘할 것’과 ‘말 것’을 부지런히 해나간다면, 몸을 다스려 나쁜 습관 하나는 고치게 된다. 하지만 ‘챙기는 공부’의 깊은 경지로 나아가려면, 보이는 말이나 행동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 까지 챙겨 다스려야 한다.   


 건강한 사람이 제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침잠의 달콤함에 끌렸거나, 자기의 처지가 차마 눈뜨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전자는 좋아하는 것에 끌린 것이고, 후자는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데 끌려가고 싫어하는 걸 밀쳐내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학생이라면 지각해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을 테고, 직장인이라면 신용을 잃고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수행자라면 일과를 지키지 못해 자책에 빠져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것에 매이고 싫어하는 데서 도망간 결과는 고통이다.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아침잠의 달콤함에 끌릴 때,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나’를 알아차리고 털어버리는 것이다. 새날을 맞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싫어해서 도망가는 ‘나’를 알아차리고 털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고통이 ‘내’가 지은 그대로라는 걸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탐욕貪欲이라 하고,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는 마음을 진에瞋恚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탐욕과 진에에 얽혀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받는 고통이 ‘내’가 뿌린 대로 거둔 결과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우치愚痴라고 한다. 탐진치貪瞋痴 이 세 가지 마음을 삼독三毒이라 한다. 독이 몸에 퍼져갈수록 고통이 깊어 죽음에 이르듯, 탐진치에 물든 ‘나’는 아프고 힘들다. 


 마음 챙기는 공부는, 좋아하는 데 끌리는 마음을 알아차려 탐욕을 온전한 마음으로 돌리고, 싫어하는 걸 밀쳐내는 마음을 알아차려 진에를 온전한 마음으로 돌리고, 이 알아차리는 마음을 앉으나 서나 유지하며 인과因果를 받아들여 우치를 온전한 마음으로 돌리는 공부다.


 마음 챙기는 공부로 삼독심을 돌려 온전한 마음을 드러내야 비로소 스스로를 옥죄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 마음 챙기는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여, 마음에 집착을 떼고 생각과 언행이 정의롭고 은혜 가득할 때, 이를 놓고 ‘마음 놓는 공부’가 되었구나, 무념공부無念工夫가 익었다고 이른다.      


 태어난 모든 이가 어김없이 맞이하게 되는 죽음.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극단 앞에 놓인 나약한 한 사람에게, 수승한 수행자는 어떠한 가르침을 베풀까?   만덕산의 승산 종사님께서는 임종에 이른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한 마음 잘 챙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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