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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31. 2022

빛나리 아저씨

빛나리 아저씨


 2016년 11월 10일 오전,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에서 내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차은택, 그는 최순실씨를 등에 업고 문화계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수의에 수갑까지 찬 그를 더 주목하게 한 것은 그의 민머리였다. 


기사제목마저 그를 조롱했다. ‘차은택 가발 벗고 대머리 조사. 진실도 벗겨질까’ 이렇게 사안의 본질과 관련 없는 가십성 기사가 넘쳐날 정도로, 대머리에 대한 시선은 너그럽지 않다. 그는 단지 구치소 규정에 따라 가발을 벗었을 뿐이고,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내린 것이다.


 삭발에 가려져 그렇지, 머리숱 적기로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는 상처도 많이 받고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다. 조짐은 아직은 숱 많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목욕탕에 딸린 이용원에서 머리를 깎는데, 이발사 아저씨가 가위질 하다 말고, ‘너 대머리 되겠네.’라고 예언하셨다. 경륜이 묻어나는 말씀이 저주로 들려, 발길을 끊었다.


 군대 있을 땐 잊고 지냈는데, 제대하고 머리를 기르다 보니, 있고 없는 자리가 티 나기 시작했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처럼 뒤에서부터 빠졌다. 겨우 이십대 중반, 덜컥 겁이 났다. 정력이 좋겠다는 말이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는 게, 소개팅이 안 들어오지 않는가. 


“형, 대머리는 안 된데요. 가발 사면 소개팅 해줄게요.”이랬다. 나이 들고, 추레해 보인다는 생각에 위축돼, 모자 쓰는 일이 잦아지고, 강의실에서도 뒤로 물러앉았다. 바야흐로 얼짱 시대에 접어든 2000년대 초반이었다. 어머니는 아빌 닮아 그렇다 하시며 괜히 미안해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죄다. 


 취업시즌이 되자 다시 위기가 왔다. 용모 단정해야 하지 않는가. 면접을 맞아 미장원에 들렀는데, 미용사 아가씨가 꽤나 난처해했다. 그래도 기술을 발휘해, 반 곱슬이기도 한 머리를 세우고 모아서 풍성한 모양을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빗질로 정전기를 일으켜, ‘흑채’라는 검은 가루를 흩어 뿌리고 헤어스프레이를 치니 감쪽같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면접이라, 코를 아래로 박고 엎어져 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영웅이었던 황우석씨가 개 복제 말고, 줄기세포를 활용한 발모법이나 어서 개발해주기를 바랬다.   

   

 만덕산 가는 길에 머리를 밀고 출가했다. 구도자에게 삭발이 어색할 바 하나 없기에, 대머리 콤플렉스는 힘들이지 않고도 절로 사라졌다. 이렇게 몸을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십수 년이나 나를 짓눌렀던 열등감이 한 순간 바스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인간이 만든 미美의 척도란 게 대개 그렇다. 


 DNA에 새겨진 대로 때 맞춰 분비된 남성호르몬에 의해, 나는 머리보다 빠지는 머리가 느는 현상이, 물방울에 빛이 들어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이는 데로 마음은 평안하다. 그렇다하여 머리를 심는다든가 하는 노력이 헛되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구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설하며, 오래전 머리 긴 내 사진을 들춰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바닥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단지 변화일 뿐이라는 걸 그들은 알아차렸을까? 나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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