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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08. 2022

아오이 あおい

아오이 あおい


 한 달 치 약값에 9,900원이 다였다. 어려서 사던 크리스마스실 덕택이기도 할 테다. 두툼한 약봉지를 안고 버스에 올랐다. 햇살 스미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본다. 답답했다.


 대학원에 갈까. 공무원 시험을 칠까. 아니면 고시를 볼까. 뭣을 하던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가난했다. 딱히 손 벌릴 데도 없었다. 약 기운에 눌린 몸이 나른하게 늘어진다. 그리고 오렌지색 소변을 쏟아냈다. 의사는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쉬고, 약만 거르지 않으면 낫는 그저 그런 병이 결핵이지만, 다 나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달갑지 않는 무료함을 때우러 비디오가게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빌렸다. 책으로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영화로는 어떨지 궁금했다. 팔을 목에 괴고 비스듬히 눕는다. 이탈리아 밀라노, 쥬얼리샵 점원으로 일하던 여주인공 ‘아오이’...느닷없이 마음에, 그녀처럼 보석 일을 해보자는 바람이 일었다. 


 그대로 달려가 남대문시장 한국보석학원 감정사반에 등록했다. 한술 더 떠, 변리사 도움 없이 특허청에 ‘Aoi’를 상표로 출원하기도 했다. 파랗다는 뜻의 아오이あおい. 사파이어, 아콰마린류의 푸른빛 보석 대표 브랜드가 될 거라는 몽상에 잠겼다. 그런 끄나풀이라도 잡아야 했다. 


 수업 첫 준비물인 5부, 3부짜리 큐빅을 시장 지하상가 악세사리 가게에서 500원씩에 샀다. 이렇게 싼 큐빅 곁에 비싼 다이아몬드를 나란히 두면 겉으로 구분해 내기 어렵다. 그런데도 두 개의 돌에 다른 값이 매겨지는 이유는, 큐빅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돼 누구나 살 수 있을 만큼 흔하지만, 다이아몬드 1캐럿(0.2g)을 골라내려 채굴장에서 약 200~250톤의 흙과 광석을 캐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헷갈리는 이 둘을 가리려면, 흰 종이에 그어진 흑선 위에 두 돌을 엎어 얹으면 된다. 투과하는 빛은 물질마다 다른 각도로 꺾이는데, 세공사들은 상부에서 다이아에 들이치는 모든 빛이 전부 위로 반사되도록, 톨코프스키 기법으로 각을 치므로, 뒤집어 놓으면 밑면의 검은 줄이 비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모양만 흉내 낸 큐빅은 굴절률이 달라서 선이 보인다. 하지만 속이려는 자와 진품을 차지하려는 자의 물고 물리는 술래잡기를 거치며 모조품은 날로 정교해진다. 


 값진 보화를 가지려는 이의 욕망을 희롱해 자기 배를 채우는 사기꾼. 그런 그마저도 동네 양아치 정도로 보이게 하는 건, 다이아몬드 산지의 참혹한 현실이다. 광산 이권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일상화된 폭력, 착취, 부패...이런 추악한 인간세계와는 아랑곳없이 쇼윈도의 다이아몬드는 영롱하게 빛난다.


 그해 가을 보석감정사가 되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고 등급을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그 길에 두지 않았다. 자격증도 ‘Aoi’도, 쓰지 않아 묵어 낡아갔다.       


 그저 탐욕 덩어리로 보이던 다이아몬드에서 새 의미를 발견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부터다. 단단하여 누구도 긁을 수 없고, 무엇으로부터도 긁히지 않는 다이아몬드는 불교에서 금강金剛이라 불리는데, 이는 요란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고, 그름이 없는 ‘참 마음’이요, 번뇌를 부셔버리는 자성自性을 뜻한다. 모두에게 갊아 있는 ‘참 마음’ 즉, ‘금강자성金剛自性’을 발견하여 서로 공경하고 은혜를 나누는 삶이 부처님이 밝히신 인간의 길이다.      


 원불교 대학원 진학에 앞서, 교무로서의 의복을 갖추는 관례식 날, 축하차 온 황현신 교무님의 “나도 저땐 보석같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라는 혼잣말에, “교무님은 이미 아름다운 보석이에요. 믿으세요. 저 보석감정사에요.”라며 말 건넸다. 미소로 화답하는 그분에서 부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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