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질부사라는 것을 앓고 나면 성질이 변한다는 말도 있고 바보가 되거나 딴 재주가 생겨난다는 말도 있었다. (중략) 나로 말하면 이걸 앓고서 바보나 좀 더 되었을까. (중략) 이 염병 반년의 경험을 전후해서 내 정신에 생겼던 사변(事變)들이 그 뒤의 내 문학정신에 끼친 흔적만은 거부할 수 없다"
문학잡지 '세대' 1966년 9월호에 실린 서정주의 산문 〈내 문학의 온상(溫床)들〉에 묘사된 장티푸스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장티푸스를 '장질부사', 그리고 '염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옛날에 '염병하고 있네', '옘병할 놈'등의 욕이 있었는데, 꽤나 의학적인 욕입니다. 아마도 예전엔 장티푸스 감염으로 인해 뇌손상까지 이른 사람들이 있어서, 장티푸스를 정신적인 문제와 연결시켰나 봅니다. 참고로 '지랄 염병을 하네'에서 지랄을 간질발작(epilepsy,뇌전증)을 표현한 욕입니다. '뇌전증발작을하고 장티푸스로 신경질환을 앓을 놈'이란 매우 의학적 욕입니다. 서정주 시인도 '앓고 나면 바보가 된다'라고 이야기했지요. 장티푸스라는 용어는 한자어 '장(腸)'과 병원균의 이름인 영어 '티푸스(typhus')를 연결시켜 만든 요상한 단어입니다. 원래는 일본인들이 腸チフス(장치프스:일본어 발음)라고 부른 것을, 중국인들이 음만 빌려와서(음차) 腸窒扶斯(창츠푸쓰:만다린 발음)라고 썼고, 한국인들은 한자 腸窒扶斯를 한국식으로 읽어 '장질부사'라고 불렀습니다. 장질부사, 장티푸스 모두 일본식 병명 腸チフス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영어로는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병원균 티푸스(typhus)의 이름을 따라 'typhoid fever'라고 합니다. 티푸스(typh~)를 닮은(~oid) 열병(fever)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티푸스(typhus)가 무슨 뜻이냐? 그리스신화 속의 괴물 타이폰(Typhone)을 말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타이폰은 번갯불과 불꽃을 내뿜을 수 있는 100개의 용의 머리가 돋아나 있었고, 두 개의 대퇴부에서 밑으로는 꽈리를 튼 거대한 뱀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깃털과 날개는 항상 그 자신이 일으키는 격렬한 폭풍 때문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그의 어깨는 하늘에 닿고, 100개의 머리는 우주에 있는 별을 스치며, 두 팔을 벌리면 세계의 동쪽과 서쪽의 끝까지 닿는다고 합니다. 이런 엄청난 외모와 심술 때문에, 심지어 신들도 그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태풍을 타이푼(Typhoon)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타이폰(Thyphon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Typhone
무서운 전염병 장티푸스
그리스와 스파르타의 전투 중 아테네에 심한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기원전 430년, 429년, 427년에 걸쳐 그리스를 덮친 전염병은 아테네 군인과 민간인의 1/4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1994년 아테네 대학의 연구진은 당시(430 BC) 사망자들의 매장지에서 나온 치아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현대의 장티푸스 병원균과 유사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ancient-athenian-plague-p/) 스파르타인 보다 장티푸스가 더 많은 그리스인들을 죽였습니다. 전쟁에 있어 전염병은 예상치 못한 비극을 가져옵니다. 특히 장티푸스와 같은 수질 오염이 중요한 질환은 더욱 위험성이 커집니다. 영국 제국과 남아프리카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앵글로 보어전쟁(Anglo Boer War)에서 2만 명의 영국군인이 사망하였습니다. 총 2만명의 사망자 중 1만 3천 명은 오염된 물을 마셔 유행한 장티푸스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군인이 45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그중 5,6명 중의 한 명꼴인 77,000명이 장티푸스에 감염되었다고 하니 총보다 칼보다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타이폰(Typhon)이 불꽃과 폭풍을 일으켜 사람들을 괴롭혔 듯, 장티푸스도 몸 전체를 휩쓸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증상은 발열, 두통, 복통 및 설사 등으로 가벼울 수도 있지만, 장출혈, 천공, 뇌 척수의 감염과 같은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괴물 타이폰(Typhone)은 제우스의 공격에 의해 하나의 머리가 잘리고,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Tartarus)로 추방됩니다. 제우스에 의해 괴물 타이폰(Typhone)이 격파되었듯, 오늘날 장티푸스(Typhoid fever)도 극복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공중위생의 향상과 항생제, 백신의 개발로 현재는 예전처럼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전염병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도 WHO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11~20백만 명이 장티푸스에 걸리며, 12만 8천 명에서 16만 1천 명 사이의 인구가 장티푸스로 사망합니다.(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typhoid)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이전까지 매년 3~5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현재도 매년 200여 명의 환자가 보고되고 있으며, 2014년에는 경남지역의 대유행으로 209명의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pharm review)
우리도 괴물 타이폰(Typhone)을 타르타로스에 완전히 가두어 두기 위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이나 화장실 다녀온 후 흐르는 물에 비누를 사용해 30초 이상 손을 씻습니다.
음식은 꼭 완전히 익혀 섭취하고 생야채는 피하고, 과일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겨서 먹습니다.
장티푸스 유행 국가를 방문했을 때는 꼭 물을 끓여 먹고 완전히 익힌 음식을 먹는 게 좋습니다. 얼음이 들어간 음료도 피하는 게 예방하는 길입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를 여행하거나 장기체류한다면 떠나기 2주 전 미리 주사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https://medicine.yonsei.ac.kr/health/media/)
오늘은 장티푸스 Typhoid fever에 관해 알아봤는데요, 열병 fever가 붙은 병명을 몇개 더 알아보겠습니다.
황열병이나 성홍열처럼 색이 붙은 병도있고, 지역이름이 붙은 열병도 많이 있네요.
Typhoid fever : 장티프스
Scarlet fever : 성홍열
Yellow fever : 황열병 바이러스열병
Dengue fever : 뎅기열 바이러스열병
Q fever : Q열, 동물에 의한 세균 감염, 퀸즈아일랜드(Queensland)에서 처음 발견
Rocky Mountain spotted fever : 록키산열, 급성발진성 전염병, 로키산맥에서 처음 발견
Mediterranean fever: 지중해열, 부루셀라병
Rheumatic fever : 류마티스열