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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05. 2022

민들레 향기

민들레 향기


 스무 살. 나는 여전이 헤르만 헤세를 동경했고 올리비아 핫세를 그리는 소년이었다. 설익은 나에게 세상은 어렴풋하고 몽롱했다. 그해 유월, 경주에 산다는 동후 집에 일주일을 약속하고 내려갔다. 손엔 도서관에서 빌린 때 묻은 책 한권, 등엔 옷가지가 든 가방하나 그 뿐이었다. 동후네 집은 경주 교외 논길을 따라가는 길 가운데 나지막하니 자리 잡았다. 마당은 넓었고 곱게 나이 드신 어머님이 아들처럼 맞아주셨다. 


 이튼 날부터 동후를 앞세워 경주를 걸었다. 토박이 친구에겐 이방인의 호기심이 어색했는지 내가 멈춰서 무엇엔가 마음을 고누고 있을 때마다 몇 걸음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걷다 이른 곳은 극락사라는 자그마한 절. 건물 두 동에 무릎높이 정도의 오래된 돌부처님 그게 전부였다. 


해 지기 전에 아직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기에 쓱 돌아보고 급한 걸음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장삼을 벗어 볕에 털며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던 스님 한 분이 큰 소리로 잠깐 와보라며 불러 세웠다. 곁에 다가가니 더운데 같이 수박이나 먹자시며 동후에게 돈을 쥐어주고 사오라며 보냈다. 


가까이서 뵈니 스님의 체격은 다부졌고 호탕하게 말씀도 잘하셨다. 스님 역시 길가다 들른 손님이었는데, 중국을 도보로 여행하신 이야기며 정치, 지리를 비롯해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스님을 따라 앉았다 섰다, 심지어는 빨래하시는 곁에 쭈그려서 들려주시는 말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난 묻는 말에만 짧게 답했다.


 동후는 땀을 흠뻑 흘려 붉게 잘 익은 수박을 사왔고, 마침 목이 말라오던 차라 금세 수박 한 통을 쪼개  나눠 먹었다. 갈 시간이 되었다 싶어 인사하고 자리를 뜰 때 스님은 전송해주시며, “네 얼굴을 보니 중이 될 관상을 가졌구나. 내 이름은 ‘원공’이고 도봉산 천축사에 있으니 나중에 나를 한번 찾아와라.”말씀하셨다. 흘려듣진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길 뿐 마음에 새기진 않았다.      


 11년 뒤, 원불교를 만나 출가 길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원공스님이었다. 그러나 스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도봉산’, ‘천축사’ 그 두 단어가 다였다. 그걸 들고 난 그분의 이름을 알아냈고 마침 불교방송국에 있던 수정이 누나의 도움으로 전화번호를 손에 쥐었다. 


만덕산에 계시던 지도 교무님께서는 행여 내가 그분을 만나면 조계종으로 가버릴까 염려하여 찾아뵙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난 어찌됐던 한번은 다시 만나야한다 여겨, 스님이 머물고 계시던 선각원蟬覺院으로 향했다. 마침내 마주한 자리에서 스님께서는 그 때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신다하시고, 당신이 그리 말 했다면 그건 실수일 뿐이라며 미소 지으셨다.      


 식물의 씨가 땅에 심어져 물과 빛 온도를 비롯한 조건에 따라 싹이 트고 자라나듯, 하늘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은 몸 한번 행동하고 말 한번 한 것이 허공에 심어져 시절 인연을 따라 과보가 나타나게 된다. 스님이 그 오래 전에 던지신 한 말씀의 인연으로 내 안에 있던 부처의 씨가 싹터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기적이 있다면 내가 그 일을 잊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혜의 등불을 밝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자는 서원을 세운 일이 아닐까? 어제 그리고 오늘, 우리는 나 자신과 서로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인연이 되고 있을까? 스님은 돌아가는 나에게 앞으로 할 일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마음에 민들레 홀씨 하나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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