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Dec 03. 2022

누구냐 너! : 욱이의 고민상담 2


누구냐 너!


 “눈을 감고 바라 봐.” 좌선을 지도하시며 어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의 눈을 뜨란 말이다!” 하시며 지긋이 바라보셨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눈을 감으면, ‘나’를 드나드는 소리, 냄새, 촉감, 맛, 생각을 보다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는 ‘나’는, 맨해튼 7번가 커피숍(Gregorys Coffee)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눈을 감는다. 주고받는 무수한 대화와 음악, 커피 향, 에어컨 냉기, 혀를 감도는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방울이 ‘나’를 자극한다. 거기에 더해 마음을 드나드는 끊임없는 생각을 바라본다. 보는 ‘나’가 있고, 듣는 ‘나’가 있고, 냄새 맡는 ‘나’가 있고, 맛보는 ‘나’가 있고, 촉감을 느끼는 ‘나’가 있고, 생각하는 ‘나’가 있다. 


 ‘욱’이에게 분노가 치밀 때마다 그 횟수를 세고, 분노를 있는 그대로 적어보라 했었다. 그런데 마침 그즈음 ‘욱’이는 출장을 떠나게 되었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복귀이후 전쟁은 재개되었다. 


 ‘내 돈만 뜯으려면 사다리를 왜 타? 이 XXX들아,’ ‘낯짝만 봐도 기분이 더럽다,’ ‘누가 저 X의 아가리에 자크 좀 채워줬으면,’ ‘쳐 놀러가는 주제에 일한다고 어필 마라 XX,’ ‘저 X은 나한테 왜 자꾸 통보를 하지?’ ‘아 X 어리버리한 X 휴가로 째면 땡이냐’ 등등. ‘욱’이는 자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면서까지 욕설과 분노로 범벅된 마음의 배설물을 마음껏 쏟아냈다. 


 ‘욱’이는 이제 분노라는 감정에 속절없이 끌려만 다니는 게 아니라, 분노가 일어나는 찰라 그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걸 적을 여유까지 생겼으니 본인이 알던 모르던, 마음을 챙기는 수행에 첫 걸음을 내 디딘 것이다. 그런데 분노가 일어난 횟수를 세는 일은 귀찮고 번거로운지 영 소식이 없다. 그래서 그 대신 바로바로 쉽게 써보라고 주문 하나를 알려줬다. “누구냐 너!”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던 ‘오대수’는 비 오던 어느 날 납치당해 8평짜리 방에 갇혀, 넣어주는 군만두만 먹으며 무려 15년이나 이유도 모르고 고통 받는다. ‘오대수’는 그를 극한으로 몰아넣은 자와의 첫 통화에서 나직이 묻는다. “누구냐 너!”


 분노가 밀려올 때 ‘욱’이는 마치 성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분노를 향하여 일갈할 것이다. “누구냐 너!” ‘욱’이가 분노를 알아차리고 “누구냐 너!”를 외칠 때, 작은 분노는 그 순간 물거품처럼 흩어질 것이다. 


 하지만 ‘욱’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욱’이의 분노는 지난 아픈 기억과 맞물려 크게 되살아나기 쉬우므로 그 분노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한 가지 요령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고른 호흡이다. ‘욱’이에게 최대한 고르게 호흡하는데 마음을 기울여보라고 했다. 


 고른 호흡이 가져다 줄 집중력은 “누구냐 너!” 그리고 분노일기와 아우러져 ‘욱’이의 분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흥미로운 기다림이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섭씨 99도 : 욱이의 고민상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