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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04. 2022

그 언덕에 있었다

그 언덕에 있었다 


 축구부 아이들로 먼지 자욱이 이는 운동장 구석자리, 석양을 바라보며 식은 도시락을 열었다. 찬 밥 덩이에, 참치 김치 볶음, 구운 김. 목메지 말라고 컵라면도 곁들였다. 멀리 학교 담장 너머에 안양천이 흐른다. 물가 외진 땅에 울타리 치고 양 치던 목자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람을 기르고자 목장 터에 학교를 열었다. 


 이십여 년의 군 생활을 마친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이모가 계신 서울 시흥동을 인생 2막 출발지로 삼았다. 그리고 그해, 사교육비를 덜 들이고도 좋은 대학에 잘 보낸다고 입소문난 문일 고등학교에 나는 입학했다. 아버지는 낯선 도시에서 일자리 잡기 어려운지, 맥없이 등을 보이시며 구석에 누워계신 날이 늘었고, 어머니는 구두공장에 다니며 꼬박꼬박 적금을 부었다. 


어느 날엔가 그렇게 번 돈으로 밥통을 새로 사 따순밥을 지어주셨다. 가방 끈이 짧은 어머니는, 아들 형제가 공부 잘해서 당신 몫까지 배워 남부럽지 않게 자라주길 바랬다. 부담스러웠다.


 종소리에 상념이 그쳤다. 도시락주머니에 빈 통을 챙겨 계단을 올랐다. 아직 도서관에 있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성적에 따라 열람실이 나눠졌고, 1등부터 차례로 길게 앉았다. 매 달 성적표가 중앙계단 쪽 벽면에 높이 게시되면, 담임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치셨고, 자리는 조정됐다. 내 자리는 크게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고만고만 맴돌았다. 밤 11시, 교문을 등지고 나오는 길에 별은 반짝이고 도서관 전등은 하나 둘 씩 꺼졌다. 


 열일곱의 나는 답답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좋아했지만, 명문사립고생이 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일그러진 교육에 맞서는 이들에 대한 동경인지 알 수 없었다. 오르내리는 성적에 좌우지되는 선생님들의 태도도, 열람실 자리에 웃고 우는 급우들에게도 지쳤다. 딴엔 새벽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수업에서 의미를 찾지도 못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서서히 입시에 내몰리고 있었다.  


 교목실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그대로 물러섰다. 힘들지라도 누군가에게 속마음 보이고 싶진 않았으리라. 그러곤 찾아간 곳이 도서관 서고. 아무도 보지 않는 책들이 먼지를 얹고 칸칸이 꽂혀 묵어가고 있었다. 눈길이 서가 하단, 낡은 진남색 하드커버 책에 멎었다. 오른쪽으로 넘기는 세로쓰기 책 ‘동경대전東經大全’이었다.


 얇은 낱장 낱장을 엄지 검지로 비벼 열며 천도교에 매료되었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열 석자를 부지런히 외우며, 대학에 가면 동양철학을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듬해엔, 아파트 엘리베이터 곁에 잔뜩 모아둔 폐지더미 사이에서, 채 겉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증산도 ‘도전道典’을 우연찮게 손에 넣었다.  


 등하굣길을 오가며 천도교교당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들르리라 생각만하고 까맣게 잊었었는데, 이제사 알게 되었다. 박미고개로 넘어가는 길, 천도교가 있던 그 언덕에 원불교 금천교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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