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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30. 2022

먹어봐야 맛을 알지

먹어봐야 맛을 알지


 원불교 뉴욕교당 청년 재원이 묻고 백 교무가 답하다. 


 재원: 교무님, 마음 챙기는 공부를 하며, 스마트폰에 ‘유념공부 앱(WonDiary)’을 설치해서 챙겼는지 못 챙겼는지 기록하고 있어요. 저의 ‘말자는 조목’은 ‘다른 사람을 재단하지 말자(Don't Judge Others involving My Ego)’예요. 


그저께 어머니랑 통화하다가 아버지 얘기가 나왔는데,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막 흥분해서 비난했거든요. 다행스러운 건, 아버지 잘못을 꼬치꼬치 따져대는 와중에도 ‘아! 유념 공부!’ 하면서 계속 알아차리기는 했다는 거죠. 이렇게 알아차린 상태에서, ‘하지 말기로 한 걸’ 저지르고 만 경우는, 마음 챙긴 걸로 체크하나요? 아니면 못 챙긴 건가요?


 백 교무: 마음을 챙기지 못한 거예요. 비록 ‘하지 말기로 한 조목’을 알았지만, 깊은 습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해버린 경우는, 챙기지 못했다고 기록하면 돼요.     


 재원: 반대 아니에요? 원불교 ‘정전正典’에 보면 “처음에는 일이 잘 되었든지 못 되었든지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나...”고 나왔던데요? 이렇게,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을 기준으로 번수를 계산하라고 했으니까, 제가 실수하는 중에도 “아차!!!”하고 말자는 조목을 알아차렸으면, 비록 해 버리고 말았지만 주의심을 놓지 않았으니, 마음 챙겼다고 기록하는 거 아닌가요?


 백 교무: 마음 안에서, ‘찌든 나쁜 습관魔’과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의지法’가 겨룰 때, 비록 알았더라도 마魔가 이겨서, 말자는 조목을 실행해버렸으면, 주의심을 놓아 버린 것이니, 챙기지 못했다고 기록하는 게 맞아요. ‘주의’란 ‘실행하는 마음’을 이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알아차림’은 아버지를 비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뿐 아니라, 남 분석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탐욕을 알아채는 것이고, 그 탐욕은 거품처럼 일어났다 스러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집착을 그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해요.        


 재원: 교무님, 그러면 만약에 아예 아무것도 안했으면 어떻게 해요? 하지 말기로 한 조목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고 놓쳐 버리기도 하잖아요. 


 백 교무: 탐욕·성냄·어리석음貪·瞋·痴 중에 가장 잡기 어려운 게 뭔지 아세요? 

 재원: 탐욕이 아닐까요?


 백 교무: 어리석음痴이에요. 


 재원: 음... 그러고 보니깐 그럴 거 같네요.


 백 교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우치愚痴과 무명無明을 같은 의미로 쓰셨어요. 사건이 벌어지는 때에 주의심을 놓았는지 안 놓았는지 모르다가, 나중에 잠자리에서 이불 걷어차며 알아차렸다면, 재원교우의 마음이 ‘어리석음’에 가려졌던 거예요. 그걸 알아차리면 돼요. 


 재원: 음... 그렇군요.     


 재원: 오늘처럼 분노가 일어나면, 알면서도 참아내기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화를 미친 듯이 낸 건 아니지만, 기분 나쁠 때 올라오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쉽지 않더군요.


 백 교무: ‘화를 내지 말자’같은, 감정 조절을 ‘챙기는 공부’으로 잡는 건, 처음 유념공부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아요. 먼저, 말이나 행동에 초점을 두고 챙기는 공부를 하는 게 순서죠. 가령, ‘근무시간에 웹서핑을 하지 말자.’라고 했으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어도, 실재로 안 했으면 챙겼다고 기록 하고, 비록 웹서핑에 끌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기어이 하고 말았으면 챙기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 보급형 유념공부는 이쯤 했으니, 이제 고급형으로 넘어가볼까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는 “공부가 깊어 가면 일이 잘되고 못된 것으로 번수를 계산 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고 정했어요. 이때, 깡패에게 쫓기는 사람이 곁에 숨으며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데, 정직하답시고 깡패에게 그의 위치를 곧이곧대로 알려준다면, 언뜻 ‘말자는 조목’을 지킨 것 같지만, 마음을 챙기지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지 말자’라는 글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피해자가 발생하고, 깡패는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죠. 이는 ‘일이 잘 못된 것’이죠.      


 재원: 에구 너무 힘들어 보여요. 이거 하나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해야겠네요.


 백 교무: 유념공부는 원불교 수행의 꽃이에요. 힘들다고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말고, 수행과정에서 자연스레 있기 마련인 정당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챙기고 또 챙기다 보면 마음에 길이 나서 한결 수월해질 거예요. 알고 보면 간단해요. 


 근데, 혹시 우유로 만든 제호醍醐라고 아세요? 우리 언제 제호 맛 한번 볼까요?^^     


*제호醍醐: 부처의 숭고한 경지를 아주 맛있는 음식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우유를 정제하면 유乳ㆍ낙酪ㆍ생수ㆍ숙수ㆍ제호의 5가지 단계의 제품이 나오는데, 이 중 제호의 맛이 가장 좋다. 제호는 제호상미醍垠上味의 준말로 불교에서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맛, 곧 가장 숭고한 부처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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