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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Apr 14. 2023

수다쟁이 배우의 실어증

아마 작년 이맘때쯤 "왜 브루스 윌리스는 B급 영화에만 출연하는가?"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충 귀찮으니 용돈벌이만 한다', '다른 스태프들과 사이가 안 좋다' 등등 여러 가지 추측들 중에 전 부인이었던 데미 무어가 브루스 윌리스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가 더 이상 대사를 외우기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오늘, 브루스 윌리스가 은퇴를 한다는 기사를 마주했습니다. 은퇴의 이유는 실어증이라는 병이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잘 떠올리기 힘든 배우겠지만, 20년 전만 해도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액션 배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 머릿속에 브루스 윌리는 장난기 많은 수다쟁이 배우입니다. 

  저는 80년대 후반 TV 시리즈 '블루문 특급 탐정 사무소(Moonlighting 1985~1989)'를 통해 처음 봤었는데그 쉬지 않고 떠드는 수다가 너무 재밌어서 팬이 되었습니다.  쉬빌 쉐퍼드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로맨틱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실제로는 원수 사이 었다는 사실도 영화 잡지를 통해 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노래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학생 때 LP판도 샀었어요. 앨범 제목이 'If it don't kill you, it just makes you stronger' 였습니다. 니체의 말을 인용한 모양인데, 'doesn't'라고 해야 할 부분을 'don't'라고 한 것이 의아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문법충들이었으니까요. 이 정도면 찐 팬이죠? 노래 중에 Peptalk(용기를 주는 격려하는 말)이란 곡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수다로 만든 노래입니다. 저는 드리프터즈의 60년대 노래를 리메이크한 '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참 좋아했습니다. 부르스 윌리스의 툭툭 던지는 목소리랑 정말 잘 어울렸어요.

다이하드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액션 영화들을 통해  사랑을 받았는데, 이렇게 은퇴를 한다니 안타깝습니다. 그의 찬란했던 과거와 현재 은퇴하는 모습에서,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것도 그 수다쟁이 배우가 실어증으로 은퇴를 한다니  잘 상상이 가지 않네요. 4월 6일 야후 엔터테인먼트(Yahoo Entertainment)의 기사는 이렇게 제목을 쓰고 있습니다.


"Bruce Willis smiles in new photo with wife, Emma, after aphasia announcement"


a•phasia 
dys•phsia


여기서 aphasia가 의학용어로 '실어증'을 의미합니다. 혹은 dysphasia라고도 합니다. a 나 dys 모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입니다. a는 완전한 부정을, dys는 온전히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어증의 경우에는 aphasia 혹은 dysphasia를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phasia는 그리스어 φημί (phēmí, “I say”)에서 온 말입니다. 그럴듯한 학술 용어 같지만 그냥 문자 그대로  말(say;phasia)을 못한다는 뜻으로 aphasia라고 이른 말입니다. 실어증은 인지 능력의 손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서, 데미 무어가 브루스 윌리스의 기억력을 걱정했던 것이죠. 뇌의 여러 가지 영역이 노화 혹은 질병에 의해 손상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기억력에 관련이 될 수도 있고, 운동 능력에 관련이 될 수도 있고, 감각에 관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말을 구성하고 인지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실어증, 즉 aphasia가 됩니다.


a•phagia
dys•phagia


이 단어와 매우 비슷한 단어로 제가 의학용어 시험에 많이 출제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aphagia 혹은 dys•phagia라는 단어입니다.

 똑같은 단어 같아 보이지만, 철자 하나가 다릅니다. s가  g가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연하 곤란' 즉 삼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접두사 a 혹은 dys는 역시 부정(not)을 뜻합니다. ~phagia는 그리스어로 phageîn에서 온 말인데, 먹는다란 뜻입니다. 먹지를 못하니 a(not)·  phagia(swallow), 즉 '삼킬 수 없다'라는 병명으로 부른 것입니다. 물리적인 소화기관의 폐쇄로도 올 수 있고, 신경계의 문제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보는 것은 중풍(stroke)으로 인한 연하곤란증입니다.

이 두 단어는 매우 헷갈리기 쉬운 의학용어인데 제가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aphasia의 s는 speak의 s입니다. aphagia의 g는 꿀꺽 삼키다는 뜻의 gulp의 g입니다.


a(dys)•phaSia = cannot Speak
a(dys)•phaGia = cannot Gulp


이제 수다쟁이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농담은 오래된 영화 속에서 밖에 못 듣겠군요. 그의 농담이 이제는 마냥 재밌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최근 그와 작업을 한 제시 존슨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는 현장에 있는 것을 행복해한다. 그러나, 촬영을 일찍 마치고 집에 일찍 들어가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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